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오류 바로잡는 국채보상운동기념비, 국채보상운동공원으로 이전

1997년, 북후정 위치로 추정된 대구콘서트하우스 인근 건립
대구읍성 ‘서문’ 밖 북후정, ‘북문’ 밖으로 잘못 알려져
20여 년 만에 국채보상공원 안으로 이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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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국채보상운동기념비 이전을 추진한다. 대구시는 기념비 건립 이후 꾸준하게 제기된 장소 고증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1,000만 원을 들여 국채보상운동공원 안으로 기념비를 옮길 예정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경제침탈에 대응해 1907년 대구에서부터 시작된 애국계몽운동이다. 대구시는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대구의 정신 중 하나로 삼고, 2017년에는 그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했다. 기념비는 1997년 국채보상운동 90돌을 계기로 건립됐다.

그해 10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공식 발족했고, 국채보상운동을 학술적으로 되돌아보는 세미나도 개최되는 등 현창 사업이 본격화됐다. 대구상공회의소는 옛 대구시민회관 인근에 기념비를 세웠고, 시민회관이 대구콘서트하우스로 거듭나면서 현재 위치(태평로 141)로 옮겨왔다.

기념비가 현재 위치에 세워진 건 1907년 2월 21일 이곳 일대에서 국채보상운동을 본격화한 군민대회가 열린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운동을 이끌었던 대동광문회는 서문시장 입구에 있던 북후정에서 군민대회를 열고 국채보상취지서를 낭독했고, 이후 들불처럼 국채 갚기 운동이 전개됐다.

▲국채보상운동기념비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기념비 건립 당시에는 현재 위치가 북후정이 있던 자리로 추정했지만, 이는 역사적 고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데 따른 오류였다. 2014년 임경희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강사가 대구경북연구원 발행 학술지 <대구경북연구>에 수록한 논문 ‘북후정 위치에 관한 고찰’을 보면 북후정 위치가 잘못 알려진 과정이 설명된다. 실제 북후정 위치는 과거 대구읍성 ‘서문’ 밖, 서문시장 입구이지만, 전승 과정에서 대구읍성 ‘북문’ 밖으로 오기됐고 이를 검증없이 반복하면서 현재 위치가 됐다는 것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꾸준히 북후정 고증 작업을 이어왔고, 2019년 최종적으로 북후정 위치가 현재의 오토바이 골목 안쪽에 있는 시장북로 22번지 일원이라고 확정했다. 원래 오토바이 골목 일대에 있던 서문시장은 192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고증에 따라 대구시는 기념비 이전 논의를 해왔고, 국채보상운동공원 내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옛 중앙도서관) 앞으로 이전을 추진하기로 했다. 북후정이 있던 오토바이 골목에는 기념비를 둘 만한 곳이 마땅하게 없고, 의미를 되새기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대구시는 실제 북후정 위치에는 동판을 새겨 의미를 기록했다.

심신희 대구시 문화유산과장은 “옛 중앙도서관이 리모델링을 통해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됐고, 기념관도 일부 만들어진다. 기념사업회와 전시관, 도서관 등을 연결해서 기념비까지 광장에 두는 게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어서 옮기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오는 10일 동상·기념비·조형물 설치 심의위원회를 개최해서 기념비 이전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