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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허승규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서 만난 반려동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5)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6)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7) 베를린에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8)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다짐한 소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9) 재자연화 이자르강 생태탐방과 4대강 사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0) 녹색당 도지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에 참석하다
‘슈투트가르트 21’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포함한 철도 및 도시 개발 프로젝트다. 1994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고, 2010년에 건설을 시작했다. 쟁점은 ‘슈투트가르트 21’에 유서 깊은 중앙역 역사 철거 계획이었다. 중앙역사의 문화재로서의 가치, 역사적 의미, 개발과 보존의 문제, 막대한 비용 문제, 도시 계획에 대한 관점 등 수많은 쟁점이 있었고, 반대하는 시민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녹색당도 슈투트가르트 21 반대에 앞장섰다. 2010년대 전후로 슈투트가르트와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녹색당 시장과 주총리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반대 운동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녹색당이 집권한 이후 주민 투표 결과 근소한 차이로 ‘슈투트가르트 21’ 찬성이 앞섰다. 주민투표 당시에 제공된 정보가 정확했는지 등 주민투표 자체도 논란이 있었지만, 여하튼 집권당인 녹색당은 주민 투표 결과에 승복했다. 현재 슈투트가르트 21 공사는 진행 중이고, 여전히 반대 시위는 계속되고 있으며, 반대하는 시민들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슈투트가르트 21을 반대했던 녹색당은 부득이하게(?) 슈투트가르트 21 공사를 집행하는 주체가 되었다.
독일생명평화기행단은 슈투트가르트 반대 21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는 슐로스플라츠(성 광장)에서 오후 6시 즈음 열렸다. 이번 집회에는 기행단을 대표해서 이명은 생명평화아시아 사무국장의 연대 발언이 있었다. 집회 참여를 소통하다가 주최측으로부터 연대 발언을 제안받고 기행단 준비팀에선 회의를 했다.
독일녹색당이 집권중인 지방정부는 주민투표 결과 이후 슈투트가르트 21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녹색당은 기행단의 공동주최 단위이면서, 독일녹색당과 함께 세계녹색당의 일원이다. 독일녹색당이 집권중인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에 한국녹색당이 공동주최 단위인 기행단에서 연대 발언을 하는 것이 괜찮을지 논의했다. 회의 결과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녹색당이 잘못하고 있다면 내부 비판도 자연스러울 뿐더러, 다른 나라 녹색당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필요하다. 한편 독일녹색당도 과거 슈투트가르트 21을 반대했으며, 주민투표 결과 공사를 추진 중이지만, 무분별한 개발 담론에 전면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며, 공사 찬반과 별개로 생태적인 도시 계획의 필요성은 지향한다. 기행단의 연대 발언 또한 공사 자체에 대한 찬반 표명에 국한하기보다 국경을 넘어 생태적인 도시를 바라는 연대의 취지가 컸다. 다만 한국녹색당 부대표인 김혜미, 허승규보다 이명은 생명평화아시아 사무국장이 발언하는 게 적절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경을 넘어 생태적인 도시를 위한 연대 발언
광장에서 진행된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는 마을축제 분위기였다.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고, 맛있는 음식도 팔았다. 청년층 참가자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지역에서 살아온 장년층, 노년층 참가자가 많았다. 색소폰과 밴드 연주와 함께 집회가 시작되었고, 얼마 뒤 이명은 사무국장과 기행단 내내 독일어 통역을 맡았던 성다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프로젝트매니저가 무대에 올라갔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90년생 한국인 녹색당원 콤비는 뜨거운 박수와 함께 연단에 섰다. 이명은 국장은 한국과 대구의 이야기를 통해, 국경을 넘어선 생태적 가치에 대한 연대를 연설에 담았다. 독일에서 정치학 학부와 석사를 마친 성다인님의 멋진 독일어 통역이 함께 했다. 머나먼 한국에서 온 생명평화기행단의 발언을 집회 참가자들은 열열이 환영해주었다. 우리는 슈투트가르트에서 한국과 대구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하나되었다. 아래는 이명은 국장의 발언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명은입니다. 한국의 환경 싱크탱크, 생명평화아시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일생명평화기행 일원 중 대표로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시민단체, 정당 소속의 18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환경과 녹색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면 한국의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나요? 수많은 현대적인 고층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대규모 개발을 통해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장단점이 있고 환경적 부작용 또한 초래합니다.
