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과 미성숙을 단지 나이로 나누는 것은 잘못되었어요. 20살이 되어도 성숙한 부분과 미성숙한 부분이 갈라지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나이로 나누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19살은 선거에 참여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고, 18살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5일 대구 청소년단체 반딧불이가 청소년 정치참여를 주제로 진행한 심층그룹 인터뷰에서 고등학생 수연(가명, 여, 17살) 씨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수연 씨는 청소년은 정치를 잘 모르고, 자기 의견 없이 여론이나 어른들의 의견에 휩쓸린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귀가 얇은 것은 개인 차이고, 굳이 나이가 어리다고 그런 건 아니죠. 청소년에게 휩쓸려간다는 말은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가 갑자기 주기 때문에 당장 주체적인 의견이 생기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에요.”
수연 씨의 주장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공감이 되는 측면이 많다. 정치 구호를 외치는 집회에 나이가 찰 만큼 찬 어르신들이 아르바이트로 동원되고,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구호를 따라 외치는 상황에서 오히려 수연 씨 같은 10대가 더 뚜렷한 정치적 소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딧불이, 청소년 선거권-정치참여 관련 실태조사
국가인권위, 2013년에 선거연령 18세로
윤후덕 의원, 5월 선거법 개정안 발의
국가인권위는 2013년에 수연 씨 같은 청소년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그해 2월,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선거권 행사 연령을 현행 19세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강 의장은 특별한 화답을 하지 않았지만, 19대 국회 후반기 정의화 의장은 선거연령을 낮추는데 긍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선거연령 기준은 1948년 만 21세에서 점진적으로 낮아져, 2005년 19세까지 내려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세계 190개국을 대상으로 선거 연령을 조사한 결과, 만 19세로 정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 호주, 독일, 영국 등 148개국은 만 18세까지고, 오스트리아, 브라질 등 6개국은 만 16세까지다. 북한조차도 만 17세부터 선거권을 준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윤후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윤 의원은 정치, 사회의 민주화, 교육수준의 향상 및 인터넷 등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교류가 활발해진 사회환경을 이유로 “18세에 도달한 청소년은 독자적인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갖추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반딧불이 설문조사, 56.7% 선거연령 낮춰야
선거연령 낮추자 379명 중 111명, 17세까지 낮추자
반딧불이가 지난 5월부터 진행한 ‘청소년의 선거권 및 정치참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국제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반딧불이는 5월부터 총 668명(청소년 582명, 비청소년 86명)을 대상으로 선거연령 인하 등 청소년의 정치참여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56.7%(379명)는 선거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청소년 응답자 582명 중에서는 331명(56.9%)이 동의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오히려 18세도 많다고 봤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데 동의한 379명 중 111명은(29.3%) 17세까지 선거연령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18세로 내려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90명, 23.7%)보다 21명이 더 많다. 특히 청소년 응답자 중에서 17세를 선택한 사람(98명)이 많았다.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 이유로는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대표를 뽑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242명)이 가장 많았다. 반대로 선거연령을 현행으로 유지하거나 더 높여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 289명은 211명이 청소년은 아직 선거를 하기엔 어리기 때문을 이유로 꼽았다.
응답자들은 피선거권을 낮추는 데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피선거권연령기준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 중 391명(58.5%)이 현행 기준을 유지(327명)하거나 더 높여야(64명) 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피선거권에 대해서는 연령을 낮추는데 유보적인 이유는 청(소)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인에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145명)이다. 노회한 정치인을 경험 없는 청(소)년 정치인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반딧불이는 “청소년은 아직 어리니까, 미성숙하니까, 선동당할 것 같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선거권도 보장받지 못한다”며 “미성숙과 선동의 기준은 비청소년에게도 동등하게 들이댈 수 있는 기준”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보다 잘 모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한다”며 “정치는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며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청소년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로서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조사는 반딧불이가 국가인권위 2016인권단체공동협력사업으로 선정돼 진행했다. 반딧불이는 상반기에는 청소년의 선거권 및 정치참여 관련 설문조사와 토론회 등을 진행하고, 하반기(7~9월)에는 ‘학교 내 학생의 의사 반영’을 주제로 인권 캠페인, 인권 토론회, 설문조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