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1년 다닌 조양한울기공···“일터 지키잔 마음으로 파업 나섰다”

21년차 조농제 ‘30대에서 50대까지, 창원에서 대구까지’
노조 생기자 사측은 공장 이전으로 압박, 회유 반복
직장 폐쇄 10주째, 회사에 돌아가고 싶다
조양한울노조, 21일 투쟁기금 마련 후원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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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종례를 마친 노동조합 사무실에 분회장, 부분회장과 조합원 몇이 남았다. 야간사수조는 저녁을 사러 나섰다. 직장폐쇄 10주 차, 회사의 강경한 대응에 의도치 않게 파업이 두 달을 넘어가면서 미묘한 불안감이 사무실에 깔렸다. “이렇게 길어질 거라곤 다들 생각 못 했다. 그 전에는 파업을 해도 일주일이 최대였으니까” 부분회장 조농제가 말했다.

▲12일 오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양한울분회가 종례를 진행했다. 조합원들은 돌아가면서 아침과 점심, 노동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양한울분회가 5월 2일 파업에 돌입하자 바로 다음 날, 회사는 ‘직장폐쇄’로 대응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24명의 조합원은 지금까지 회사와 팽팽한 대립을 유지하고 있다. 교섭은 재개됐다가도 엎어지고, 회사 정문에 붙은 직장폐쇄 공고문에는 빗물을 막기 위한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었다. (관련기사=달성군 농기계 기어펌프 회사 직장폐쇄, 노조 “명백한 불법” (23.05.16.))

21년차 조농제 ‘30대에서 50대까지, 창원에서 대구까지’

조농제(52)는 농기계 기어펌프 제조 회사 ‘조양’에 21년 다녔다. 2002년 입사할 당시 조양 공장은 창원공단 내 아파트형 공장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현장 직원은 3명뿐이었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조농제는 초창기 멤버에 속했는데, 입사한 지 반년쯤 지나자 거래처가 뚫리고 물량이 늘었다. 대표는 공장 부지를 알아보다가 ‘대구 성서공단으로 간다’ 통보했다. 2007년, 현장 직원 중에선 조농제만이 대구로 따라왔다.

조농제는 “사장과 사이가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만 해도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사장은 ‘번 만큼 직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조금씩 변했다. 대구에 와 보니 창원과는 임금 차이가 컸다. 창원에는 대기업이 많은데, 대구 성서공단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보너스 600%가 창원에선 최하급 대우지만 대구에 오니 좋은 편에 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장 태도가 바뀌었다. 대구에 온 지 3년 지나서부턴 월급 인상률이 기존의 절반 수준도 안 되게 떨어졌다”

회사는 잘 나가는데 처우는 계속해서 안 좋아졌다. 조양 매출현황을 살펴보면 총자산은 2018년 116억 원에서 2020년 152억 원, 2021년 172억 원, 2022년 193억 원으로 늘었다. 매출은 2018년 66억 원, 2020년 64억 원, 2021년 89억 원, 2022년 96억 원으로 꾸준히 성장했으며 2018년 8억 4,000만 원이던 영업이익은 2020년 10억 원을 달성했다.

2017년 보너스 300%가 기본급에 산입됐다. 가족수당‧교통비 같은 각종 수당도 기본급에 녹아들었다. 제대로 된 절차도 없었다. 조농제는 가장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노사협의체 노동자 대표로 사인했다. 기본급이 높아져 좋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월급에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2018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보너스를 녹인 게 무용지물이 됐다.

높은 업무 강도와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에 신입직원이 한두 달 일한 뒤 그만두는 게 반복됐다. 그런데도 회사는 나머지의 100%까지 기본급에 산입시키려 했다. 조농제는 출퇴근 길에서 본 ‘노조 가입, 상담 현수막’을 떠올리며 “어차피 그만둘 거 노조 한 번 만들어 볼래?” 제안했다. 상담부터 조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직원 대부분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조농제가 분회장을 맡아 2018년 단체협약을 맺고 파업도 했다.

조농제는 당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저임금 인상이 예상되자 성서공단 기업주들 중심으로 임금 인상 전에 성과급이나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녹여야 한다는 의견을 공유한 걸로 기억한다. 조농제는 “비슷한 시기에 많은 공장이 임금 체계를 바꿨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올랐다.

급격한 인상으로 논란이 일자 정부는 2018년 5월 매달 1회 이상 지급되는 정기상여금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하도록 최저임금법을 개정했다. 기존에는 기본급 등 매달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만이 최저임금 산입 대상이었는데, 상여금 등 일부를 최저임금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노조 생기자 사측은 공장 이전으로 압박, 회유 반복

