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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공개센터)가 진행한 <검찰의 금고를 열다> 프로젝트 시즌2에 대구/경북 검찰청 검증을 담당하는 언론사로 참여했다. 뉴스타파와 뉴스민을 포함해, 경남도민일보,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 등 6개 언론이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을 꾸렸고, 전국 67개 검찰청의 예산 오남용과 세금 부정 사용을 추적했다. 결과는 14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검찰총장 뿐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검찰이 특수활동비를 비밀리에 관리하는 ‘현금 저수지’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기관은 회계연도 독립 원칙에 따라 그해 남은 예산은 반납하고 다음해 할당된 예산을 사용해야 하지만 검찰은 임의로 남은 돈을 보관하는 ‘현금 저수지’를 운영하면서, 이듬해 초 0원이어야 할 계좌에서 돈을 꺼내 쓰는 행태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 10개 검찰청 중에서도 8개 검찰청에서도 ‘현금 저수지’ 운영 정황이 확인됐다.
국가재정법,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연말 불용액 반납
대검찰청, “연초 수립 집행계획 따라 각급 검찰청 배정”
법무부, 2018~2020년 특활비 불용액 0원
국가재정법 3조에 따르면 모든 정부 기관은 한 해가 끝날 때까지 다 못 쓴 예산은 국고에 반납하고 새해에는 새 예산을 받아 써야 한다. 검찰 역시 원칙적으론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법무부는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행정소송 과정에서 내놓은 준비서면을 통해 각 검찰청은 법무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사용하고, 예산이 남으면 반환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대검찰청은 “특활비는 수사 등 업무 소요를 토대로 연초에 수립한 집행계획에 따라 각급 검찰청과 대검 각 부서에 배정하고, 업무상 필요한 경우 수시로 배정·집행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법무부·대검찰청 설명을 종합하면, 2018년부터 2020년 사이 대검이 각 검찰청으로 첫 특활비 정기분을 내려보낸 2018년 1월 12일, 2019년 1월 14일, 2020년 1월 10일 이전에는 지역 검찰청이 특수활동비를 집행할 수 없어야 한다. 실제로 법무부는 국회에 이 기간 검찰 특활비 회계연도 불용액이 0원이라고 보고했다.
전국 63개 검찰청 중 55개서 미반납 정황
대구고검, 대구지검 포함 지역 검찰청 8곳도 마찬가지
하지만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 취재에 따르면 대검 뿐 아니라 전국 63개 검찰청 중 55개 검찰청이 1월 정기분을 받기도 전에 특수활동비를 지출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1원도 없어야 할 계좌에서 돈이 생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대구경북 검찰청 10개 중에서도 대구고검, 대구지검, 서부지청, 안동지청, 경주지청, 포항지청, 김천지청, 영덕지청 등 8개가 2018년부터 2020년 사이 빈 계좌에서 돈을 꺼내 쓴 기록이 확인된다. 3년 동안 8개 검찰청이 정기분 지급도 전에 쓴 특활비는 모두 1,484만 7,980원이다.
가장 많은 집행내역이 확인되는 곳은 대구지검이다. 대구지검은 3년 모두 정기분 입금 전에 특활비 집행이 이뤄졌다. 2018년엔 정기분 지급일(1월 12일) 이틀 전(1월 10일)에 77만 원이 집행됐고, 2019년엔 지급일(1월 14일) 전에 5건, 174만 9,000원, 2020년에도 지급일(1월 10일) 전에 4건 113만 4,000원이 집행됐다. 3년간 10건, 합계 366만 원이다.
영덕지청도 3년간 같은 패턴이 보인다. 2018년엔 1월 5일과 1월 11일 각 4건, 1건씩 합계 200만 원을 썼고, 2019년에는 1월 4일 하루 동안에만 8건 120만 원이 나갔다. 2020년엔 1월 7일 11만 원 1건이 집행됐다. 3년간 14건 331만 원이다.
이밖에도 경주지청은 2018년, 2019년에 합계 4건 120만 원을 썼고, 대구고검과 포항지청은 2018년, 2020년 2년 동안 각각 287만 7,980원(8건), 160만 원(8건)을 썼다. 대구서부지청, 김천지청, 안동지청은 2018년에만 각각 140만 원(4건), 50만 원(1건), 30만 원(1건)을 쓴 내역이 확인된다.
2021년 이후 대검찰청 특활비 집행 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지만, 대구경북 10개 검찰청 중에는 2021년 이후에도 1월 초순부터 특활비를 집행한 내역이 확인된다.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엔 1월 초중순경 정기분이 지급된 전례에 비춰보면, 추가 자료 확보에 따라 ‘현금 저수지’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대전지검 서산지청, 지출내역기록부 불용액 이월 적시
검찰총장, “지출 결의 완료해 보관하다 연초에 사용”
공동취재단, “비밀스럽게 잔액 관리하며 국민세금 맘대로 써”
공동취재단 취재에 따르면 이처럼 ‘현금 저수지’를 둔 지역 검찰청은 대구경북을 포함해 55개에 달한다. 특히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2018년 1월 특활비 지출내역기록부 표 하단에 “배정액=이월(5,297,790원)+금월배정(5,400,000원)”이라는 수식을 기록해 버젓이 전년도 예산을 이월해 썼다고 드러냈다. 같은 기록은 2019년 1월에도 확인된다.
이미 검찰총장은 지난 7월 공동취재단 보도를 통해 특활비를 현금으로 뽑아서 해를 넘겨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샀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는데 이원석 검찰총장은 “보관하고 있으면서 연초에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불용액 미납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이 총장은 “예산 회계 처리상 지출결의를 연내에 다 한다. 그러면 지출결의를 해서 회계부서에선 다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집행됐다’고 하고, 지출결의에 의해 우리 예산 부서에선 지출결의가 종합적으로 되고 나면, 연초에 사용은 하지만 이미 지출된 것으로 정리를 해서 연초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기밀수사 등의 명목으로 써야 할 특활비를 지출한 것으로 처리한 뒤에, 임의로 어딘가에 현금으로 보관하다가 실제 필요할 때 쓴다는 의미다. ‘현금 저수지’를 조성한다는 걸 인정한 것이지만 이 총장은 “회계 원칙에는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국가재정법 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공동취재단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관련 사실을 공개하면서 “검찰이 국가의 예산·회계관리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해 왔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이라며 “현금으로 국민세금을 맘대로 써 온 검찰 조직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밀 수사에 쓰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부적절한 명목으로 ‘쌈짓돈’처럼 써 왔을 뿐 아니라, 법령과 기획재정부, 감사원 지침까지 위반한 의혹을 사면서까지 ‘현금 저수지’를 만들고, 비밀스럽게 잔액을 관리하면서 국민 세금을 맘대로 쓰는 위법·탈법·편법을 국회가 더 이상 좌시해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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