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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金秀映)은 김수영(金洙暎,1921~1968)이 아니다. 19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남행시초」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수영은 1967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여 경북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창작과비평사,1996)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등단작의 제목부터 여로를 품고 있었듯이, 이 시집에는 숱한 “이정표”(「파로호에 닿다」)가 있다.
바닷가 사람들의 체험이 나오는「남행시초 1」ㆍ「그리운 포구」등의 시를 재구성해보면, 시인의 가족은 원래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따라 탄광촌으로 이주를 한듯하다. “내가 살던 곳은 구절리 돌밭/ 몸을 망친 아버지와/ 마음을 버린 어머니의 광산마을”(「구절리」), “버팀쇠로 받친 탄천변 열평짜리 우리 집/ 슬레이트 지붕 위로 탄가루가 더께로 쌓이고/ 우리의 가슴에도 화석처럼 죽음의 그늘이 캄캄하게 내린다”(「사북일기 1」), “오래 침식되어 골짜기를 이룬 뾰죽한 산들/ 검은 뼈 같은 나무들이 바람을 부르고 있다/ 골짜기로 모이는 땅울음 소리, 가슴을 치는 빗소리”(「함백을 지나며」), “캄캄하군,/ 외가닥 선로에서 마주 오는 기차를 기다리던 화차가/ 석탄더미를 떠메고 낭떠러지 위를 치달린다”(「고한행」) 구절리ㆍ사북ㆍ함북ㆍ고한은 모두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지명으로 규모가 큰 광업소가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시인의 원체험 장소는 탄광이다. “어둠 속에서만 사는 사람들이 소의 얼굴을 하고/ 죽은 소보다 더 외로운 뿔을 달고 산다”(「소를 찾아서 2」), “어둠 속에서는 가장 캄캄한 것들이 환하다”(「고한행」), “기차가 간다/ 무거울수록 쇳내를 풍기며/ 벌거벗은 희망처럼 어둠 속을 무찔러 간다”(「기차」), “다시 돌아간다/ 막장에서 떠나온 막장으로 가는 밤기차를 타고”(「외길」) 인용된 시구들은 갱부들의 체험에 시인의 감상을 얹은 것이며, 시인은 입(언어)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발언하고 있다. 시집의 제4부에 모은 시가 대체로 그렇지만, 이것은 시인의 본령이 아니다.
시집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검은 우물」의 첫 번째 연 일부와 마지막 연 전체를 보자. “외딴곳에 집이 한 채 있으면 하고 생각하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돌투성이 언덕, 뙤약볕에 익은 돌들이/ 서늘해지는 밤이면 불꽃을 내며 터지고/ 뜨거운 돌 아래 뱀과 붉은 지네가 우글거리는 곳에/ 바닥이 안 보이게 우물 하나 파고/ 밤마다 들여다보며 있고 싶지”, “아무리 퍼마셔도 목마른 물이 있지/ 끊임없이 솟아도 결코 차오르는 법 없는/ 밑바닥 없는 구멍 우물 바닥은/ 내 눈보다 더 축축한 검은 빛이지”
시인의 자전적 체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검은 우물」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갱(坑)이다. “사는 건 얼마나 많은 구멍으로 이루어진 어둠일까”(「구절리에서」), “누구에게나 저마다 숨겨놓은 골짜기가 있다”(「겨울산」)라는 표현들이 갱으로부터 나왔듯이, 시인은 탄광촌에서 보고 들은 갱의 사정을 ‘검은 우물’로 변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변용은 더 이상 타인의 체험을 경유하거나 누군가를 대신해 발언하고 있는 게 아니다. 윤동주(「자화상」)와 김춘수(「집 1」)의 우물 들여다보기가 그들의 내성(內性ㆍtolerance)을 발설한 것이었듯이, 시인의 우물 들여다보기도 그 어떠한 간접적 경험이 끼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자신만을 지각하고 있다. 이것은 우물이 거울과도 같은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김수영은 “사라지고 싶다/ 어느 캄캄한 구멍 속으로”(「희망에 대하여」), “그것의 정체를 모르겠다/ 출구 없는 미궁을 본 적이 있는가/ 열려 있어 빠지게 되는 닫혀진 무한”(「출구를 위하여 」)이라는 식으로, 탄광촌에서의 유년 체험을 생의 실존적 인식으로 확장했다. 천양희는 유폐와 도피, 무덤과 자궁을 상징하는 우물의 마력을 “우울과 우물의 깊음이여”(「산행」)라고 표현했다. 시인은 우물/우울에 깊이 빨려 들어가는 한편, 그 유혹을 떨치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사막으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