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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허승규 전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서 만난 반려동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5)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6)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7) 베를린에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8)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다짐한 소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9) 재자연화 이자르강 생태탐방과 4대강 사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0) 녹색당 도지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1)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의회중심제인 독일정치
기행단은 슈투트가르트 일정 이튿날, 바덴뷔르템부르크(이하 바덴) 녹색당 주의원 점심 간담회에 참여했다. 독일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의회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의원내각제로 알려진 의회중심제는 집행권력인 행정부를 입법권력인 의회 중심으로 구성한다. 정부의 성립과 존속은 의회에서 신임 여부에 달려 있다.
쉽게 말해서 의회 다수당(과반이 넘는 정당)이 집행 권력을 얻는다. 반면에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다. 행정수반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를 국회의원 선거와 별도로 진행한다. 국회 다수당이 아니더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면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 일명 ‘여소야대(대통령이 소속된 여당 국회의원 숫자보다 야당 국회의원 숫자가 많은 경우)’ 정국이 발생할 수 있다. 1997년 김대중, 2002년 노무현, 2007년 이명박,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모두 국회 다수당이 아닌 정당의 후보로, 기호 1번이 아닌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 다수당은 더불어민주당이지만, 정부를 운영하는 집권세력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다.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와 광역·기초의회 선거는 별도로 진행한다.
반면에 의회중심제인 독일에선 여소야대가 나올 수 없다. 국회의원 선거(연방의원 선거) 결과 의회 다수당에서 행정부 수반인 총리를 선출한다. 차기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 하면 총리는 다른 정당으로 교체된다. 독일은 연방정부 차원의 의회중심제를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적용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다르게 운영한다. 일본은 국민들이 총리를 직접 선출하지 않으며, 의회다수당에서 선출한다. 이는 독일과 비슷하다. 반면 지방정치는 한국과 비슷하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선으로 뽑는다.
독일의 의회중심제를 이해한다면, 바덴주 다수당이며 기독민주당(CDU)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 주의원 간담회는 바덴주 행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과의 간담회이기도 하다. 한국녹색당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고 있는 바덴주 녹색당 의원들을 만났다.
적녹연정이 아닌 흑녹연정 들어보셨나요?
독일녹색당은 전통적으로 사회민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다. 이른바 적색(사회민주당)과 녹색(녹색당)의 연정인 ‘적녹연정’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녹색당은 7년간 사회민주당과 함께 적녹연정을 운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의 문제를 대변해온 사회민주당과 성장지상주의가 만든 환경 문제를 생태적으로 접근하는 녹색당은 과거 적대적인 시기도 있었다.
독일녹색당은 과거 서독 사회민주당 정권의 핵무장 정책에 반발한 정치세력이었다. 녹색정치세력은 괴거 사회민주당의 성장지상주의와 반생태주의적인 정책에 날을 세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녹색과 적색은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녹색정치세력은 기후위기의 원인이자 결과인 불평등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정의로운 녹색전환을 추구한다. 적색정치세력 또한 환경문제에 내제된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기후정의 실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보수정당들이 환경문제를 기술주의적, 관리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다르다.
그런데 바덴주에선 독특하게 녹색당과 기독교민주연합(이하 기민당)이 연립 정권을 구성했다. 바덴주는 수십 년 동안 기민당이 집권한 지역이다. 보수정당의 탄탄한 지지 기반이다. 그런데 2011년 바덴주의회 선거 당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등을 이유로 기민당은 단독 과반에 실패한다. 이에 2당과 3당인 녹색당과 사민당은 적녹연정을 통해 집권한다.
2016년 주의회 선거에선 녹색당이 기민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되었으나, 사민당 의석이 모자라서 적녹연정이 불가능했다. 이에 녹색당은 기민당과 연정을 구성했고 지금껏 집권하고 있다. 기민당의 상징색인 검정색을 따서, 녹색당·기민당 연립정권을 ‘흑녹연정’이라 부른다. 전통적인 ‘적녹연정’과 달리 ‘흑녹연정’이 등장한 것은 오랫동안 기민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바덴주의 특성도 원인이다. 이와 함께 독일의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성격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기민당은 보수정당 가운데서도 사회보수주의, 온정적 보수주의, 공동체주의 경향이 강하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시장보수주의’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복지 문제를 공동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회보수주의’ 경향이 크다. 당명에도 ‘기독교’라는 종교적 가치가 들어 있다. 나눔, 사랑 등의 종교적(기독교적) 가치는 기민당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한편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녹색정치는 보수적 가치와도 연결되는 점이 있다. 보수의 어원에는 ‘지킨다’는 뜻이 있다. 과거의 사회적 폐습을 맹목적으로 쫓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반동이지만, 개발만능주의에 맞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며 생태적인 환경을 지키는 것은 녹색 보수주의의 지향일 수 있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다보면 전국적인 정치 지향은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만, 환경 문제의 해결과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웃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환경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지자들에 비해 국민의힘의 주류 정치인들이 훨씬 환경감수성이 떨어진다. 이처럼 어떤 정치적 이념이든 단편적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복합적이다.
