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 한국노총 조합원 28배 더 많이 승진···법원, 부당노동행위 인정

법원,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부당한 차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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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명 대 6명.

구미 반도체 기업 KEC가 2012년부터 7년간 인사고과 결과 ‘승격'(직급 상승)조치한 직원은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 민주노총 조합원보다 월등히 많았다.

조합원 수 264명(한국노총) 대 108명(민주노총). 2018년 기준 KEC 직원 중 한국노총 조합원은 민주노총 조합원보다 2.45배 많지만 7년간 승격 인원은 28배 많은 상황. 한국노총 조합원이 일을 10배 이상 잘한 것일까? “사회 통념상 단순한 근무 성적의 차이라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고 지적한 법원은 이 배경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의 파업이 있다고 판단했다.

▲파업 중인 kec지회. (사진 제공=kec지회)

23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박정대)는 금속노조 KEC지회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중노위가 ‘기각’한 판정을 취소하고 KEC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앞서 중노위는 KEC지회의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 중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에 비해 불리하게 인사고과를 진행했다는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재판부는 2010년~2011년 사이 있었던 KEC지회의 파업에 주목했다. 당시 지회는 전임자 수와 처우 문제 등을 두고 단체교섭을 했으나 결렬되자 파업에 나선 바 있다. 지회는 2010년 6월 21일부터 2011년 5월 25일까지 전면 파업에 나섰고, KEC는 2010년 6월 30일부터 2011년 6월 13일까지 근 1년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KEC의 노조탈퇴 강요 등은 법원에서도 인정돼, 벌금형이 선고 되기도 했다.

KEC는 2012년 2월 지회 조합원 71명을 정리해고했으나 철회하는 등 갈등을 이어갔다. 지회에 대한 부당한 인사고과도 그 시점부터 시작됐다. 재판부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을 비교해 볼 때 가입 노조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균등한 집단인데도 인사고과 결과는 통계적으로 현격한 격차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KEC는 파업 갈등은 과거 문제로 승격자 선정과 관련이 없으며, 승격자 선정은 객관적 평가에 따른 것이며 양 노조 조합원 간 객관적 실적과 수치가 실제로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평가 내용 중 규율성, 협조성, 적극성, 책임성 등 주관적인 항목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다는 점 등을 이유로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지회 소속 조합원의 인사고과 점수만 놓고 봐도 파업 이후 크게 감소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사회 통념상 단순한 근무 성적의 차이라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며 “KEC는 지회 소속 조합원에 대한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불이익을 줄 충분한 동기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노조 가입을 이유로 지회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서 지회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민주노총 경북본부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복수노조를 악용한 노조차별 중 한 사례인 승격차별을 노조탄압의 실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자본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김성훈 KEC지회 사무장은 “이번 판결로 KEC가 드러내놓고 금속노조 조합원을 차별하기는 어렵게 됐다”면서도 “승격 차별 조치는 과거 KEC가 자행했던 노조파괴의 연속선상에서 벌어진 일로, 판결이 난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거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또 다른 방법으로 노조를 차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KEC지회 수석부지회장은 “KEC는 직급으로 먼저 여성에게 차별을 가한다. J1부터 시작해서 S5까지 직급이 있는데, 여성은 S4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금속노조 여성 노동자는 20년을 일해도 J1에 머무르는가 하면 한국노총은 그 위로 승격된다. 금속노조 여성 노동자에겐 성별, 복수노조 차별이란 이중 차별이 가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KEC에 여성 노동자가 신입으로 들어와도 승격은 꿈도 못 꾼다고 예상했는데 이런 재판 결과가 나와 기쁘다. 그동안 억울하고 분한 것이 많았는데 차별을 인정받았다는 자체로 행복하다”고 설명했다.

▲직장폐쇄 당시 노조 조합원들에게 소화기가 분사됐다. (사진 제공=kec지회)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