제가 사는 대구는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이곳에서도 한국의 다른 주요 도시와 마찬가지로 건물이 끊임없이 재건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구에는 오히려 주택 공급 과잉이 문제입니다. 주택이 부족해서 하는 건축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는 개발이기 때문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의 또 다른 예는 대구의 공항 후적지 개발 계획입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만들겠다며, 현 대구 시장은 필요하지 않은 대규모 도시 개발 조치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은 우리가 맞서야 하는 중요하고 공통된 과제입니다. 환경에 해롭지 않아야 합니다.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개발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는 매우 중요합니다. (박수)
개발주의와 싸우는 모든이에게 지지를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초청해주신 주최 측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박수)”
녹색 정치는 모든 개발에 반대하는가?
녹색 정치가 반대하는 개발은 무엇인가?
녹색 정치는 모든 개발에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성찰이 결여된 성장지상주의와 개발만능주의에 정면으로 맞선다. 녹색 정치는 특정한 개발 그 자체가 최선인지, 개발로 인한 이익과 피해는 누구에게 향하는 것인지, 개발 행위를 둘러싼 생태계를 고려하면서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인지 되묻는다. 녹색 정치가 주목하는 것은 성장이 아닌 성찰이다. 무분별한 개발보다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대안을 우선한다.
한국 사회의 주요 화두는 지역 소멸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 균형 발전이 요구되는데, 대부분 토건을 통한 개발 담론에 치우쳐 있다. 나는 모든 토건 개발 사업을 반대하지 않는다. 경북 북부 지역 산골 마을의 도로가 너무 좁아서, 차 사고가 나면 응급차가 지나갈 수 없는 조건이라면, 시골 어르신들의 생존권을 위해서 도로를 넓힐 수가 있다.
그러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권역마다 세계적인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필요한 일인가? 우리는 새만금 신공항 건설 대신 녹색교통인 기차 노선 신설 및 증차를 주장한다. 생태적이면서, 효율적이며,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을 개선하는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주차장 신설에 쏟는 예산만큼 버스와 자전거 교통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발전 담론에서 녹색 가치는 주변적이었다. 이제는 성장지상주의가 만든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불편한 반대파들의 이야기였던 녹색 가치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기행단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불편한 반대파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한국보다 빨리 산업화를 이루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녹색 정치 또한 앞섰던 독일에서 우리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집회에 나온 이들과의 연대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다음날 슈투트가르트 21 반대측 주민들과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집회 자리에서 듣기 어려운 상세한 이야기는 내일로 기약하며, 마을축제 같은 집회를 빠져나왔다. 집회를 마치고 다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이후는 자유시간이었다. 나는 김혜미 녹색당 부대표와 함께 슈투트가르트에 거주중인 신나희 전 녹색당 유럽당원모임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났다. 신나희 당원은 한국에서 선거제도개혁 단체(구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을 함께 했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정치학 학부와 석사를 마친 신나희 당원과 독일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삶과 녹색당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김혜미 부대표, 박제민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맥주를 마셨다. 이번에도 서로의 삶과 녹색당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야구를 즐기는 아마추어 동호회 vs
팬들의 바람에 복무해야 하는 프로야구 구단
녹색당의 많은 2030 청년당원들은 녹색당의 현실적인 권력의 크기보다 녹색당의 가치에 반해서 입당했다. 녹색당에 회비만 내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당과 관련된 현안에 있어서 말과 글로 의사 표현도 하는 이들을 ‘활동당원’이라고 한다. 활동당원들 또한 녹색당 지지율 때문에 가입한 이들은 적다. 그래서 한 두 번의 선거결과만을 경험하고 쉽게 당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수많은 평당원들과 잠재적 당원들·비판적 지지자들은 녹색당이 녹색당의 가치를 현실 정치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해내길 원한다. 녹색당 바깥의 많은 현장에선 녹색당이 제발 정당으로서 역할을 잘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녹색당은 그냥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즐기면 되는 아마추어 동호회일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팬들의 바람에 복무해야하는 프로야구 구단에 가까울까?
소수의 활동당원은 동호회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 평당원들, 녹색당원들보다 훨씬 많은 한국 사회의 녹색시민들에게 아마추어 동호회 같은 정당은 어떤 의미일까?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된 반(反)녹색 정치를 교체하기 위해 창립된 녹색당에 소명에 비춘다면 녹색당의 길은 명확하다. 1부 리그에 들어가서, 수십 년 동안 회색 빛깔로 1부 리그를 독점해온 기성 구단(정당)들과 녹색 빛깔로 경쟁하는 일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회와 지방의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바깥에 있는 녹색당의 현재 모습이 녹색당의 미래여선 안 된다. 한국 정치의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이 되기 위해, 녹색당의 다른 미래를 위해, 변화를 만들어갈 녹색당원들의 삶을 응원하며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첫날밤을 마무리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