김상용(46)은 노조 설립 즈음 조양에 입사했다. 정확히는 재입사였다. 2012년, 1년을 일한 뒤 퇴사했고, 2017년 12월 재입사 했다. 김상용은 재입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울기공으로 배치됐다. 처음 조양과 인연을 맺은 2012년만 해도 사장과 직원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했고 주말엔 같이 등산하는, 말 그대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다시 들어간 회사는 예전과 다른 공기를 띄었다. 사장이 고함을 지르거나, 업무 압박을 느끼는 순간이 점점 늘었다. 2018년 초 노동조합을 처음 가입할 때 김상용은 “노동조합이 뭔지 잘 모르지만 ‘우리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서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9년 사장은 조양과 자회사 한울기공을 지금의 달성군 부지로 이전하겠다고 통보했다. 노동조합과 상의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대부분 직원은 당장 출퇴근이 문제였다. 동시에 사장은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기업노조로 전환하면 전폭적 지지를 하겠다고 회유했다. 차량유지비 10만 원과 이전격려금 10만 원.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견이 나왔다. 결국 기업노조로 전환했다. 사장은 새로 지은 공장 1층에 노조 사무실을 만들어 주고, 약속한 수당을 지급했다. 조농제는 “(회사 이전에 따른) 기름값을 고려하면 차량유지비가 나와도 그다지 좋을 게 없었지만, 공장이 창원에 있을 때처럼 잠깐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반복이었다. 코로나 시국이었던 2020년 말, 갑자기 농기계가 잘 팔렸다. 대동공업 등 고객사에서 해외수출 수요가 늘었다며 물량을 대폭 늘렸다. 조농제는 “회사는 추가 채용을 하거나 잔업을 시키면 돈이 나가니까 업무 강도를 늘렸다. 한 시간에 10개를 만들던 걸 13~14개 만들도록 생산계획이 내려왔다. 현장에선 할 수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무리해서 해내면 그 물량이 기본값이 됐다. 기업노조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들이 다시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단체협약에 명시된 대의원 회의 중 사장이 들어와 바쁜 업무시간에 왜 일을 안 하는지, 안건이 뭔지 물었다. 그때 조농제를 비롯한 노조 간부들은 다시 제대로 노동조합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금속노조 가입을 준비한다는 걸 알게 된 사장은 조농제를 업무지시 거부 등 30여 개의 항목을 들어 해고했다. 부당해고였다.

▲조농제(52)는 농기계 기어펌프 제조 회사 ‘조양’에 21년 다녔다. 2002년 입사 당시 공장은 창원에 있었다.

2022년 8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양한울분회 간판을 다시 달았다. 회사는 조농제의 해고를 철회했고, 그다음으로 분회장을 맡은 손기백에게 지시 불이행으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8월 단체협약을 시작하자, 사장은 자회사인 한울기공을 성서의 새로운 부지로 이전시키겠다고 통보했다. 노동조합이 반발하며 ‘한울기공 이전과 관련해선 조합의 동의를 거쳐 실행한다’는 조항을 넣으려 하자, 사장은 ‘경영권’이라며 반대하면서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조농제는 “한울기공에서 만든 핵심부품을 조양이 받아서 기어펌프를 만드는 방식이다. 두 회사를 멀리 떨어뜨릴 필요가 전혀 없다. 한울이 조양에 납품해야 하는데 굳이 물류비용을 들이면서까지 공장을 이전한다는 건 노동조합 활동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5월 2일, 조양한울분회는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직장폐쇄 공고를 붙였다. 조양한울분회가 파업에 돌입한 지 하루만이었다. 공고문에는 ‘조양한울분회 쟁의 행위로 인해 사업운영에 심각한 차질과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직장폐쇄를 공고합니다“라고 적었다. 직장폐쇄 기간은 ’쟁의행위 종료 시‘까지다.

김상용은 “파업이 길어질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동안 사장이 노동조합이 있어도 합의한 안을 뒤집는 등 막무가내식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직장폐쇄는 예상하지 못했다. 내 일터를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짜증나고 속상하다”고 전했다.

직장 폐쇄 10주째, 회사에 돌아가고 싶다

노동조합은 사측의 직장폐쇄가 계획적으로 이뤄진 노조 탄압이라고 보고 있다. 회사는 올해 3월 고객사 납품업체와 금속노조 측에 ‘납품중단 예상 통보 건’ 공문을 발송하며 “싸움은 노조가 포기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며, 노조가 물러서지 않는 한 사업 정리도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농제는 “지금은 평소 물량의 10% 수준만 나가고 있다. 미리 고객사에 납품업체 이원화를 하라고 얘기해 놨기 때문에 회사는 클레임에서 자유롭다. 빚 없고 현금 많은 회사라 ‘누가 먼저 지치나 보자’라는 입장이다. 우린 파업을 하고서 ‘회사가 철저하게 준비했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농제와 손기백 등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회사는 고소‧고발도 했다.

조합원들이 불안함을 내비치면서도 이탈이 적은 건 회사의 노동탄압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24명으로 시작한 파업은 생계 문제로 복귀한 한 명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함께 가고 있다. 이들이 회사에 원하는 건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것, 사장이 그동안의 욕설과 막말을 사과하는 것이다.

특히 6명의 사무직은 다시 일터에 돌아간 뒤를 걱정하고 있다. 2명의 연구직 중 한 명인 강동균(42)은 2018년 7월 조양에 입사해 기업노조부터 금속노조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강동균은 “사실 일터에 복귀하는 게 더 무섭다. 사무직은 모든 업무를 사장에게 재가 받고 일한다. 파업이 끝난다 해도 신뢰가 없는 상황일텐데, 1대 1로 일하는 사무직군에겐 사장의 외압이 직접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4일 교섭은 재개됐지만 여전히 난항 중이다. 조양한울분회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회사에 복귀해 정상 작업을 하면서 교섭을 하자고 양보했지만 사측은 순환휴직, 임금동결을 포함해 손기백 분회장의 범법행위 명시 등을 고집하고 있다.

조농제는 “생계 문제는 현실이다. 집에 가면 아내가 내 눈치를 본다. 기분이 안 좋게 들어가는 날이면 말을 안 걸고, 기분이 좀 좋으면 ‘요즘 잘 되고 있나’ 물어본다”고 말했다. 강동균도 “‘끝을 보고 와라’며 가족들이 중심을 잡아주지만 금전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조양한울분회는 이달 21일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의 밤’을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 생계비를 위한 행사다. 후원티켓 봉투가 쌓여 있는 테이블에서 조농제는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에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회사가 살아남아야 우리도 살고, 반대로 우리가 살아야 회사도 살 것 아니겠나. 노동조합을 한다는 건 우리 일터를 지키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사무실 한 켠에 붙어 있는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의 밤’ 포스터.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