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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시사IN이 추석 연휴를 기해 정치인 신뢰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를 의뢰받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9월 10~12일 사흘에 걸쳐 전국 만 18세 이상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유선 15.5%, 무선 84.5%)을 실시했다. 응답률은 8.2%, 표본 오차는±3.1%포인트(95% 신뢰 수준)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현재 활동 중인 여야 정치인 중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을 물었더니 ‘없음’, ‘모름’, ‘무응답’ 등이 총 46.6%로 나타났다. 1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16.9%를 얻었고, 2위는 6.1%를 얻은 한동훈 법무부장관이었다. 그 밖에 이탄희 민주당 의원 3.8%, 윤석열 대통령 3.7%, 홍준표 대구시장 1.8%,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1.8%, 이낙연 전 국무총리 1.7%,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1.6%,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1.3%,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1.2%였다.
‘다 써가는 카드’ 윤석열? 정권 핵심 인사들까지 합쳐도 12.9%에 불과
1위 이재명 16.9%… ‘7년 전 문재인’보다 앞서나가지 못해
응답자들 상당수는 ‘활동 중인 여야 정치인’을 ‘대선 주자 등’이라고 해석해, 마음 속 선택항에서 현직 대통령을 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윤 대통령이 3.7%에 그치며 한 장관에게도 뒤진 것, 근래 또다른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긍정평가율이 한 장관 호감도보다 낮게 나왔던 점은 특기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도 ‘다 써가는 카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 중 윤 대통령을 선택항에 놓지 않은 사람들은 한동훈 장관이나 김기현 대표, 원희룡 장관을 택했겠지만, 네 사람을 합쳐도 12.9%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권 핵심 관계자들은 국민의힘 지지층 안에서도 깊고 넓은 신뢰를 받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입당 직전 어느 지지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을 접수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웠었지만,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이 역대 지도자들을 쓰고 버린 역사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지지층이 가장 두터운 정치인이 이재명 대표임은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16.9%라는 성적은 ‘없음/모름/무응답 46.6%’에 크게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 접해온 민주당 지지율과도 큰 괴리가 있다. 과거 민주당 지도자들보다 그리 나은 성적도 아니다. 제20대 총선 직후 시점인 2016년 5월의 한국갤럽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는 15%를 기록했었다. 그때는 범야권에 안철수, 박원순 등의 경쟁자도 있었다. 지금 이 대표는 야권에서 독보적인 1위인데도 ‘7년 전 문재인’보다 앞서나가지 못한다.
이번 조사는 한국 정치에서 팬덤이 명백한 소수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재명의 16.9%나 윤석열–한동훈–김기현–원희룡의12.9%는 그리 높은 수치도 아니지만, 그조차도 팬덤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팬덤정치의 한 축인 이준석 전 대표는 1.2%를 받는 데 그쳐 그 팬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과잉대표되었음을 증명했다.
팬덤과 유튜브로 장악할 수 있는 거대양당의 허약함
노무현과 이회창 띄웠던 전통 지지층, 다시 작심할 수 있을까
소수 팬덤이 한국 거대정당과 정치판을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팬덤정치로 10% 지지율을 확보하면 당장에 거대정당 내 유력 세력이 될 수 있다. 거대정당 내부는 구조가 불안정하면서 경쟁이 활발하지 않다. 똘똘 뭉친 팬덤은 리더십 공백 상태나 당 지도자의 퇴임기를 노려 당을 접수했다. 그렇게 해서 당권도 쥐고 대선 후보도 되어 거대양당체제의 정점에선 인사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50% 가까이 치솟는다. 10%에서 50% 사이 구간에 허들이 적고 낮다는 것, 이것이 바로 팬덤정치의 호조건이다.
게다가 팬덤은 유권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대선에서 1백만표를 얻는 후보는 군소후보일 뿐이지만, 1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은 거대정당 중 한쪽의 판도를 움직일 수 있다. 오랜 역사의 거대정당도, 무당층이 꽤 늘어난 여론 지형도, 이 팬덤정치에게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유권자의 의사가 두루 대변되는 ‘대의’ 정치를 팬덤의 ‘직접’ 정치가 훼손했다.
이 현실을 타개할 주체로 무당층부터 지목할 수는 없다. 무당파에도 여러 부류가 있고, 거대양당을 경멸하는 유권자조차 대부분은 선거 때 한쪽을 애써 고르거나 아예 투표에서 빠진다. 각당 소극적 지지층의 처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관건은 전통 지지층의 향배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 노무현과 이회창은 1996년경만 해도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거대양당 전통 지지층이 이들을 대선 후보로 올렸다.
전통 지지층에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이들도 있지만, 유연하고 개방적인 이들도 많다. 지지 정당을 옮길 가능성은 작지만, 특정 인물 및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호남과 영남의 서민들은 ‘수도권 중상층’ 중심의 정치에 충격을 줄수도 있다(독재 정권기 ‘여당 아님’ 수준이었던 민주당을 혁신적으로 바꾼 주역이 호남 주민들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2010년대 초반 한나라당의 무상보육과 재벌 규제 논의가 경북 지역에서 시작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대안적인 정치인과 세력을, 전통 지지층이 찾고 추켜올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