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쓴이 손소희 씨는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청소년노동인권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일하는 청소년 인권은 어디로 ① 대공장 현장실습 간다며 자랑하던 친구, 나는 맞장구쳐줄 수 없었다 |
청소년은 노동인권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생각이 궁금하다. 청소년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뭔가가 필요하다.
교육평가설문을 해보자고 했다. 교육평가설문은 오늘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학생들이 사회진출을 앞두고 어떤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해보자고 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요것만 하자고 해놓고는 하다 보면 자꾸 욕심이 난다.
학생들은 알바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 알바를 하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노동인권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마음껏 욕심을 다 낼 수는 없었다. 설문조사는 수업을 마치고 5분 내외 시간을 활용했다. 그래서 더 하고 싶다고 마구 넣을 수도 없는 법이었다. A4 한 면 안에 궁금했던 질문을 설계해야 했다.
대구청노넷 구성원들은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다들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내서 청소년노동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뭔가 해보자고 하면 자발적으로 일을 낸다. 그렇게 조사를 시작했다.
설문조사는 어느 정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듯한데, 정작 설문조사를 다 마치고 통계는 누가 할 수 있을지? 통계분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실력이 가능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수원의 모 연구소에서 단기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4개 학교, 712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결과는 아주 흥미로울 뿐 아니라 유의미했다. 교육을 마치고 벌인 설문인데도 청소년들은 꽤 성실하게 답변해주어서 버릴 게 별로 없었다.
대구지역 특성화고 청소년 95%는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82%는 재교육을 하면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친구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소개할 의사가 있다는 학생이 86%에 달했다. 이는 노동인권교육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수업 중에 하나둘 자리 펴고 드러눕는다고 걱정했던 때와는 달리 학생들은 잠을 자고 있던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명 중 한 명은 알바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전날 알바를 하고 피로한 학생들이지만, 교육은 자신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인식했던 것은 아닐까 추정해 본다.
알바 경험은 썩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대면 조사를 해보았더라면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설문조사만으로는 영혼을 느낄 수 없어 많이 아쉽다. 어쨌든 상당히 의미 있는 통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내 안심알바신고센터가 대구지역에도 6개나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런데 대구의 안심알바신고센터는 청소년노동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해지자, 흉내 내기 좋아하는 관료들의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조사연구 보고서에는 설문조사 결과뿐 아니라 대구지역의 알바신고센터 실태도 확인한 사실을 적시하여 발표했는데, 대구에서는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한 첫 사례인지라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우리도 놀랐다.
대구교육청은 “깜짝이야”하는 반응을 보이며 대구지역 특성화고 노동인권교육은 외부에 위탁하지 않고, 자체 교육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비전공 교사에게 노동인권교육 직무연수를 받게 하고 자체 교사를 양성하겠다는 뜻이다.
대구청노넷 강사들 일거리가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우리 요구 중 하나가 노동인권교육을 정규교과로 인정하라는 것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교육 내용은 검토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우리 몫이기도 하다. 아직은 말만 무성하고, 실행되는 것이 없으니 좀 더 두고 보고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이번 조사는 전문연구자 하나 없이 열정만 가지고 접근한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하나는 이런 조사를 통해서 객관적인 상태를 짚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청소년노동실태를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한 곳이 많지만,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역의 통계라는 의미가 컸다.
둘째는 다른 지역의 열악함에 비해 대구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대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이 대구에서 뿌리내리고 자리를 잡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우리의 헌신성의 결과를 확인한 점이다. 자발적으로 시간과 마음을 내면서, 고민의 양도 많아지고 내용도 깊어지면, 활동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한 일은 정말 대견하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다음 한 발 나아가는 힘이 생길 테니 말이다. 욕심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기서 좀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 말이다.
네 번째는 그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음 해 더 나은 데이터를 만들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청소년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세우자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다. 청소년을 만나는 공간을 학교에서 거리로 보폭을 넓혀보기로 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 조금씩 풀어야 하는 숙제다. 노동인권교육을 일반계 고등학교까지 확대해서 대한민국 의무교육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현재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규교과수업도 아닐뿐더러 특성화고 현장실습 전 2차시 수업을 전교조 실업위원회가 교육부와 협의해 겨우 일군 성과다.
특성화고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지만, 청소년들은 알바 경험을 상당히 가지고 있고, 알바 중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은 이번 설문조사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확인됐다.
교육방식도 사이버교육이나 집체교육방식을 벗어나 교실수업으로 해야 한다. 학생의 삶과 연결된 교육이니만큼 강사 양성, 교안 개발, 교수법 연구, 교재 발간 등에 교육청이 나서야 한다.
또, 청소년노동을 전담할 알바신고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특성화고는 알바신고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가 된 곳은 알바신고센터를 설치했지만, 담당자 없이 간판만 부착한 수준이다. 대한민국 교육수준이 얼마나 저급한지 잘 반영한 셈인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내실 있는 상담이 가능하도록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알바신고센터에 접근하기 쉽도록 교육청이 노력해야 한다.
알바를 하는 학생은 특성화고뿐만이 아니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 탈학교청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학교뿐 아니라 지역 거점에 청소년노동을 전담하는 알바신고센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민간의 힘으로 만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지자체와 교육청, 노동청 등이 나서서 청소년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알바란 생계비를 버는 노동이다. 생활을 유지하고 영위하기 위한 것인데, 청소년이란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적은 임금을 감수하고 더러운 일자리에서 꽤 긴 시간 일하는데도 보호받을 길이 없다. 인간의 품성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노동을 권리로 이해하고 보호할 수 있는 법 제도 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 알바 자리는 소수가 고용된 일자리가 많은데, 주로 편의점, PC방, 주유소, 식당 등 서비스업종이 상당수라고 예상된다. 간혹 공장에서 일하는 학생들도 눈에 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이 부분적으로만 적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청소년노동을 보호한다는 취지뿐 아니라 취약계층일수록 법적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1인 이상,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특히, 아동, 청소년 고용사업장의 노동법 위반에 대해선 특별히 처벌기준을 더 엄격히 하는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지만, 노동현장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위계와 서열의 밑바닥을 뜻할 뿐이다.
청소년노동인권 교육을 위한 발을 들여놓았는데, 교육뿐 아니라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 나섰다. 앞으로 많은 사건과 이슈를 만나서 변화가 있겠지만, 이 사회가 현재의 문제를 모른 체하지 않도록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은 시동을 걸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