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0月호] 20주기, 9주기 그리고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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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고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시다 2016년부터 작년 6월까지 218안전문화재단 사무국장을 지내신 전재영 선생님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지하철 참사 당시 사건 현장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미흡함을 가장 많이 느끼셨나요?

그 당시 사고 수습이 미흡했다지만 그때는 그게 미흡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었어요. 과거에,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기 이전에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몇몇 사람한테 그 사고의 책임을 묻고, 배상하고, 어딘가에 추모탑 하나 세우면 끝났어요. 그런데 우리는 가족이 불에 타 버려서 내 가족을 찾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어요. 유전자를 검출하고 검사하는 기간에 빨리 자기 가족의 시신을 수습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시신이 수습될 때까지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지 말자고 대구시와 중부경찰서하고 합의했지만 일주일 만에 약속을 어겼어요. 중부경찰서에서 일찍 발견 및 검사한 몇몇 피해자의 유가족들한테는 따로 이야기해서 장례를 치르도록 했어요.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그동안 믿었던 대구시가 아니라고 느껴서 내가 슬퍼만 하고 있을 게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대구시의 잘못된 행동들이 우리를 많이 생각하게끔 했어요. 처음에는 나도 내 가족에 대한 생각만 하면서 슬퍼하고 신을 원망했지만, 슬퍼만 하고 있다가는 내 가족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되겠다는 두려움에 대책위원 활동도 시작하고 억울한 생각들을 내뿜었어요.

진상 규명이나 추모 공간 마련 등 일련의 과정들이 순탄치 않았을 텐데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부상자가 151명이고 희생자(사망자)가 192명이에요. 192명의 유가족이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지는 않겠지만 공통적인 하나의 염원은 자기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 그다음에 어떻게든 이 참사를 기억해서 앞으로 이런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추모 공간 만들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갈렸어요. 희생자 대책위 같은 경우에는 교육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추모관, 추모탑, 묘역이 추모 공원에 항상 같이 있어야 된다’라고 주장해요. 추모 공원이라고 만들기를 희망하고 대구시와 이야기를 하니까는 처음에는 ‘과거에 안 했던 걸 당신네들은 왜 하느냐?’ 하며 안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대구시를 설득했지만, 그 이후의 태도를 보면 ‘이런 참사가 대구에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현상’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팔공산 주민들의 반대를 핑계로 추모탑, 추모관을 흩어놓으려고 하는 걸 보면 그래요. 또 대구시는 몇몇 사람들이 ‘시에서 그렇게 요구하니까 요구대로 따르자’ 하는 걸 가지고 추모공원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유가족이 있다고 언론에 이용해요. 대책위에서 몇 명 정도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해 주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정도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5명도 안 돼요. 그 5명이 전체 유가족을 대신할 수 없잖아요.

대구시가 유가족들 사이의 사소한 의견 차이를 갈등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네요.

그런 피해가 우리한테는 상당히 크죠. 시에서는 많은 것들을 축소하려는 노력해 왔어요. 분향소도 조그마한 곳에 하려고 하고 ‘추모탑만 있으면 되지 묘역은 무슨 필요 있느냐’고 했죠. 그렇게 추모관이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되었어요.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적힌 탑도 있는데, 그게 추모탑이에요. 그런데 아직 추모탑이라고 못 부르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의 이름을 제대로 붙이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지껏 노력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기억해 줬으면 하는 진실이 있나요?

지금도 대부분의 시민이 대구 지하철 참사의 원인에 대해 김대한이 잘못했고, 마스터키를 뽑고 도망간 운전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초창기에 사고 원인과 진상 규명부터 보면 김대한이라는 사람이 휘발유를 가지고 중앙로역에서 불을 냈단 말이에요. 거기까지는, 불을 냈으니까, 잘못이 맞아요. 그런데 불이 났을 때 그 전동차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어요. 우리나라에 불이 번지지 않을 수 있는 전동차를 만들 기술이 있고, 그걸 홍콩으로 수출까지 했음에도 정작 우리나라는 그런 불에 잘 타는 전동차를 몰고 다녔어요. 국민의 안전을, 대구 시민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러면 안 됐죠. 안타깝지만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대해 아직 잘 몰라요.

원천적인 책임은 그런 불쏘시개 전동차를 몰도록 결정했던 책임자들에게 있어요. 그런데 그 책임자들은 아무런 벌도 안 받았어요. 단지 그 현장에 있었던 운전자나 시스템 관리자에게 모든 사고의 책임을 전가했어요. 실질적인 권력과 지시권을 가진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현장 전면에 있는 사람의 문제라고 회피하는 형태가 되면 이러한 사고는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어요. 실제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져야 하고, 그래야만 이러한 사고들이 줄어들 수 있고 또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추모하는 마음과 참사가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2014년 대구에서 《CMCP : 대구지하철참사 11주기 기획전》전시가 열렸습니다. 전시가 선생님께 어떻게 다가갔나요?

우리한테는 충격적이었어요. 그때 11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벌써 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한테 관심을 가져 줬다는 점에서 위로가 됐어요. 피해자와 유가족의 의견도 많이 들어보고 그것들이 미술작품에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과거에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많은 감정들을 느껴 봤어요.

저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이 인상 깊게 본 것은 희생된 가족 이름을 여러 색으로 적어 둔 작품이었어요. 그다음에 중앙로 부근에 플랜카드를 걸어서 대구지하철참사가 11주기라는 것을 알리는 작품들도 고마웠어요. 희생자 가족이신 윤근 님의 책과 아카이빙 작품을 포함해서 여러 영상, 네온사인 등의 작품들로 대구 시민들에게 피해자의 마음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 좋았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지하철 참사와 비슷하게 지자체와 소통이 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지하철 참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이제 얼마 있으면 10월 29일이죠.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는데,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거는 과거보다 오히려 더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보다 더 후퇴했어요. 지하철 참사 이후에 일어난 참사에 대해서 우리는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곳을 제대로 만들었다면 그 이후에는 참사가 안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교육을 받으면 아무래도 시민들이 안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질 텐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자체나 정부에서는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만을 기다리다 보니까 참사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월호 사람들한테도 미안하고 또 이태원 사람들한테도 미안해요.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응원이 될 법한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그분들한테 응원의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아직 진상규명, 안전 교육, 피해자의 인권 같은 문제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피해자가 만족하진 못할지라도 과거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될 거예요. 이렇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은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정부에게는 실망스럽죠.

큰 문제 중 하나로 유가족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유가족끼리 있으면 같은 입장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울고 웃고 싸우면서 해소가 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유가족끼리 있을 때 그 트라우마에서 제일 많이 또 빨리 벗어나는 것 같아요. 과거부터 알고 지낸 친구에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을 유가족들끼리는 할 수 있어서 금방 일상적으로 지낼 수 있어요.

그런데 이태원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런 걸 막았죠.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 생각하는 유족간 연락처 교환을 막아서 서로의 소식도 알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니까 굉장히 답답하고 불만스럽고 안타깝고 그래요. 내가 재단에 이제 있을 때 유가족들이 모여 있을 수 있는 사무실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재단이 설립되기 전에는 유가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작은 공간을 얻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만들 만큼 유가족들에게는 그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거예요.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텐데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대구 시민으로서 지하철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지하철 참사에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은 고맙죠.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에요.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대구 지하철 참사를 생각하게 된다는 여러분 (인터뷰어)들한테 고맙다고 생각해요. 내가 느끼기에는 사람들은 세월호가 일어났으면 세월호에 대해서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으면 이태원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를 보고 우리 대구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문가 같은 사람들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글_표출지대 김지민, 박소현
pyochu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