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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시점에서 돌아보는 사드 반대투쟁과 영상기록
2016년 7월, 몇 년 간을 끌어오던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 관련 당시 박근혜 정부는 경북 성주군에 관련 레이더 기지 설치 부지를 마련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당시 성주군민 중 4할이 집권여당 당원으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보수정당 강세인 지역이었지만 군 차원에서 격렬한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다. 속내는 어찌되었건 군수부터 지역사회 전체가 나서서 레이더 기지 설치반대를 표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주민들은 거듭된 반대집회와 인간 띠 잇기 등으로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반대했다. 예상보다 격렬한 반대여론에 정부는 당혹해한다. 당시 성주군 전역에서 벌어진 반대투쟁 중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여성들의 활약상은 현장에 달려간 박문칠 감독에 의해 뉴스릴 속보 형태로 급행을 타 완성된다. 그 결과물인 장편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에 오롯이 담긴 초반 성주의 투쟁기록은 고스란히 압축되어 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후 극장개봉에 이른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정부는 결국 고전적인 차선책을 택하기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더 소수이자 사회적 약자들이 거주하기에 반대 목소리도 적을 게 뻔한 외곽지역을 물색한다. 3개월 만에 성주군 중심지역이 최적이기에 주민들의 결단과 이해를 주문하던 정부의 입장이 바뀐다. 성주군과 김천시 경계지역에 가까운 롯데그룹 소유의 골프장 부지가 새로운 기지 설치 지역으로 낙점된 것이다. 골프장이 소재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는 성주군의 특산품인 참외농사도 별로 짓지 않고 고령의 노인들을 중심으로 자급자족에 가까운 소규모 농사를 위주로 하는 한적한 동네였다. 그래서 이곳을 골랐다는 건 (정부가 내세우던 안보 목적과 별개로) 너무나 빤한 정치적 우회로였다. 롯데그룹은 성주 골프장을 헌납하는 대신 대체 부지를 제공받았다. 이제 주민들만 달래서 포기하게 만들면 끝날 일처럼 보였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고령자들만 사는 곳이니 성주군 전체의 반대 움직임을 분리할 수 있고, 적당한 보상책으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정부에겐 있었을 테다.
일차적으로 정부의 기지 부지 변경으로 성주군 전체의 통일된 반대투쟁은 분열로 치닫는다. 소성리는 오히려 김천에 가까운 지형적 특성을 지녔다. 그래서 역으로 김천시민들의 반대투쟁은 더 거세졌지만 정부 입장에선 급한 불부터 꺼야만 했다. 성주군의 반대투쟁이 전국적인 상징이 된 상황에서 이를 해체시키려는 정부의 노림수는 제법 먹혀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비록 투쟁대오는 축소되었으되 소성리 주민들의 분노와 끈기는 역시나 정부의 예상규격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흔히 ‘외부세력’이라 불리는 시민사회단체 연대가 가세하고, 원불교의 성지가 인접하는 바람에 교단 차원에선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반대투쟁은 이제 2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등 대도시 등 인구밀집지역 대신 희생을 강요당하게 된 시골 변경에서 가장 굳건히 맞서는 이들은 중·노년 여성들이었다. 소성리에서도 구부러진 허리에 뒷짐을 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투쟁현장을 지키는 ‘할매’들의 모습은 일상이 되고야 말았다. 비록 줄어든 대오와 기세에도 불구하고 소성리는 한반도 격동의 정세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이후 현재까지 거듭되는 소성리 주민들의 반대투쟁은 밀양 송전탑 투쟁을 기록했던 부산 지역 영상공동체 오지필름 소속 박배일 감독에 의해 또 다른 장편 다큐멘터리 <소성리>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본 작품 역시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극장 개봉에 이른다. 그렇게 성주군과 소성리의 ‘사드’ 반대투쟁은 21세기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역사에 남을 두 편의 굵직한 현장 다큐멘터리로 각인되기에 이른다.
◆ 새로운 기록자, 소성리에 내려앉다
하지만 <소성리>가 극장에서 개봉한지도 어느새 5년이 넘게 흘렀다. 여전히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데 현장상황에 대해 꾸준히 참여하는 이들 외에는 이미 끝난 투쟁으로 치부하거나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 되고야 만 상황이다. 본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물론 지금도 소성리에선 주민들과 연대단위가 함께 지루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거의 매일 레이더 기지로의 물자반입과 추가 장비 설치를 둘러싼 대치와 진압이 잇따른다. 하지만 언론도 이제 큰 충돌이 일어나는 정도가 아니면 그리 기사 소재로도 간주하지 않게 된지 오래다. 그렇게 소외되고 묻힌 소성리 마을의 현재는 어떤 풍경일까? 김상패 감독의 <양지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드 반대투쟁을 기록하는 각각의 분기점의 기록으로 각인된 앞선 2편에 이어 <양지뜸>은 세 번째 장편영화로 위상을 점유하고자 하는 의도와 운명을 지닌 채 등장한 셈이다.
