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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을 사흘 앞두고 인터넷매체 <뉴스타파>에 공개되었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조작 의혹’이 최근 뉴스를 뒤흔들고 있다. 언론인 신학림 씨가 지인인 김만배 씨를 2021년 9월에 만나 이뤄진 이 인터뷰는 대장동 개발의 ‘프리퀄’ 격이었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 김만배 씨가 펼치는 구체적인 주장을 담고 있었다.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 브로커 조우형 씨에게 “네가 조우형이야?”라고 물었다거나, “모 검사가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주더니 보내주었다. 사건이 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근래 이 인터뷰에 대해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우형 씨로부터 “김만배 씨가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겠다’고 예고하며 양해를 구해왔다”는 진술이 나왔다. 여기에 김만배 씨가 신학림 씨의 책 3권을 1억 6500만원에 팔았다는 사실이 인터뷰의 대가가 아니었냐는 정당한 의심을 받고 있고, 대장동사업의 한 민간업자가 “김만배가 100억 원을 출연해 재단을 세우고 신학림을 이사장으로 앉히려 했다”고 증언한 것까지 포개지며 인터뷰의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1)김만배 주장이 사실이라도 대가 오고갔다면 김만배와 신학림은 지탄 또는 처벌의 대상
2)김만배 주장이 어디까지 허위인지 아직은 불분명
3)김만배 주장이 허위라도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덮을 수 없어
우선 세 가지 이치를 분명히 해둔다. 첫째, 김 씨가 인터뷰에서 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부정한 대가가 오고갔다면 윤리적 지탄의 대상이자 수사 내지 처벌의 대상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에서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둘째, 부정한 대가가 오고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김 씨의 인터뷰 내용이 거짓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 김 씨의 진술중 어디까지가 허위인지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는다. 조우형 씨에게 양해를 구했다는 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거짓말을 할 테니 양해해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말하기 부담스러운 사실이지만 그래도 밝혀야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김 씨가 말했다는 ‘엉뚱한 방향’도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 김 씨의 의도가 부산저축은행 수사 문제를 근거로 ‘대장동 개발 본판 의혹’에서 이재명 대표 등의 문제를 덮는 것이라면, 이것은 ‘엉뚱한 방향’이고 나아가 그릇된 일이지만, 이것이 곧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뜻은 아니다.
셋째, 김 씨가 신 씨와의 인터뷰에서 허위를 말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반박하지 못한다. 여러 언론이 ‘인터뷰 대가 의혹’을 ‘김만배 허위 주장’으로, 나아가 ‘부산저축은행 문제 허위 조작’으로까지 연결 짓고 있거나(가장 열심인 언론은 <조선일보>다), 그런 연결짓기를 바로잡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 조우형 씨에게 “네가 조우형이야?” 물었다거나 검사가 그에게 커피를 타줬다거나 하는 것이 모조리 허위라고 해도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은 엎어지지 않는다.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이 문제가 된 것은 ‘대장동 일당은 어떻게 부당이익을 챙겼는가?’에 이어 ‘대장동 일당은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가?’가 제기되면서부터였다. 지금까지 사실로 확인된 것만 살펴보자.
대장동 개발 시행사 ‘씨세븐’은 대장동 부지내의 토지와 빌라 등을 매입하는 지주 작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부산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끌어왔다. 부산저축은행 대출만 치면 1155억 원이었고, 부산저축은행이 주도하는 11개 저축은행 대주단에게끌어온 대출을 합치면 1805억 원이다.
대검 중수부 수사 빠져나간 조우형 나중에 경찰에 덜미 잡혀
윤 대통령, ‘수사대상이 아니었다’고 반박했지만
참고인 조사, 계좌압수수색까지 이뤄졌는데 어떻게 빠져나갔나
당시 씨세븐 대표 이강길 씨에게 부산저축은행 대출을 알선한 이가 바로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의 인척인 조우형 씨다. 조 씨를 이 씨에게 소개한 사람은 ‘정영학 파일’로 알려진 정영학 회계사다. 대장동 사업에 필요한 PF대출을 알선하는 조건으로 조 씨는 이 씨에게 10억 3천만원을 받았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 대검 중앙수사부는 133명의 인력을 동원해 수사에 착수했는데, 수사 결과 씨세븐과 조 씨의 혐의는 빠져 있었다. 이 자체로 납득이 가지 않기에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공교롭게 조 씨는 당시 변호인으로 특수검사 출신인 박영수 씨(전 박근혜 국정농단 특별검사)를 선임한 바 있다. 당시 주임검사였던 윤석열 과장이 어떤 조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직특수검사들이 ‘전관’을 예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김홍일 현 국민권익위원장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장동 불법 대출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단서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특수목적법인(SPC)이 수사대상이었지만 대장동 일당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다는 점, 일반PF대출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이는 되레 의혹을 더 증폭시켰다.
첫째, 조우형 씨는 결국 나중인 2014년 같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알선수재 혐의 유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것 하나만으로 ‘2011년 대검 수사에서 빠져나가서는 안 될 자가 빠져나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수사 무마’는 ’의혹‘ 수준이더라도 ‘부실 수사’는 확실히 일어난 일이라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둘째, 대장동 일당은 애초부터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수사를 받다가 중간에 빠졌다. 주지하다시피 조 씨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까지 진행되었다. 여기에 조 씨가 후일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 씨세븐 이강길 대표가 언론에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대검 중수부는 씨세븐이 조 씨에게 알선료로 10억 3천만원을 건넨 사실 등 불법대출 알선 혐의 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혐의점이 애초보다 더 짙어졌을 시점에 왜 수사가 중단되었는지 당시 수사 책임자들이 설명해야 한다.
