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N맥페스티벌’, 치맥페스티벌에 오르는 닭을 보는 ‘진실의 큐브’

대구 중구 북성로 '대화의장'에서 전시, 강연, 공연 등
동성로에서 피켓팅도 진행···"아무도 죽지않는 축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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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진실의 큐브’예요. 우리사회에선 많은 것들을 ‘외주화’하는데요. 공장식 축산의 진실 또한 외주화를 통해서 우리가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다 보니 잘 모르고 있어요. 고기를 당장 끊지는 못하더라도, 고기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대구동물권행동 ‘비긴’에서 ‘제니’로 활동하는 오정영(24) 씨의 설명이다. 오 씨의 안내에 따라 ‘제2회 N맥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구 북성로 ‘대화의장’ 곳곳을 찬찬히 둘러봤다. ‘진실의 큐브’에선 작은 방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닭이 달걀에서 부터 병아리의 모습, 밀집 사육되고 기계 속에서 도살되는 장면까지 가감 없이 상영된다.

▲ 26~27일 대구 중구 북성로 ‘대화의장’에서 열린 ‘제2회 N맥페스티벌’에서 꾸민 ‘진실의 큐브’. 닭의 공장식 축산과 도살 등에 관한 내용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해 열린 ‘제1회 N맥 페스티벌’은 치맥페스티벌이 당일 두류공원 일대에서 함께 진행된 것에 반해 올해는 본행사가 26~27일 양 일간 이곳에서 전시와 공연, 강연, 시식 등 문화행사로 열렸다. 물론, 올해도 치맥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인 내달 2일 ’치맥을 멈춰라 집중행동’(오후 6시, 두류공원 현장 피켓팅)과 1일 ’기후위기와 탈육식’ 오픈마이크(오후 7시, 대구 중구 2·28 공원) 등을 진행한다. 행사는 ‘비긴’과 책빵고스란히를 중심으로 30여 개의 단체 및 개인 등이 주최했다.

오 씨는 “지난해는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야외에서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왔고, 축제를 즐기겠다고 마음먹고 온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가 잘못 전달될 수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 씨는 “동물권과 환경까지 폭넓게 더 의제를 확장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문제의식을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이번 N맥 행사의 의미를 전했다.

행사장 곳곳에는 ‘동물권’과 관련된 여러 전시물이 눈에 띄었다. ‘n개의 삶’이라는 전시는 주최 측을 비롯해 대구환경운동연합, 채식평화연대, 도시공원기록활동 등이 공장식 축산 속 농장 동물, 동물원 동물, 기후위기 속 야생동물 등 다양한 동물의 삶을 사진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최근 경북 고령군에서 사살된 사자 ‘사순이’에서부터 야생닭의 수명이 15~30년까지 사는 데에 반해 식용 판매 닭은 33일이라는 것, 전국의 동물 착취 축제 목록,  메뚜기, 고래, 독수리, 쥐 등 인간에게 ‘이용’되는 애달픈 삶이 전시를 통해 그려졌다.

또 주최 측은 ‘고기없는 월요일’ 대표인 이현주 한약학 박사가 비건과 건강에 대해, 비건 인플루언서인 ‘초식마녀’의 ‘논비건과 연애하기’, 하루 작가의 ‘사회적응 거부선언’ 북토크 등 비건 실천에 대한 고민과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아나바다 장터’, 비건 디저트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바리바리 마켓’과 비건 허브토스트와 허브 코디얼 음료 만들기 워크숍, 음악 공연(이내, 나까, 미루, 유진솔) 등 꼭 비건이 아니더라도, 생각해 보고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다양하게 준비됐다.

바로 옆 비건 메뉴와 옵션이 있는 ‘대화의장’에서 비건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도 있고, 비건 음식 시식회도 진행됐다. 국내산 새송이 버섯으로 만들었다는 비건 치킨(위미트), 식물성 크리스피 핫도그와 주먹밥(알티스티), 맥주 안주로 추천하는 버섯칩(마주) 등이 소개됐다. 또 주최 측은 행사 참여자들이 다회용기에 담긴 음식을 먹고, 직접 ‘설거지바(고체용 비누 모양의 주방용 세제)’와 천연수세미를 이용해 설거지존에서 세척하도록 했다.

▲바로 옆 비건 메뉴와 옵션이 있는 ‘대화의장’에서 비건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도 있고, 비건 음식 시식회도 있었다. 국내산 새송이 버섯으로 만들었다는 비건 치킨(위미트), 식물성 크리스피 핫도그와 주먹밥(알티스티), 맥주 안주로 추천하는 버섯칩(마주) 등을 맛볼 수 있었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N맥 페스티벌을 찾은 박소현(수성구, 25) 씨는 버섯칩을 먹으면서, “최근에 몸이 좀 아파서 고기를 자제하려고 주기적으로 비건식을 챙겨 먹는다.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 좋다”며 “평소에도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사소한 실천이라도 하려고 하는 중인데, 실천의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행사 같다. 이런 행사들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성로 일대 퍼레이드를 앞두고, 재활용 박스 뒷면을 활용해 직접 손피켓을 만드는 시간도 있었다. 고등학생인 이지효(충북 영동군, 16) 씨는 N맥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기차를 타고 대구에 왔다. 전날에 이어 둘째날도 출근 도장을 찍은 이 씨는 “어제는 바리바리마켓에서 여러 종류의 비건 디저트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도 비건 지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주변에도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학생이다 보니 저에게 음식 선택권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이 씨는 축제 참여 소감을 묻자, “N맥 축제에서 다뤄지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도 더 돌아보게 됐다. 생각을 멈추지 않고, 문제를 인식하고 또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과 여러 종류의 동물 발자국을 그리며, ‘모두 동물인데’라고 적힌 피켓을 만들던 대학생 박소윤(19) 씨는 “평소에는 아무래도 비건음식을 먹거나, 다양한 삶의 양식을 경험하기 어렵다. 여기서 여러 종류의 비건 음식을 접하고, 설거지를 직접 하면서 사람들과 같이 비건 삶의 양식을 경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 27일 오후 동성로 일대 퍼레이드를 앞두고, 재활용 박스 뒷면을 활용해 직접 손피켓을 만드는 시간도 있었다.

오후 늦게 예정된 ‘닭과 이야기, 존재들의 행진’은 갑작스레 내린 비로 행진 대신 동성로 옛 대구백화점 앞에서 피켓팅 형식으로 바꿔 진행됐다. 마이크를 잡은 김기훈 씨는 “지난해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 100만 명이 넘는 손님들이 다녀갔는데, 아마 100만 명(命) 이상의 닭이 희생되지 않았을까”라며 “다른 동물의 죽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축제가 과연 맞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전국에 이런 동물 학대 축제들이 많다. 아무도 죽지 않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치맥 페스티벌이 친환경 축제를 표방했지만, 일주일 축제 이후에 발생한 쓰레기양이 60톤”이라며 “N맥 페스티벌은 시민들이 소비의 주체로 들러리 세우는 것 대신에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축제로 꾸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축제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27일 오후에 예정된 ‘닭과 이야기, 존재들의 행진’은 갑작스레 내린 비의 영향으로 행진 대신 중구 동성로 옛 대구백화점 앞에서 피켓팅 형식으로 바꿔 진행됐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