시민들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정치적 스펙트럼은 훨씬 복잡하다. 국민의힘 지지자, 민주당 지지자라고 해서 모든 정책과 현안에 같은 입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정치의 세계에서 단 하나의 이념으로 누군가의 정치적 사고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태도는 위험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태도다.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 이러한 인식은 종종 볼 수 있다. 과도한 정치적 열정은 또 다른 정치혐오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시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훗날 녹색당이 경북이나 안동에서 다수당이 된다면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정의당과도 협치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의회 내에서 협치 가능한 자격 미달이다. 원외정당인 녹색당이 지방정치와 중앙정치에서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고 제도 정치에서 주요 행위자로 자리 잡아야 의회 차원의 경쟁도 협치도 가능한 일이다. 현재는 선거 국면 또는 일상적인 연대 활동에서 협치가 가능하다. 한국녹색당도 입법부와 행정부 내에서도 연합정치를 펼칠 나날을 기대하며 간담회를 시작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녹색당 주의원 간담회
바덴 녹색당 주의원 간담회에는 에너지 기후 대변인인 주의원 유타, 자연전문가이자 바덴주 환경부와 바덴녹색당서 일하는 피셔, 스위스 경계 지역구를 둔 환경위원회 소속으로 환경·교통·독일과 스위스 연계 부문에서 활동하는 주의원, 기후환경·에너지·교육·유럽문제를 주로 다루는 주의원 등이 참여했다. 점심식사를 겸한 간담회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주요 질문과 답변을 아래 요약했다.
질문-바덴주에서 녹색당 집권 이후 어떤 변화와 성과가 있었는가?
답변-2011년 집권 이전에 바덴뷔르템베르크에는 국립공원이 없었으나, 2014년 독일어로 ‘검은숲(흑림)’을 뜻하는 슈바르츠발트 근처에 국립공원을 만들었다. 자연보호와 관광을 연계한 정책이다. 한편 수질보호 시스템이 개선되었고,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립이 용이해졌다. 사회정책으론 만16세 이상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작년부터 적용되었다.
특히 녹색전환과 관련해서 바덴주가 선도적인 정책을 펼치고, 연방정부가 뒤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바덴주에선 모든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려고 한다. 이러한 정책은 연방정부가 바덴주로부터 배우는 정책이다. 연방정부의 재생에너지법 또한 바덴주가 모델이 되었다.
질문-탈핵에너지전환 이후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가?
답변-현재 독일은 영구저장시설이 없다. 현재 임시저장시설 및 중간저장시설이 영구화될 우려가 있다. 중간저장시설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이 설립 때까지 활용한다. 중간저장시설은 시기를 벌었을뿐,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독일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법을 통과시켰다. 2005년 6월 이후 독일에서 모든 고준위 폐기물의 해외 반출과 재처리를 금지하고 심지층에 직접 처분하도록 규정한다. 원칙은 ‘투명한 정보공개’와 ‘지역주민 참여’ 보장이다. 시민들과 함께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할 것이다.
질문-바덴주 정부의 향후 중점 계획은 어떠한가?
답변-에너지전환과 교육 정책. 바덴주 12개 지역 2% 부지를 태양광 및 풍력으로 활용하는 법이 있다. 2024년까지 100개 도시에서 위의 법에 따라 부지를 정해야 한다. 교육 정책의 경우 현재 독일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적성에 따라 인문계와 직업계로 학교가 나뉜다. 바덴주 녹색당은 통합교육 기간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질문-개발업자들의 로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답변-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투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순리다. 이를테면 ‘공개적인 저녁식사’를 한다. 실제 현실에서 개발업자라고해서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만나되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원칙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식사는 같이 하되 공개적으로 먹는다!
질문-국립공원을 만드는 정치 과정이 궁금하다. 어떻게 시민들과 다른 정치세력을 설득했는가?
답변-처음엔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자연공원 설립과 경제 활성화를 연계해서 설득했다. 생태적 문제와 경제적 이익을 연결했고, 결국 3천 7백만 유로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와 함께 바덴주에 기업들이 머물기 위해선 녹색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녹색의 가치와 민생, 일자리, 노동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현재 독일녹색당의 지향이기도 하다.
‘흑녹연정’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흑녹연정’의 장점은 지역 특성상 훨씬 안정감 있게 연정을 구성해서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녹색당 주의원은 ‘녹색 아이디어를 검정 돈으로 실현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다들 웃음을 지었다. 녹색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흐름을 기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다.
나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의 ‘DJP연합’이 생각났다. ‘DJP연합’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과 김종필은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1998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연합공천을 추진해서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지 기반이 취약했던 김대중 정권 초기 대북정책을 포함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보수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이 어느 정도 방패 역할을 했다.
예민한 질문도 나왔다. 바덴 녹색당의 아킬레스건인 슈투트가르트 21에 대한 질문이었다. 과거 바덴녹색당은 슈투트가르트 21에 반대했으며, 여전히 슈투트가르트 21에 반대하는 당원들이 있다.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물었다. 주의원들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슈투트가르트 21 반대가 바덴녹색당의 집권 이유였음을 인정했다. 보수파들이 녹색당을 지지했던 이유였기도 했다.
주의원들은 반대하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끊임없이 계속 소통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다양한 당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당내 정치가 어렵다. 간담회 내내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주의원들은 반대하는 당원들과의 소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의견은 달라도 갈등을 마주하고 소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필수 덕목이 아닐까. 며칠 뒤면 한국에 돌아가게 될 나는 바덴주 녹색당이 슈투트가르트 21 반대를 통해 지키고자 했던 녹색 가치를 잊지 않고, 더 나은 녹색정치를 바덴주에서 펼치길 바랄 뿐이다.
바덴주 녹색당 의원들과 간담회를 마치면서 서로를 응원했다. 바덴주 녹색당 의원들은 한국녹색당의 제도 정치 진출과 녹색시민운동을 격려해주었다. 기행단도 바덴주 녹색당이 녹색 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한국과 독일의 녹색정치에 관한 우애를 확인하며, 기행단은 슈투트가르트 마지막 일정으로 향했다. 마지막 일정은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였다. 민관을 넘나들며 복합적인 녹색정치 현장을 체험하는 일정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