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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농막에서 자다 사망한 사람. 돼지농장에서 사망한 뒤 유기된 사람. 돈사에 빠져 죽고, 정화조를 청소하다 죽는 사람. 토끼몰이식 단속을 피하다 다치거나 죽는 사람. 단속이 두려워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
일할 사람이 없다는 농어촌과 낙후된 공단의 아우성. 그럼에도 코로나19 유행이 끝나자 곧바로 시작된 정부 부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동 단속. 추방되는 숙련 노동자. ‘상호주의’라는 이름으로 ‘중국’을 콕 찍어 거론하는 정부여당의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박탈.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탄 이주민을 향한 학생들의 집단 폭행. 폭행당하고도 병원이 아닌 출입국에 잡혀가 구금된 피해자.
소멸하는 지역, 농어촌에서 한국의 산업과 농업을 떠받치면서도 정작 처우에 대해 목소리는 내기 어려운 그들. 점차 더 높은 비중으로 사회를 구성하게 될 그들의 얼굴을 한국 사회는 아직도 직면하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불법’이란 말로 납작하게만 조명되는 이주노동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강제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에서, 속한 지역에서 받을 불이익을 감수하고 이주노동자 권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4월 출간된 <곁을 만드는 사람>(오월의봄, 이은주·박희정·홍세미)에는 산업연수생제도 시절 한국에 정착한 뒤 20년 넘게 이주노동자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들의 목소리가 납작한 이주노동자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빚어낸다.
8일 오후 7시 대구 도시철도 2호선 계명대역 쉼터에서 <곁을 만드는 사람> 북토크가 열렸다. 북토크에는 책에 등장하는 이주활동가 섹알마문, 또뚜야, 차민다 씨가 초청됐고 이주노동자와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북토크 진행을 맡은 김희정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장은 “이 책은 평등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라며 “오늘 여기도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있다. 함께, 우리가 발딛고 선 이 자리에서 함께 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전했다. 북토크는 주제별 담화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됐고, 주제어는 ‘미등록’, ‘한국 사회’ 2가지가 제시됐다.
미등록
IMF의 충격이 시작된 1998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온 섹알마문 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서 마석 가구단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열심히 해 사장의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같이 일한 한국 사람의 시샘으로 인해 위협을 받고 공장을 옮겨가야 했고, 퇴직금을 받지 못하거나 임금체불은 물론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섹알마문 씨는 우연히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와 연을 맺게 되고 2003년 명동성당 농성에도 참여하게 됐다. 농성 당시 인연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섹알마문 씨는 현재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또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등록으로 살 때 사람 취급을 못 받았는데, 노조를 만나며 내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할 일이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산업연수생 시절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고 나서 미등록 단속이 더 심해졌어요. 코로나19 때 사람이 부족하니 단속을 안 하다가 이제 단속이 심해졌어요. 지금은 정부가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할 때 다른 지역에 취직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 해요. 미등록은 제도 문제이지 사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미등록이 되더라도 한국에 살면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섹알마문)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미얀마 출신 또뚜야 씨는 옆에서 일하던 친구가 프레스 기계에 두 손이 잘린 걸 본 뒤 미등록이 됐다. 사장은 기계를 손 보지도 않고 또뚜야 씨에게 친구 대신 프레스 기계 앞에 서도록 했기 때문이다. 겁을 먹은 또뚜야 씨는 사업장을 이탈했고 미등록이 됐다. 이후 부산지역 기반 이주민단체인 ‘이주민과함께’와 연이 닿았고, 이후 활동가로서 삶을 살고 있다.
“미등록이란 건 그냥 서류예요. 사람의 가치에 관한 말이 아니에요. 처음 일한 공장에서 친구가 두 손이 절단됐는데, 그때 그 사장은 처벌도 안 받았어요. 그런 걸 불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친구 대신 기계 앞에 서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팔이 잘리는 악몽을 꿨고 무서웠어요. 제가 경찰서, 법원 가서 도와달라고 할 수 있겠어요?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미등록이 된 거예요.”(또뚜야)
스리랑카에서 2003년 한국으로 와 산업연수생이 됐던 차민다 씨는 위험한 일터를 견디고 일했지만, 체류 기한인 3년을 넘기자 미등록이 됐다. 미등록이 된 뒤 대구 성서공단으로 옮겨온 차민다 씨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열악한 공장에서 일하던 차민다 씨는 성서공단노조를 만나 이주노동자도 권리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고 그길로 노조 활동가가 됐다.
“미등록일 때는 시장에 장보러 가지도 못했어요. 단속이 무서워서요. 병원에 가면 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 엄청난 병원비를 내야 했어요. 일하는 곳에서 불합리한 대접을 받아도 말 못 하고, 불량이 나와도 덜컥 무서운 마음부터 드는 게 미등록이에요.”(차민다)
한국 사회
이들이 본 한국 사회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섹알마문 씨는 “건물이 높아지고 도로는 넓어지는데 마음은 좁아지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또뚜야 씨는 한국 사회의 변화만큼 출신국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짚었고, 차민다 씨는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건물이 높아지고 도로는 넓어지는데 마음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요. 이주노동자는 한국 경제에서, 밑바닥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정착한 후 22년 동안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는 오히려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한국 사회의 아픈 곳이 있고 여길 방치하면 언젠가는 곪게 돼요. 연대를 통해 이주민 차별을 없애가는 것이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에요.”(섹알마문)
“미얀마는 독재국가예요. 한국에 와서 인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어요. 미얀마에서는 집회도 못해요.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이주노동자 처우는 왜 이런가요.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우를 바꾸려면 이주노동자가 출신국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거 같아요. 그래야 한국에서도 변화가 생길 거예요. 용기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용기가 나고, 겁먹은 사람 옆에 있으면 겁이 나죠. 그러니까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해요.”(또뚜야)
“한국에 와서 노조를 만나고 나서야 이주노동자 권리에 대해 배웠어요. 노동과 권리를 이해하고 되돌아보면 저는 한국에서 노예처럼 살았다고 생각해요. 단지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요. 권리는 결국 스스로 요구해야 얻어낼 수 있어요. 차별받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생활을 바꾸기 위해, 지금은 노조 활동가로 살고 있어요. 지금은 금속노조 활동가죠.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여기 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힘을 내세요. 같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요.”(차민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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