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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지난해 12월 경북대학교 본관 건물 계단은 수백 벌의 과잠(학과 잠바의 준말)과 졸업장으로 장관을 이뤘다. 12월 4일 매일신문 단독으로 <경북대-금오공대, 내년 글로컬대 지정 앞두고 통합 급물살>이라는 보도가 전해진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총학생회는 입장문을 통해 “학생 의견 반영 없이 일어난 통합논의 백지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어떤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갑작스레 두 대학의 통합이 던져진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입장과 함께 학생사회 내부에는 원초적인 형태의 분노로 가득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는 금오공대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들끓었고, 총학생회 인스타그램 댓글에도 두 대학의 통합이 ‘입시결과’를 추락시킬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학생사회의 이러한 원초적 분노를 볼 때, 이번 시위의 이면에는 ‘학벌사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좋은 학력 갖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의 노력 부정한다는 생각…”이번 두 대학의 통합 문제를 두고 홍 총장을 비판하는 한 주장이었다. 실제로 두 대학의 통합에 대해 학생들은 ‘노력 배신’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한 동기는 고등학생 때 경험을 근거로 ‘금오공대를 간 친구의 노력과 자신의 노력이 다르다, 똑같이 평가받기 싫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한 후배는 ‘수능과 입시 결과를 근거로 두 학교의 격차가 있으며, 무리한 통합’이라고 평가했다. 여러 지인의 의견을 들었으나, 학벌주의라는 비판이 뒤따라도 ‘노력 배신’이라는 입장은 변함없었고, 학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학벌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고, 학벌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또 무엇인가. 무엇보다 학벌이 과연 ‘노력’으로 정해지는 사회인가. 여러 의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학벌은 크게 두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중고등학생들과 학부모의 관점에서 ‘입시 결과’라는 형태로 바라보는 대학 순위다. ‘SKY서성한중경외시’를 구구단처럼 외우는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구직활동 측면에서 기업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대기업 인사팀이 선호하는 대학 순위표’ 같은 게시물이나 영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는 현상에서 드러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두 대학의 통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입시 결과 하락과 기업에서 두 대학 출신을 똑같이 바라볼 것이라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입시결과, 기업의 평가 부분에서 자신들의 이점이 희석되는 것에 분노한다는 점, 아래라고 생각하는 대학과 통합에 분노하는 점에서 ‘속물’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시위 이면에 자리한 속물적 태도는, 학벌사회가 문제라는 생각조차 못한다. 대학을 이유로 사람을 재단하는 여러 상황에서 핵심 논리는 ‘가능성’이다. 더 좋게 평가받는 학벌을 가진 이가, 덜 좋게 평가받는 학벌을 가진 이보다 노력을 더 했을 것이며, 따라서 뭐든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부 요소로 사람을 재단하는 그 선입견이 과연 정당한가? 명문으로 불리는 SKY대학 48.2% 학생들이 상위 20% 고소득층 부모를 두고 있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벌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시대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학벌이 개인의 노력과 가능성을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을까? 학벌에 대한 선입견이 부당한 방식으로 가능성과 노력을 재단하는 것에 순응한다는 점에서, ‘속물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속물’이라는 손쉬운 규명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할 수 없다. 지난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영역 채용과정에서의 차별실태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94.6%가 학력 관련 사항을 기재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민간 영역은 99.7%에 달해 사실상 모든 민간 주체가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조건 똑같은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라며 블라인드 채용을 공공부문에 지시했다. 최근에는 대학을 기재하지 않는 것이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간 사람의 노력을 평가에서 배제한다는 ‘역차별’ 주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취업이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일이며, 과거부터 형성된 학벌사회인데, 이를 오로지 그들의 ‘속물적 태도’로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부실대 과감히 문 닫아라’는 여러 일간지 댓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시위에 대한 반응이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처럼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들이 오랜 세월 구축하고 지탱한 ‘학벌사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통합 또는 부실과 같은 단편적인 관점으로 대학가의 위기를 재단하고 있다. 학생들을 학벌사회에 내던진 기성세대는 이번 사건에서 과연 당당해도 괜찮은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