늦깎이로 다큐멘터리 제작수업을 들어가며 현장 다큐멘터리 기록자의 길에 들어선 김상패 감독은 2016-2017년 촛불 시위에 영상기록으로 결합한 일군의 다큐멘터리 기록 팀원들에 속해 있었다. 당시 촬영한 영상 아카이브는 방대한 분량이었고, 공동 촬영과 실용적 활용에 이어 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각자의 관심사와 초점에 맞춘 개별 작업으로 전환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광장>에서 김상패 감독은 1987년 6월 항쟁과 30년의 시차를 둔 현재의 촛불 시위를 대비하는 통찰을 담은 한 에피소드를 맡았다. 감독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도 그때였다.
그러던 감독은 어느새 소성리에 들어와 현장기록 작업을 하며 3년간 머물렀다. <파란나비효과>와 <소성리>의 뒤를 이어 영상작업으로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포부와 고민을 당시에 종종 주고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감독은 꾸준히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투쟁과 그곳의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성리 싸움을 기록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일군의 지역 문화예술 창작자들과 협업하며 전시 및 단편 작업을 진행했다. 그 당시 완성한 2편의 단편 다큐멘터리, <봉정할배 전상서>와 <길남과 방문자들>은 지역 내 소규모 상영회나 방송국 시청자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지만 크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기록 작업은 이어졌다.
◆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양지뜸>의 전모
감독은 2017-2019년까지 3년을 소성리에서 집을 빌려 거주하며 작업과 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면서 연대투쟁에 참여한 구미지역 장기투쟁사업장 아사히글라스 노동조합의 투쟁 영상기록에도 참여했다. 그러던 감독이 2020년에 강릉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어쩌면 소성리 프로젝트가 결실을 못 맺는 것 아닌가 염려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감독은 소성리를 종종 방문하곤 했다. 그렇게 축적한 기록을 바탕으로 뉴스타파 제작지원으로 본 작품의 기원이 되는 방송용 중편 다큐멘터리 <민들레 청춘>을 2022년에 선보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장편으로 확장된 버전인 <양지뜸>을 2023년 가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현재 온라인에 공개된 <민들레 청춘>과 극장용 장편 <양지뜸>은 상당부분 내용을 공유하지만, 작품의 구성이나 전개는 제법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편이다.
영화에는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를 주의 깊게 봤거나 실제로 소성리에 연대했던 이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들이 대거 출연한다. 앞서 언급한 체험담을 공유하는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내적 친밀감’이 생길 정도인 캐릭터들, ‘금연할매’나 ‘봉정할배’, 임순분 부녀회장 등이 반갑게 재등장한다. 감독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고르고 골라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여전히 투쟁현장에 개근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결합하는지라 자연스럽게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친숙한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감독 본인이 교류하는 광경이 <양지뜸>을 가득 채운다.
작품의 제목인 ‘양지뜸’은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명칭은 아니다. 어느 시골마을이나 흔히 갖고 있을, 볕 잘 들어오는 명당자리를 이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하필 공교롭게도 소성리 마을 내에서 ‘양지뜸’이라 할 구역은 마을회관이 자리한 길목 도로변이다. 그곳은 골프장 자리였던 레이더 기지로 가는 고갯길을 거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구간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이 평범하던 ‘양지뜸’은 어느새 세상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여전히 주민들은 일상의 투쟁을 치르는 격전장이 되어버렸다. 마을의 연로한 주민들이 햇볕을 흠뻑 쬘 수 있던 목 좋은 시공간은 바로 그들이 공권력과 대치하며 길목을 막고 주저앉아 있는 투쟁의 순간에만 열려버리는 것이다. 이 기이한 아이러니를 암시하는 영화의 제목은 꽤 공들여 지었을 게 역력하다.
◆ 황혼의 평화를 가로막는 그들만의 대의명분
하지만 영화의 초반에는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와 흡사하게) 치열한 싸움 대신 감독과 주민들과의 유대관계나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줄줄이 소개될 따름이다. 촬영만 하지 말고 밥이나 한술 뜨라는 친숙한 노인들의 권유에 감독은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거나 입에 넣어주는 먹을거리를 삼킨다. 마을 주민들과 벽을 없앨 심산인지 감독은 그저 동네에 머무는 것을 넘어 가가호호 방문해 이야기 상대가 되거나 자급자족까진 아니더라도 텃밭 농사를 짓기도 한다. (하지만 수확의 성과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렇게 목가적인 한가한 마을에서의 삶이 영화의 1/3 가까운 분량을 점유한다.
