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 쿠팡의 입장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13일 새벽 4시경 경기도 군포시 한 빌라 복도에서 60대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노동자는 물류 전문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가 대리점과 위탁계약한 물류업체 소속이다. 13일 오전 보도가 쏟아지자 쿠팡은 곧바로 입장문을 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짧고 건조한 입장문을 보며 故 장덕준 씨가 떠올랐다. 2020년 10월 12일,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 장 씨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뒤 어머니 박미숙 씨는 아들 친구들이 아직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다는 마음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0일, 3주기 추모제를 앞두고 한 통화에서 박 씨는 “아이를 살피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제대로 보내주지 못했다. 이번 추모제를 통해 쿠팡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활동을 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야간노동 최소화, 물류센터 시설 개선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의 사망에 장시간 야간노동, 클렌징 제도(배송 수행률을 맞추지 못하면 구역을 회수하는 시스템)의 책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정규직, 계약직, 일용직, 자회사의 하청업체까지 세분화된 고용 형태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한다. 정규직 쿠팡맨을 앞세워 나머진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쿠팡은 기자에게도 노동조합에게도 ‘응답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위험을 외주화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게, 쿠팡이 말하는 혁신의 본질일지 모른다.
전혜원 시사인 기자는 2021년 쓴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오늘을 보려면 쿠팡 물류센터 앞을 가야 한다”며 “수많은 자영업자, 프리랜서의 일자리를 쿠팡이 흡수하고 있다”고 짚었다. 전 기자는 “쿠팡이라는 혁신기업에 딱 하나 없는 상상력은 ‘내가 그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능력’”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하나 추가한다면 ‘쿠팡 박스를 옮기는 모든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일 테다.
‘잘못에 대한 인정, 반성 표현, 사과 대상 명시,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 상황과 다르게 알려진 사실 언급’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사과문의 공식’이다. 쿠팡의 입장문에는 억울함 뿐이다. 자회사의 하청업체 소속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쿠팡에게 책임지지 않을 권리를 부여한 건 빠르게 변화한 노동 형태에 대비하지 못한 법과 정치이다. 정치가 최소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장시간 야간 노동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는 다뤄져야 한다.
언론에 따르면 야당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 국감에 쿠팡 관계자를 부를 계획을 갖고 있다. 택배노조는 12일부터 쿠팡 대표를 국토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달라며 국회 앞에서 100시간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문 앞에 택배상자가 배송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시민들의 전방위적 압박이 필요하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