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영의 다시보기] 7월 7일 21R 대구FC vs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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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비행시간이 1시간은 더 소요됐다. 공항 안내판은 줄줄이 지연 시그널이었다. 운무가 착륙을 방해했다. 승리 기원차 법환포구를 찾았다. 돌고래 가족이 격하게 꼬리를 내밀었다. 서귀포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승리의 기운이 감지됐다. 그라지예와 엔젤클럽을 앞세운 원정 응원단이 홈팬보다 많았다. 당연히 푸른 물결이 오렌지색을 압도했다.

7일(금) 저녁 7시 30분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FC의 선축으로 K리그1, 21라운드 경기가 시작됐다. 8위인 대구가 승점 1점 차이로 5위인 제주보다 세 계단 뒤에 있었다.

제주는 리그 초반인 2, 3월 경기에서 2무 3패로 최하위였다. 이어진 4, 5월 10경기에선 8승을 챙기며 3위까지 상승했다. 6월 이후엔 2무 3패로 다시 침체에 빠졌다. 상위권인 포항, 울산, 전북에게 패한 것은 위안이었다. 순위가 낮은 우리를 상대로 필승 의지를 불태울 것이 뻔했다. 상처 입은 지난 경기 치유도 필요했다.

대구는 선발 라인업 변동 폭이 시즌 중 가장 크게 요동쳤다.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좌측 센터백 조진우 자리는 고향팬에게 기량을 뽐내고 싶었던 김강산이 출전했다. 선발로 뛴 두 경기에서 연승을 일궜던 박세진도 7경기 만에 돌아왔다. 승리 기운을 되찾고 싶었던 최원권 감독의 바람이 엿보였다. 지난 경기 동점골 지분율 49%를 차지한 장성원은 당연 출장이었다.

5분 만에 이른 실점을 했다. VAR을 거쳤지만, 번복은 없었다. 선수도 팬들도 동요하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했다. 실점 후 선수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13분경 오른쪽에서 얻은 프리킥이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왼발 전문 홍철이 나섰다. 활처럼 휘어진 공이 골문을 향했다. 당황한 제주 골키퍼 김동준이 주먹으로 쳐냈지만, 진로를 변경시킬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이른 시간 한 골씩 주고받은 경기는 원점이 됐다.

15분경 바셀루스가 상대 진영을 파고들었다. 고재현의 슛까지 이어졌다. 볼은 빗나갔지만 분위기는 가져왔다. 원정 응원단이 일어섰다. 당황한 홈팀은 저장된 음향으로 맞불을 놓았다. 19분 수비에 나섰던 홍철 손에 볼이 닿았다. 주심의 손가락이 바닥을 향했다. PK였다. 팬들의 시선은 오승훈의 손끝으로 모였다. 경륜으로 키커의 방향을 읽었다. 주전에서 멀어졌다 돌아온 절실함이 몸에서 배어났다. 가라앉을 뻔한 분위기를 오승훈이 선방으로 되살렸다. 지옥 문턱에서 돌아온 홍철은 하이파이브로 감사를 표했다

편중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싶었던 남기일 감독은 채 30분도 지나기 전에 두 명의 선수를 교체했다. 이기혁과 링이 들어왔다. 전력 보강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젊은 피 박세진의 슛과 김강산의 자신감 있는 빌드업을 막지 못했다. 전반 종료 직전까지 괴롭힘을 당했다.

후반이 시작됐다. 전반의 좋은 흐름을 박세진이 이어갔다. 이기혁이 파울로 막았다. 장성원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다. 장성원을 연호했다.

남기일 감독이 전략을 수정했다. 경고가 있던 이기혁을 빼고 수비력이 좋은 안태현을 투입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번잡함이 우리 골문으로 옮겨왔다. 제주의 적극적 공세에 홍정운이 쓰러졌다. 의무진이 달려갔다. 다행히 털고 일어났다. 두 번째 쓰러졌다. 팬들도 더 이상은 무리임을 직감했다.

20분을 남기고 이원우가 투입됐다. 시즌 첫 등장하는 신예다.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어 기대를 갖게 했지만 직접 잔디를 밟을 기회는 없었다. 홍정운을 대체하기엔 관록에 차이가 많았다. 기우였다. 피지컬과 체력을 앞세워 제주의 공세를 차단했다. 공격에도 적극 가담했다. 홍철의 코너킥에 머리를 댈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종료 8분을 남기고 남기일 감독은 김승섭과 서진수를 투입했다. 홈에서 하위팀과 승점을 나누고 싶지 않음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최원권 감독도 응수했다. 이종훈, 이용래, 이근호의 조끼를 벗겼다. 교체 타이밍을 저울질하던 종료 1분 전 바셀루스가 좌측 공간에서 문전으로 공을 올렸다. 세징야와 제주 수비수 정운이 경합했다. 선점되지 못한 공이 뒤로 흘렀다. 네 명의 수비수 속에 장성원이 있었다. 빈 공간으로 정확하게 골문을 열었다.

▲장성원, 오승훈, 홍철 선수 [사진=대구FC 페이스북]

풀타임을 소화한 윙백이 종료 직전 골에어리어에서 경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실함과 절실함의 방증이다. 프로 데뷔골로 결실을 맺었다. FA컵 득점은 있었지만 리그에서는 첫 골이다. 팬과 선수들은 진심으로 축하했다. 가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었다. 바다 건너온 원정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겼다.

승기를 잡자 임무를 완수한 바셀루스, 고재현, 박세진을 불러냈다. 대기했던 세 명의 선수는 자신의 위치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포지션을 파괴한 옥쇄작전이 가동됐다. 종료 직전 홈에서 역전골을 허용한 제주는 추가시간 마저 자기들 시간으로 만들 여유가 없었다.

지루했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제주 월드컵 경기장은 초상집이 되었지만 원정석은 잔칫집이었다. 팬들은 “어디라도 그대들과 함께하리라”라고 외쳤다. 메아리가 된 승전가가 한라산 자락에 닿았다. 한참의 세레머니를 마치고 제주대첩 선무공신 셋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오승훈과 홍철 그리고 장성원이었다. 밥상은 오승훈과 홍철이 차렸지만 1등 품계는 역전 결승골의 주인공 장성원 몫이었다.

입단 동기들인 김대원, 정승원이 K리그 젊은 선수 육성 정책에 힘입어 캐리어를 쌓아갈 때 묵묵히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다. 동료들이 고액 연봉으로 이적할 때도 동요하지 않고 대구지킴이를 자처했다. 이젠 팬들이 그를 지켜줄 차례다. 7월 7일은 장성원 day다.

이긴 경기의 노획물은 기대보다 풍성했다. 장성원의 데뷔골 못지않은 기쁨을 두 선수에게 선사했다. 03년생 수비수 이원우와 02년생 공격수 이종훈이다. 신인 두 명을 4,210명이 운집한 무대에서 동시에 등장시킨 최원권 감독의 통 큰 배포도 돋보였다.

다음 경기는 11일(화) 저녁 홈에서 열리는 강원전이다. 11경기째 승리 공식을 잊어버린 강원을 상대로 연승에 도전한다. 법환포구에서 발현한 달구벌 태풍의 위력은 장맛비도 식히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