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 녹색당 부대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0:30
Voiced by Amazon Polly

[편집자 주=허승규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서 만난 반려동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독일생명평화기행 가실래요?

2023년 4월 23일은 사랑하는 할머니의 49재 종재일이었다. 종재를 마치고 친척들과 점심식사를 하던중, 경북녹색당 단체카톡방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생명평화아시아 이사인 성상희 녹색당원의 ‘2023 여름 해외 생명평화기행 제안’ 글이었다.

‘생명평화아시아가 처음으로 국제적인 차원의 생명평화기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간의 일정입니다.’

‘이번 국제 생명평화기행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녹색당과 반핵운동의 시원지였고 세계적 탈핵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심국가 독일의 녹색현장과 사회운동체를 둘러보고 향후 교류도 해 나가자는 취지입니다. 특히 올해 독일 녹색당의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이 한국에 지부를 설립할 예정이고, 여행 직전인 6월에는 세계녹색당 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어서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2주 동안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는지 살펴보자. 전반부에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녹색당, 하인리히 뵐 재단,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의 정당과 관련 정치재단 및 환경단체인 분트(BUND)를 방문한다. 연방의회에서 독일녹색당 의원들과의 간담회도 있었다. 베를린 일정을 마무리하면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주로 이동한다. 바이에른에선 한국의 4대강 사업과 다른 사례인 이자르강 생태 복원지역을 둘러보고, 2차 세계대전 최초의 나치 강제 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에서 독일인들이 참혹한 과거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반성하고 있는지 살핀다. 이후 녹색당이 집권중인 바뎀뷔르템부르크 주도 슈튜트가르트와 대표적인 녹색도시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한다. 에너지자립마을인 보봉마을 등 생활속 생태주의 실천 현장을 살피며 2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독일 축구 경기 관람은 없지만 맥주는 틈틈이 마실 수 있는 일정으로 보였다.

녹색당 당원, 생명평화아시아 회원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2주간 항공권 포함 3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한다. 일부 정당 및 시민단체 활동가는 70% 정도의 경비로 참여할 수 있다. 일부 지원을 받아도 220만원이란 비용은 부담스러웠지만 주요 방문 일정을 보니 한국의 녹색 시민으로서, 경북의 녹색당 정치인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사진=생명평화아시아]

한국의 녹색 시민에게, 나에게 독일은?

경북의 녹색당 정치인으로서, 지역에서 녹색 운동을 하는 시민으로서 독일은 한 번쯤 가고싶은 나라였다. 독일은 녹색당의 집권 경험, 탈핵에너지전환, 과거사 청산, 분단과 통일, 선거제도와 정치교육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국인에게, 특히 한국의 녹색 시민에게 영감을 주는 나라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이웃나라 일본과 자주 비교된다.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이지만 일본과 대조적인 길을 걸어왔던 독일은 식민지였던 한국인들에게 충분히 호감을 살만 했다.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독일의 통일 경험은 향후 한반도 평화 체제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참고가 된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수를 배분하는 독일식 선거제도는 승자독식 정치구조와 기득권 양당 정치에 짓눌린 한국 진보정당의 오랜 모범 답안이었다. 기독교민주연합(CDU)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정치리더십은 품격 있는 보수 정치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3년, 독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푸른 눈의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지금은 영화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목숨을 걸고 518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린 고마운 독일인 기자의 삶이 인상깊었다. 이후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독일 정치교육의 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범국민적인 정치교육 기관인 연방정치교육원의 존재에 매료되었다.

▲독일녹색당 부대표들과 함께 [사진=생명평화아시아]

독일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궁금증은 내 삶에 ‘녹색’이 더해지면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2012년 한국녹색당이 출범했고, 나는 그해 총선 녹색당에 투표한 0.48%, 103,842명 중 한 명이었다. 2015년, 내 생애 첫 정당인 녹색당에 가입했다. 2018년, 2022년 녹색당 안동시의원 후보로 2번 연속 출마해서 낙선했다.

그런데 나만 당선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녹색당은 2012년 창당 이래로, 3번의 대선, 3번의 총선, 3번의 지방선거를 거쳤으나 단 한 명의 공직선거 당선 경험이 없다. 원외정당 12년차, 한국녹색당은 여전히 정당 만들기가 진행중이며, 녹색당 바깥의 녹색운동 또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미비하다.

반면, 40여 년이 넘는 동안 제도권 안팎을 넘나들며 독일 사회의 탈핵에너지전환을 이끌었으며, 적녹연정과 신호등(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당)연정을 경험하고, 다양한 지방정부에서 아래로부터의 녹색정치를 펼치고 있는 독일녹색당의 성과와 한계는 그 자체가 한국녹색당의 참고서다.

최근 보수화되었다고 욕도 먹지만, 그만큼 욕을 들을만한 정치적 책임이 주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당의 존재감이 없으면 시민들은 비판은 커녕 관심도 없다. 욕을 먹으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40여 년간 그들이 이룩한 녹색전환의 성과는 배울점이 많다.

물론 독일 사회도 완벽한 사회가 아니다. 최근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20%를 넘으며, 신호등 연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사회가 어디있겠는가. 다른 나라에 대한 과도한 선망과 그 반대편에 있는 국뽕을 경계하면서 모범 사례와 시행착오 모두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아니한가. 우리는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독일생명평화기행을 결심하다.

