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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퀴어문화축제 무대 설치를 앞두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진귀한 장면이 펼쳐졌다. 17일 이른 오전부터 반월당 중앙대로 인근에 대구시 공무원 수백 명이 축제 차량을 막기 위해 모였다. 차량 진입이 가능한 도로 양 끝단에 나뉜 공무원들은 사위를 주시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오전 9시 30분 반월당네거리 쪽에서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자 민방위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도로를 막아섰다. 한 공무원이 구호를 선창했다. “시민 기본권 가로막는 경찰은 각성하라” 신고된 집회를 보장하려는 경찰은 도로를 막아선 공무원들에게 호소했다. “공무원 여러분들, 우리 같은 공무원입니다. 다치지 않도록 이동해주세요”
중앙대로 입구에서 차량을 막아서던 공무원들은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마자 각본이라도 있는 듯 길가로 물러났다. 차량은 경찰의 호위 속에 입장했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극적 구성으로 느꼈는지, 유례없는 공권력간의 충돌을 눈앞에서 지켜본 축제 조직위나 구경하던 시민 일부는 박수를 보냈다. 대구 중앙대로를 가로질러 자유롭고, 긍정하는 축제의 공간이 열렸다.
그때 홍준표 시장이 등장했다. 10시 26분, 축제장에 도착한 홍 시장은 퀴어 축제에 대해 “공공성이 없는 축제이며 불법 천지”라고 했고, 대구경찰청장을 향해 “모든 것은 경찰 책임”이라며 10분 동안 비난을 쏟아내다 퇴장했다. 마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두고 보자”며 달아나는 빌런인 듯도 해 여운을 남겼다.
홍 시장은 평범한 빌런은 아니었다. 축제가 끝난 뒤에는 페이스북에 게시글 3개를 올려 경찰과 축제에 대한 불만을 기염을 토하듯 쏟아냈다. 각 게시물의 요점을 정리하면 ①시위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도로점거에 반대하며 ②대구시에 도로점용 허가권이 있는데도 경찰이 무단으로 축제장을 열어줬으며 ③주요도로인 이번 축제장은 시위가 ‘제한’되는 구역인데도 무시하고 집회신고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홍 시장의 세 주장은 서로 상충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명제이면서도, 각 주장 자체도 과거에 했던 말과 다르거나 사실이 아닌 주장이다. 주요도로의 집회시위 자체가 금지된다는 주장은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집시법 제12조에 따르면 주요 도로 집회는 교통 소통을 위해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어, 무조건 금지되지 않으며 이에 대한 판단은 관할경찰서장의 권한이다.
시민 불편이 문제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사전에 충분히 버스 우회를 안내하면 됐을 일이다. 도로점용 허가 없이 점용한 것이 문제라면 그전에 퀴어 축제에 반대하지 않는 홍 시장께서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도로점용을 사전에 허가했으면 될 문제다. 그러지 못한다면 축제 이후 도로점용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우리 헌법에서 기본권은 상황에 따라 충돌되도록 설계돼 있으니, 성소수자의 표현의 자유, 상인의 영업권, 시민의 통행권 중 어느 하나를 말살하지 않고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15회 대구퀴어축제를 앞두고 홍 시장의 말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지난 8일 첫 언급에선 “대구의 상징인 동성로 상권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문화를 심어 줄수 있는 퀴어 축제를 나도 반대 합니다”고 했다. 축제 자체에 반대한다는 이 첫 언급을 홍 시장의 진심이라고 한다면, 그 뒤 조금씩 바뀌는 말은 상황 전개에 따른 첨언과 정정으로 이해하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축제 자체가 싫다고 한 홍 시장은 또다시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배반한 꼴이 됐다. 퀴어축제를 흥행시킨 최고 공로자가 바로 홍 시장이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꾸준히 다음 편을 예고하니, 벌써부터 내년 축제가 기대된다. 홍 시장에게 애정이 있는 나로선 다음 편에서는 홍 시장이 성소수자와 함께 행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는 조연이 아닌 주연, 빌런이 아닌 히어로로 거듭날지 모른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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