그러고 난 뒤에야 서서히 마을 곳곳에 간직된 일상화된 투쟁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그저 평범한 담벼락처럼 스쳐 지나가던 게 중반이 되면 벽에 새겨진 투쟁구호나 걸쳐진 현수막 같은 게 점점 선명해진다. 그렇게 ‘다르게 보기’를 점진적으로 구현하면서 단계를 밟아나가는 점층법을 취한다. 그리고 마냥 목가적인 전원생활로만 보이던 소성리 일대의 정경은 결국 거의 영구화된 것처럼 진행되는 투쟁의 장소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선 투쟁에 대한 주민 각자의 생각이나 소회, 그리고 전망에 대한 고민이 쑥쑥 뽑아져 나온다. 물론 그래봐야 예전 전 세계적 이목을 끌던 시절의 스펙터클한 투쟁 풍경까진 아니다.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할 과잉된 폭력 전시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 현재를 담아낼 따름이다.
장기전으로 접어든 투쟁은 일종의 패턴에 따라 영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멈출 수는 없다. 공권력과 주민들, 둘 중 누군가가 입장을 철회하거나 태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통 끝날 가능성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명도 이해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 고령의 주민들이 지난한 한국현대사를 거쳐 생존해가며 말년에 겨우 찾았던 고즈넉한 노후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도움 하나 준 적 없으면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권력에 대한 풀 길 없는 울분이 화면 곳곳에 아로새겨진다. 어쩔 수 없이 슬픔과 애잔함이 가득해지는 전개다.
◆ 소성리의 현재를 갈무리한 타임캡슐 같은 영화의 등장
그런 와중에도 마치 공권력이 애초에 소성리로 기지 위치를 이전할 때 꾀했던 노림수처럼 봉정할배를 비롯한 노인들은 계속 세상을 떠나는 중이다. 그런 분위기를 누구보다 더 잘 피부로 체감할 소성리 투쟁의 주역들은 왜 자신들이 ‘가성비’ 고려 않고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는지에 대해 현란한 수식 대신 가슴 속에 품은 진심을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끄집어낸다. 우리 손자와 손녀, 후손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기에 살날 얼마 안 남은 자신들이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 싸운다는 것이다. 우리네 평범한 (조)부모의 심정과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이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감내해야 할 몫은 너무나 크고 부당해 보인다.
그리고 주민들은 아마 자신들 살아생전에 ‘사드’ 뽑는 걸 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꿰뚫어보는 중이다. 그래서 이들과의 인터뷰 장면은 더 가슴 한 구석을 아려오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단정적으로 이제 이 투쟁은 되돌릴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혹은 더 중요한 싸움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전술적’ 판단에 매몰되곤 하는 면모를 부끄럽게 하는 장면들이다. 물론 이는 주민들이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유식한 이들의 현란하지만 공허한 주의주장과는 궤를 달리 하는 노인의 지혜다. 우직한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고사처럼 이들은 복잡한 한반도 정세나 안보접근법 따위 필요 없이 본질을 누구보다 더 잘 간파하고 있다.
그렇게 주민들이 소수의 남아 있는 연대단위와 함께 풀어가는 일상의 생활과 투쟁 공동체의 삶이 그저 물 흐르듯 <양지뜸>을 채운다. 주민들은 한바탕 걸쭉하게 육담을 공권력을 상대로 내뱉다가도 어느새 함께 공동작업으로 장아찌를 담그고 묵을 만든다. 그들에겐 삶과 투쟁이 동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이를 꿰뚫어보는 공권력의 일방주의는 한층 더 심해지지만 주민들은 저물어가는 석양일지언정 자신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고고하고 순전한 결의를 닮아서인지 유독 영화 속 소성리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마을 곳곳의 풍경은 특별할 게 없지만 어수선해 보이는 속에도 운치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평화롭게 해가 높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며 밤하늘 별들은 청량한 배경이 눈에 들어올수록 왜 이곳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나 순수한 의분이 일어나곤 한다.
냉철하고 허를 찌르는 총체적 분석이나 투쟁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기대한다면 그저 풍경처럼 흘러가는 영화의 방향에 아쉬움이 생길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소성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나 영화 속 후일담이 궁금했을법한 이들에게는 그곳과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영상편지처럼 기능할 테다. 마을회관 앞 가게의 터줏대감 ‘아롱이’의 안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롱이는 개 껌을 참 좋아했었다) 소성리의 하늘을 오랜만에 직접 바라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작품정보>
양지뜸 Our Sunny Paradise
2023|한국|다큐멘터리|85분|12세 관람가
연출/기획 김상패
조연출 나단아
출연 봉정댁(도금연), 대구댁(임순분), 진기댁(여상돌), 수천댁(도경임), 성주댁(임길남),
봉정양반(故 이채구)
촬영/편집 김상패, 나단아
제작 스물둘
2023 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신인감독상(후원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