4월 29일에 열린 녹색당 전국위원회에서 부대표로 승인되었다. 임명직 부대표는 당헌개정으로 새롭게 신설된 직책이며, 공동대표의 당무 집행을 보좌한다. 임기는 김찬휘 공동대표 임기인 7월 12일까지였다. (임기는 8월말까지 연장되었다.) 차기 공동대표 선거 기간 열흘간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 당무위원인 전국사무처장, 공동대표와 상의했다. 일정상 크게 무리가 없음을 판단하고 독일생명평화기행 참여를 결심했다. 당무위의 배려와 녹색당을 꿋꿋히 지켜온 당원들 덕분에 김혜미 녹색당 부대표와 독일에 다녀오게 되었다.

주최단체인 생명평화아시아(이하 ‘생평아’)에선 녹색당에 공동주최를 제안했다. 녹색당은 생평아의 취지 및 활동, 이번 기행의 성격, 부대표 2인의 참석 등을 고려하여 공동주최를 결정했고, 당원 대상 추가 모집을 진행했다. 공동주최인 만큼 기행 준비도 함께 했다. 나는 김혜미 부대표와 함께 독일녹색당 관련 소통 및 사전학습 준비를 담당했다. 2주간 비싼 돈을 들여서 가는 만큼, 제대로 본전을 뽑으려면 사전학습은 필수다. 전국 곳곳의 참가자들이 자주 모이긴 어려우니 온라인으로 4회차 사전학습을 진행했다.

▲책 <미래가 있다면 녹색>, 최백순 저, 2013

사전학습 기본서인 <미래가 있다면 녹색>은 2013년, 당시 이웃정당의 당협위원장이자 레드북스 공동대표인 최백순님이 썼다. 독일녹색당의 창당과 성장, 성과와 한계를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독일녹색당 창당의 주역인 페트라 켈리와 적록연정을 이끈 요슈카 피셔의 삶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최근 10년간의 역사는 빠져 있지만, 이번 사전학습의 기본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몇년째 책이 절판중이었고, 당분간 출판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녹색 정치 도서의 역작이 절판된지 몇년째 다시 발간되지 않는 상황은 현재 한국 녹색 정치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연상케 했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려운 현실일수록 더 열심히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독일녹색당 동향은 기사와 논문을 통해 보완했고, 방문 지역의 정치지형과 독일의 녹색 정책에 관한 칼럼들도 찾아보았다. 특히, 매주마다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미리 공유하고, 단 몇 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끄적여보는 과제가 있었다. 정답은 없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독일녹색당의 집권 배경, 성과 및 시행착오, 한국녹색당(또는 한국녹색정치)에 주는 시사점이 과제로 제시되었다.

▲온라인 사전 학습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사전학습 첫 모임을 이틀 앞둔 5월 26일, 2주의 여정을 함께할 독일생명평화기행 참가자가 최종확정되었다. 서울·경기·대구·부산·광주·전북·경북에서 지역·성별·세대·직업·관심사·MBTI가 다양한 18명의 녹색시민들이 단체카톡방에 모였고 인사를 나누었다. 녹색당원 또는 생명평화아시아 회원이 다수였다. 18명의 녹색 시민들과 함께할 기행과 귀국 이후 시간들이 기대되었다. 이렇게 읽을거리와 과제의 압박(?) 가운데 기행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었고, 어느덧 4주간의 사전학습도 마쳤다.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지막 과제인 ‘독일 방문에서 나는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어떤 화두를 들고갈 것인가?’를 곱씹어보았다. 출국 전까지 미완이었던 과제는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정리되었다.

독일의 생태전환을 이끈 독일녹색당과 녹색시민사회의 현장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자차 없이도 얼마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다양한 교통 수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태양과 바람의 나라의 에너지자립마을은 어떤 모습인지, 반려동물과 사람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에너지 위기에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현장의 갈등은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녹색의 가치가 어떻게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독일녹색당 중앙당 정치인들을 만나면, 연정 구성 과정 및 이후 독일녹색당의 쟁점 및 고민을 듣고, 향후 독일녹색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 우선 순위를 질문하자. 독일녹색당 지방정부 관계자를 만나면 지역에서 녹색당 바깥의 정치세력, 시민사회와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하는지 질문하자. 특히,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였다.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어려움과 과제들은 어떠한지, 갈등을 어떻게 직면했고 다음을 향해서 걸어갔는지 말이다.

답이 없어보이는 복잡한 문제를 붙잡고 꾸준히 가는 것이 정치의 소명이다. 40여년 간 정치의 영역에서 녹색 가치를 내걸며 고군분투해온 역사와 그 역사가 변화시킨 일상의 풍경을 직접 체험하자. 나는 여행에 가면 오롯이 일정에 집중하기보다, 여행 이후의 계획을 앞서 그리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한국 정치 현안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일정에 집중해보자. 18명의 녹색시민들, 한 분 한 분과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보자. 이처럼 실제론 지키기 어려운 교과서적인 여러가지 주문을 되새기며 독일로 떠났다. 인천에서 7월 2일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꼬박 14시간이 걸려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드디어 독일에 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