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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 반상회가 열렸다. 대구 동구 방촌동과 수성구 고모동 사이에 있는 팔현습지에는 왜가리, 수리부엉이, 수달, 얼룩새코미꾸리, 담비, 왕버들군락 등 식구들이 산다. ‘왜가리’를 맡은 서민기 씨가 “팔현 식구들 다 모였나요”라고 운을 뗐다. 서 씨는 생명평화아시아와 예술인 5인 ‘금호강 디디자’ 사업에서 음악 분야를 맡은 예술인이다. 서 씨가 쓴 꼬깔모자 끝에는 자신이 맡은 왜가리 모형이 주먹만한 크기로 달렸다.
16일 오후 5시 청소년 예술행동 ‘금호강 디디자’의 마지막 활동인 ‘팔현반상회’ 낭독회가 열렸다. 하루종일 비가 내려 낭독회는 당초 예정했던 팔현습지 현장 대신 팔현쉼터로 자리를 옮겨 진행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청소년 10명이 지난 4주 간 금호강 일대(아양교 부근, 안심습지, 달성습지, 팔현습지)에서 서 씨를 비롯한 감정원(영화), 민주(미술), 안지경(디자인), 이지수(연극) 등 예술인 5명과 함께 동요 작사, 단편 영화 촬영을 진행했다.
‘팔현반상회’에 참가하는 20여 종의 팔현습지 ‘식구들’은 참여 청소년을 비롯해 그 가족, 예술가, 활동가들이 나눠 맡았다. 이들은 수달이나 고라니, 얼룩새코미꾸리, 수리부엉이 등 역할에 맞는 소품도 직접 만들었다. 팔현반상회는 금호강 식생과 생물이 의인화되어 등장하는 극이다. 팔현반상회는 팔현의 생태계 모습을 전달하고, 이들이 직면한 문제를 다뤘다.
‘하식애(하천절벽) 할아버지’는 금호강이 깨끗해져 30년 만에 돌아온 ‘얼룩새코미꾸리’를 반기고, ‘수리부엉이 부부’는 어린 수리부엉이와 가족을 이뤄 이곳에서 산다. 또 달성습지에서 집을 보러 온 ‘수달’ 가족도 있다. 소식을 전하러 온 ‘바람’은 달성습지 ‘맹꽁이’의 결혼 소식도 알린다. 특히 팔현반상회 식구들의 가장 큰 걱정은 팔현습지에 자전거도로 등을 낸다는 소식이다. (관련기사= 삵, 수달, 담비 공존하는 대구 유일 수변···금호강 팔현습지 보도교 반발 이어져(‘23.08.21))
우왕좌왕 혼란스러워 하는 팔현식구들은 이사갈 곳을 찾거나(담비), 로드킬을 걱정하고(아기 고라니), 화도 낸다(왕버들군락). 자신들의 ‘집’를 잃을 것을 걱정하는 이들은 금호강을 지킬 방법들을 하나 둘씩 내놓기도 한다.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 부르기(꾀꼬리),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수달), 멋진 날개짓을 보여주기(나비) 등을 고민하다가 힘을 모아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외치기로 한다.
“우리 집과 우리를 사랑해주세요.”
‘박수 치며 웃는다, 눈물을 글썽이는 가족들도 보인다’는 ‘팔현반상회’ 극의 마지막 부분 지문처럼 ‘금호강 디디자’ 활동도 끝났다.
반상회장인 ‘왜가리’ 역할을 맡은 서민기 씨는 “저희 직접 (금호)강에 왔다 갔다 하면서 봤던 동식물들이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며 “제가 맡은 역할은 반상회장이라 모두가 잘 보고, 듣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이었는데 그렇게 몰입해서 읽은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팔현습지의 시급한 안건인 자전거도로 공사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나비’를 맡은 배주연(43) 씨는 “다양한 생물이 팔현습지에 사는 지 몰랐다. 저희 아들이 ‘민물가마우지’ 역을 맡았는데, 저는 이름만 듣고 물고기인줄 알았다”며 “이런 자리 덕분에 저도 팔현습지에 대해 더 알게됐고, 많은 생물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민물가마우지’를 맡은 배 씨의 아들, ‘매실'(활동명) 김영훈(13) 씨도 이번 ‘금호강 디디자’ 활동을 통해 환경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했다. 김 씨는 “활동을 하기 전에는 팔현습지도 잘 몰랐었다. 특히 활동들이 재미었다”며 “오늘 팔현반상회 대본을 읽으면서 여러 생물들이 사는 팔현습지에 산책로 같은 걸 만드는 건 인간의 이기심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극본을 직접 쓴 이지수 씨는 이날 ‘좀목형 군락’ 역할을 맡았다. 이 씨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져서 더 감동스러웠다.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사랑해주세요’라고, 실제 팔현습지에 사는 생명들이 외치는 것 같았다. 팔현습지 개발을 막기 위한 서명에도 많이 참여해주시고, 이 사업이 재검토 될 수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두 손을 모았다.
한편, ‘금호강 디디자’ 사업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이뤄진 프로젝트로, 생명평화아시아가 주최했다.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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