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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차별을 향해, 차별 없는 세상 속으로 온몸으로 돌진한 사람이 있다. 재가장애인으로 살다 20대에 종교시설이 운영하는 거주시설에서 보내며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젊은 시절을 보낸 이규식(56) 씨다. 중증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나 시설의 울타리에 갇힌 삶 속에서 이 씨는 그 시간만큼의 정체를 넘어서려는 듯 세상을 누빈다. 이 씨가 누비는 세상은 당연하게도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곳이다. 이 씨는 세상의 차별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 돌진해 몸으로 부딪쳐 부순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나의 이동권 이야기(후마니타스 출판사, 이규식, 김소영, 김형진, 배경내 저)는 온몸으로 세상과 부닥친 이 씨의 자서전으로, 한국 최초로 등장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는 이 씨가 세상에서 격리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세상에 나와 겪는 온갖 차별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의 주안점인 이동권 문제부터 시작해,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 장애인 거주시설 비리 문제, 장애인 등급제와 심지어 투쟁 중 투옥해 감옥에서 마주한 차별 문제도 나온다. 차별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이 씨의 시선과 투쟁이 책의 전개 과정에서 깊이를 더하면서, 이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마치 세상에 맞서는 다크히어로의 탄생과 같은 서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차별과 투쟁 이야기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씨의 기억과 증언을 기록으로 정리한 김소영, 김형진, 배경내 씨와 같이, 이 씨가 세상 속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갈등하며 함께하는 과정도 함께 나온다. 그들과 더불어 세상을 탐닉하는 유쾌한 순간들이 담겼다. 세상 속으로 나온 중증장애인이 온몸으로 느낀 세상은 어떤 것일까? 이 씨는 “책을 보면 안다”고 단언한다.
18일 오후 4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북콘서트’가 열렸다. 장애인 이동권과 생의 현실을 되짚어 보기 위해 준비된 이번 북콘서트는 대구인권사무소,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했다. 북콘서트에는 저자 이규식, 배경내 씨와 조민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출연해 대담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이기도 한 이 씨는 집필 배경과 동기, 향후 계획도 발표했다. 이 씨는 집필 계기와 관련해 “20년 전부터 집필 계획을 갖고 있었다. 쓰다가 포기하고를 반복했다”며 “(얼마 전 서울 지하철에서)우리들이 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활동했다. 중증장애인들이 왜 이렇게 나서서 활동하는 것인지,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인권활동가 배경내 씨는 “(이 씨의) 글을 올리는 작업을 도왔는데 그 글을 읽고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다. 이규식의 이야기를 기록할 사람을 고민했다. 중증장애인이 왜 이렇게 투쟁하는지, 이동권이란 게 이동할 권리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이야기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며 “낱개의 권리란 없고, 이동하지 못해서 포기되는 삶이 분명히 있는데도 통합적으로 이해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몸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이규식은 천사가 아닌 전사가 됐다. 비범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해지기 위해 비범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의 이야기도 기록될만 하다는 걸 알게 해준 빛나는 이야기”며 “생을 기록하려는 꿈을 꾸는 장애인도 많아진 거 같아 반갑다. 이규식과 같은 삶의 전환이 더 많은 사람에게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북콘서트는 국가인권위원회 유튜브 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