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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약전골목 한가운데 인근 건물보다 한 층 정도 높이 올라선 건물이 하나 있다. 중구청이 2014년 한방 체험을 위해 만든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다. 모호한 정체성, 설립 목적과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저조 등의 이유로 지난해 문을 닫았다. 중구청은 기왕 지어놓은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까 논의하다 화가 이인성을 기리고 그의 작품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인성 유족회가 그의 작품과 유품을 중구청에 기증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구의회와 문화예술계에선 이인성만이 아닌, 근대 미술가를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중구청은 이미 의회에서 통과한 예산이며 유족의 기증에서 시작된 계획인 만큼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인성의 친일 행적 논란과 실감미디어아트 같은 구성이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도 밀어붙이고 있다.
10일 오후, 약전골목을 찾았다. 줄지은 한약방 사이에 위치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앞엔 ‘운영 종료’를 알리는 배너가 세워져 있다. 근처 현대백화점을 찾았다 밥을 먹으러 거리에 나온 20대부터 예배를 마치고 산책 중인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을 만났다. 여유 있게 골목을 둘러보며 만난 12명의 시민 중 ‘이인성을 알고 있다’고 답한 이는 2명뿐이다.
남편과 카페를 찾던 50대 이영진 씨는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아니냐”며 “화려한 전시도 좋지만 시민들이 편하게 찾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이민혜 씨는 “이인성은 잘 모르지만 근대골목투어는 계절마다 걷는다. 일상에서 다니는 길에 조성되어서 좋아하는 산책로”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은 빨리 재개관해 골목 활성화를 견인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공통으로 냈다. 인근에서 60년째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점식 씨는 체험관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꿰고 있었다. 이 씨는 “반대하는 의견도 듣고, 이인성 유족 의견도 들어서 (동시대 화백을) 두루 다루면 얼마나 좋아. 이인성이 유명하다고 그것만 다루겠다 고집할 필요가 있나. 우리가 잘 모르는 화가도 찾아서 보여주면 (근대골목) 취지에도 맞지. 중요한 건 시민들이 많이 찾아와 골목이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디스플레이만큼 중요한 건 공간과 골목이 갖는 공공성, 역사성에 대한 논의다. 류규하 중구청장 체제에서 근대골목은 ‘경제 활성화’, ‘관광특구’ 같은 개념으로 귀결된다. 반면 초창기 근대골목투어를 기획한 시민문화운동은 ‘이야기’, ‘역사의 발굴‧보존’을 중시했다.
박충환의 논문 ‘대구근대골목투어-지붕 없는 박물관과 스토리텔링의 정치적 지형’(지방사와 지방문화, 2016)은 이렇게 말했다. “대구근대골목투어는 유·무형의 역사문화콘텐츠를 문화상품의 형태로 생산‧소비하는 문화유산관광의 한 장르로서, 관광산업 일반에서 관찰되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의미심장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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