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쓴이 손소희 씨는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청소년노동인권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청소년노동인권 신임강사 양성 교육과정을 거쳐 학교현장 수업에 참관하게 됐다. 한 학교 한 학년 전체 동시 수업을 하므로 큰 학교일수록 강사가 많아야 한다. 아니면 두 번으로 나눠서 수업한다. 강사의 적정시간은 2시간 정도다. 하지만 몇몇 강사는 4시간을 연달아 해야 했다. 이숙현 선생님은 4교시 수업이 짜여있었고, 나는 3교시와 4교시 수업을 참관했다.
노동인권 교육은 2차시로 진행한다. 1차시는 청소년인권 일반이고, 2차시 수업은 노동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전 골든벨” 퀴즈형식으로 진행한다. 이숙현 선생님은 20여 년을 비산동 저소득층과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한 전문가답게 학생을 집중시키는 힘이 남달라 보였다.
학교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아침 등굣길, 오늘 만날 특성화고등학교 학생과 인사는 어떻게 할지,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관심을 끌지, 학생들과 첫 만남을 상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첫 수업을 참관한 교실, 종이 울렸다. 수업 시작과 함께 학생들은 미리 준비나 한 듯이 책상 위를 말끔히 치우고 작은 담요 같은 천을 꺼내서 쫙 펴더니 드러눕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드러눕는 이도 있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반 전체가 다 전멸하지는 않았다.
강사에 따라 드러누운 채로 수업하기도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뭔가를 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드러누운 이를 강제로 깨워서 수업을 듣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 기운이 넘쳐흘러 나의 기를 다 빨아들이는 듯 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생각해봐도 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채 내 마음은 오묘하기만 했다.
명색이 인권강사로 왔는데 수업 중에 잠을 잔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법이었다. 사실 강단에서 힘들게 강의하는 사람을 앞에서 예의 없는 모습에는 화도 났다. 측은지심도 느껴졌다. 뭔가 제각기 사연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학교에서 이건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음 한쪽이 찌릿했다.
처음 접한 교실풍경에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노동인권 교육 1차시 수업은 인권일반 내용이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그냥 자장가로 들릴 수도 있겠다. 2차시 수업은 그나마 몸을 좀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잠자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퀴즈 풀고 상품을 받는 게임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관심도 끌고 약간의 경쟁심도 유발했다. 어떨 때는 경쟁이 과열돼 점수를 주는 것에 대한 찬반토론도 있었다. 학생과 학생 간 또는 학생과 강사 간에 열띤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이 선생님이 3교시를 연달아 하시고는 너무 힘들었나 보다. 내게 4교시를 부탁하신다. 퀴즈는 노동법 관련한 것이니 내가 잘 알 거라 믿고 권하신다. 웬만하면 거절할 텐데 이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 보여 보조하던 중 얼떨결에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다행히 노동조합 활동 경력이 있어 설명은 가능했지만, 학생들과 공감을 이끌어가는 힘은 턱없이 부족해 나 혼자 흥분하여 열변을 토한 듯했다. 인권강사로서 단어 사용에 관한 고민도 생겼다. 학생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쓴 말이 때로는 권위적이고, 불쾌한 언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어가 자신의 뿌리 깊은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사용한 불편한 언어를 타자에게 감내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매 순간마다 청소년인권에 대해 생각하고 사고를 정립하는 과정이다. 당장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그리고 바꿔나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성화고 3학년은 벌써 현장실습을 떠난 학생도 있었고, 현장실습 전 대기상태인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는 이미 학과수업을 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현장실습 전까지 학생들을 정규수업시간 동안 학교에 붙잡아두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사실 그렇기도 하단다.
그러다 보니 노동인권 교육은 겨우 두 시간이지만, 그 시간마저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수업 중 벌서러 가야 한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징계 맞으러 가야 한다는 학생도 있고, 취업 관련 상담하러 가야 한다는 등 온갖 이유를 다 붙여서 수업을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학생을 의심할 일은 아니었다.
수업 진행 중에 학교 교사가 불쑥 들어오는 상황도 있다. 노동인권교육이 정규과목은 아니지만, 엄연히 수업인데 강사의 교권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교실 내 예절이 지켜지지 않는 것도 이상할뿐더러 뭔가 시간 때우는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다 다른 반 학생이 친구 만나러 왔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기 반 수업할 때는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다른 반으로 넘어오는 경우라고나 할까? 반원을 다 알 수 없는 당일 강사 입장에서는 황당하긴 하지만 또, 도리가 없어 수업은 수업대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현장실습 나가면 까맣게 잊어버릴지라도 나에게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 옛날에 노동인권 강사가 요런 말을 했었다는 것, 한 번만 기억해줘도 오늘 교육은 성과가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처음에는 인권강사로서 드러눕는 학생들도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고 마음을 다잡고 수업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드러누운 학생은 전날 학교를 마치고 알바를 했을 것이고, 학교와 일터를 오가는 피로가 학교를 휴식처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현장실습 나가기 전 두 시간의 노동인권교육은 어쩌면 이 학생의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은 알바로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았을 수도 있고, 일한 것보다 임금을 적게 받았을 수도 있다. 임금을 받지 않는 무료노동을 강요받았을 때 거절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하다 다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와 마주했을 때, 인터넷에서 해결방법을 찾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피해 학생은 “재수 없다”며 침 뱉고 쓰린 속을 달래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은 좀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고 권리 앞에서 잠자는 법을 깨워 손짓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잠자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수업 시작하기 전에 부탁은 했어야 했다. 수업 중 피곤하면 좀 누워있어도 괜찮은데 자지 말고 귀는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수업 중 엎드리는 것은 이해하나, 친구와 떠들고 수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잠들지 않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교수법은 연구해야 할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노력은 강사로선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인권교육 강사로서 세상에 모든 학생들이 노동기본권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과 생각하는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 역할이자 몫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