특수목적법인 활용, 법인 쪼개기, 금융자문수수료… 눈에 띄는 씨세븐
조우형 인척 박연호 회장과 알선수재로 1억 원 챙긴 브로커도 기소
빠져나간 씨세븐과 조우형은 불법대출 1155억, 알선수재료 10억 3천
셋째, 조 씨가 씨세븐에게 알선 대가를 받을 때 썼던 수법이 부산저축은행 임원이 차명으로 만든 특수목적법인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특수목적법인만 수사 대상이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이 맞다면 더더욱 조 씨가 빠져나간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넷째, 대장동 대출은 법인 쪼개기가 동원된 편법 대출인 데다가 5개 법인 명의로 부산저축은행그룹 5개 계열 은행에게 1155억 원을 대출받았다. 1개 법인이 100억 원 한도내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 위반이다.
다섯째,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단초가 된 것은 ‘금융자문 수수료’였다. 윤 대통령 본인이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씨세븐은 부산저축은행에 금융자문 수수료 명목으로 1백억 원을 지급했다. 조 씨가 대출을 알선한 또다른 업체도 부산저축은행에게 같은 명목으로 2백억 원을 지급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조 씨와 씨세븐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수사는 유야무야되었다.
여섯째, 씨세븐은 2009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솔로몬저축은행에 자금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솔로몬저축은행은끝내 부실 경영으로 퇴출되었는데, 이런 기관도 하지 않은 대출을 부산저축은행은 해준 것이다.
일곱째, 씨세븐과 수사받은 다른 업체를 견줘보면 씨세븐이 빠져나올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가령 대검중수부 수사 대상에는 2007년 770억 원이 대출된 용인 수지 상현동 아파트시행 SPC, 2006~2008년 447억 원이 대출된순천 왕자동 아파트시행 SPC 등이 포함돼 있고 시행사 대표나 브로커 등이 사법처리되었다. 게다가 조 씨의 인척으로 알선의 다리가 된 박연호 회장도 1280억 원 부당 대출 혐의로 기소되었다.
씨세븐의 불법 대출 규모는 1155억 원이고 회수되지 못한 원금만 400억 원 가량이었다. 한 건축사사무소 임원의 경우는 알선수재를 하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반면, 조 씨는 10억 3천만원을 받고도 대검 중수부에게 알선수재 혐의를 받지 않았다.
위의 사항들은 김만배 주장의 진위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들이다. 모 검사가 조 씨에게 커피를 타주고 안 타주고는 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 더구나 윤 대통령 등은 대장동 일당이 수사에서 빠져나간 것을 두고 “모른다”, “착오나 분망(매우 바쁜 상태)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사 대상 제외의 이유를 댔고, 그 내용은 사리에 맞지 않았다. ‘놓친 게 아니라 놔준 것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부산저축은행과 대장동 개발, 한쪽이 다른 한쪽 덮을 수 없어
사법적 유죄 입증 안 돼도 각각 부실수사와 부당이익 방조에 대한 책임
끝으로 두 가지를 더 지적한다. 첫째, 부산저축은행 사건에서 부실수사나 수사 무마가 일어나 대장동 일당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근거는 조금도 될 수 없다. 두 의혹을 두고 ‘윤석열과 이재명 중 한쪽이 맞으니(틀렸으니) 다른 한쪽이 틀렸다(맞았다)’고 단언하는 모든 주장은 오류이고 거짓이다.
대장동 일당이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덜미를 잡혔더라도 대장동 개발 설계가 잘못된 이상은 다른 누군가가 부당한 천문학적 이익을 취했을 것이다. 거꾸로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대장동 일당을 놓쳤다 해도 대장동 개발 설계가 온당하게 이뤄졌다면 대장동 일당은 천문학적 이익을 챙길 수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측은 부산저축은행 수사 문제를 두고 윤 대통령측을 “대장동의 씨앗“이라고 불렀다. 윤석열 당시 주임검사 등이 씨앗이라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등은 ‘농부’가 된다.
둘째,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와 대장동 개발에 관해 윤 대통령이나 이 대표의 사법적 유죄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안에서 그들이 범한 잘못과 책임이 모두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의 경우 특검을 실시하더라도 12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판단이 나오거나, 혹은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을 면밀히 입증하는 증거를 찾지 못할 수 있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 경우, 사업구조상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수익 배분방식을 정하기 때문에 이재명 성남시정이 성남도개공을 상대로 지시나 회유, 압박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 대표는 배임 혐의에서 무죄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빠져나가서는 안 될 대장동 일당이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빠져나갔다는 점, 이재명 성남시정이 사기업체의 천문학적 부당이익을 방조했다는 점까지 덮을 수는 없다. 2011년 대검 중수부는 대장동 일당을 수사선상에 올렸으면서도 계속 수사하지 않았고, 이재명 성남시정은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넣을 수 있는데도 넣지 않았다.
한국 정치는 법적 문제의 소지가 보여도 자기 진영의 문제라면 수사 필요성부터 부정하는 ‘사법의 정치화’, 그리고 여러 문제가 있어도 사법적 유죄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치부하는 ‘정치의 사법화’에 시달리고 있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