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는 외침, 오빠는 담배를 빼물었다···예천서 전례 없는 산사태

경북, 13일부터 16일까지 19명 숨져
예천에서만 9명 사망, 8명 실종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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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구조대의 외침과 함께 주저앉았던 실종자 가족들이 몸을 일으켰다. 15일 오전 5시 16분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마지막 남은 실종자 2명은 부부다. 부부 중 아내 60대 A 씨가 먼저 발견됐다. 발견 시각은 16일 오후 3시 46분.

A 씨가 살던 집터는 쏟아진 산사태에 지붕만 보였다. A 씨의 오빠 B 씨는 “찾았다”는 소리를 듣자 담배를 빼 물었다. 20분 뒤, 매몰지역에서 구조한 A 씨의 들것을 보자 B 씨와 A 씨 아들이 뒤를 따랐다. A 씨 아들은 들것에서 A 씨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눈물을 훔쳤다. B 씨도 눈을 비볐다. 산사태에 도로가 훼손된 탓에, 응급차를 타기 위해 구조대는 들것을 들고 10여 분을 더 내려왔다. B 씨는 동생과 함께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아직 아버지를 보지 못한 아들은 매몰 현장에 남았다.

▲백석리에서 수몰 피해자 A 씨 구조 현장을 바라보는 A 씨 아들과 오빠
▲백석리 상백마을에서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저는 멀리서 살고 있습니다. 예천이 아버지 고향이라 동생이 귀촌해서 이곳에 왔어요. 이 동네는 이 정도 규모로 사태가 난 적이 없어요. 아직 위쪽에 덜 쓸려온 사태가 있을 거 같아 위험해 보여요. 어, 지금 찾았다고 하는데 발견했나 봐요. 동생일 거예요.” (B 씨)

16일 실종자 수색 작업이 한창인 백석리 주민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생 백석리에서 산 주민들도 이번과 같은 산사태는 전례 없다고 한다. 자연부락 4개(하백, 상백, 텃골, 제촌)로 구성된 백석리에서 수몰 피해는 상부인 상백에 집중됐다. 소방, 군, 경찰의 수색도 상백에서 이뤄졌고, 주민 대피소와 현장 상황실은 아랫마을인 하백에 준비됐다.

주민 대피소에서 만난 백석리 마을 이장 황보성(69) 씨는 안타까운 소식을 더했다. 사고 당일 새벽 4시께 상백 주민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황보 이장의 전화를 받고 한 주민이 이웃에게 알리러 갔다가 집에 있는 아내를 데리러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집에 있던 아내도 급격히 차오른 산사태에 대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백석리 상백마을에서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백석리 상백마을의 상부 지역. 아래 쪽으로 상백마을이 보인다. 도로에서 2m 가량 높이에 있는 나뭇잎사귀에도 토사가 까맣게 말라 굳어있다.

“전날 군내 전역에 사태 위험에 대비하라는 공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 마을에는 전례가 없는 일이죠. 당일 새벽에 보니 심각한 거 같아서 다시 한 번 대피하라고 상백에 전화를 돌렸어요. 전화 받은 한 주민이 이웃에 전파하겠다며 나섰는데, 다시 전화해 보니 안 받더라고요. 그분과 아내분도 변을 당했어요. 상백에는 산울림 소리도 크게 들렸다고 하고, 하백은 정전이 되더라고요···지금 마을은 그냥 침묵상태입니다. 평생 같이 살던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는데. 날벼락이죠. 지금부터라도 재난 구역을 선포하든 조치를 잘해야 해요. 대통령님도 빨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황보성 이장)

황보 이장 말처럼 수몰 피해를 당한 백석리 마을 주민들은 막막한 심정을 호소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상백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 이강섭(64) 씨도 앞으로가 막막하다.

이 씨는 산사태로 집 한 귀퉁이가 쓸려 나갔고, 사과밭도 피해를 입었다. 농기계도 떠내려가 찾지 못하는 상태다. 이 씨는 산사태가 복개도로(하천을 메꿔 만든 길)를 따라 쓸려 내려왔다고 한다. 상백은 복개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민가 13가구 있었다. 백석리 전체 56가구 중 피해도 상백마을에 집중됐고, 5가구가 매몰됐다. 상백마을은 산사태 이후 매몰되거나 떠내려 와 현재는 터만 남은 곳도 있다.

“위에서 조금씩 토사가 밀려오면서 댐처럼 물을 모았다가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사태가 쓸려온 거 같아요. 이 마을에 비가 와도 물은 잘 빠졌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이만큼 오니까···지금 위쪽에 마을 사람들 선산도 있는데 거긴 어떻게 됐는지 알지도 못해요. 어서 재난지역이라도 선포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앞으로 재해 대책과 예방을 확실하게 해 줘야지요.” (이강섭 씨)

오후 6시 현재에도 구조대는 발견된 A 씨의 남편인 마지막 실종자 1명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구조대는 구조인력 80여 명과 펌프카, 굴삭기 등 장비 21대를 동원해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경상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3일부터 내린 비로 경북 곳곳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으로 예천 9명, 영주 4명, 봉화 4명, 문경 2명 등 19명이 숨졌고, 예천에서만 A 씨의 남편을 포함해 8명을 찾지 못했다. 17명은 부상을 입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