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맥북이면 다 되지요’, 경상도 시골 중년여성과 늙은 암소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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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명성 아래 감춰진 오독의 그림자

2017년은 ‘대구독립영화의 르네상스’라 지칭되는 2010년대 중후반 시기 중에도 특기할 해다. 이 해에 김현정 감독의 <나만 없는 집>은 몇 년 만에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단편독립영화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미장셴 단편영화제 통합 대상을 석권했고, 김용삼 감독의 <혜영>은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바로 이 작품, 장병기 감독의 <맥북이면 다 되지요>는 (지금은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로 개명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국내경쟁 대상에 오른다. 정규 영화학과 하나 없던 변방의 영화들이 이룩한 실적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성과와 함께 고생 끝에 완성된 최창환 감독의 <내가 사는 세상>, 고현석 감독의 <물속에서 숨 쉬는 법>, 유지영 감독의 <수성못> 등 일군의 완성도 있는 장편영화들까지 등장하면서 대구독립영화는 비로소 세간의 인식 가운데 올라온 셈이다.

그 중에서도 장병기 감독의 <맥북이면 다 되지요>는 2017년 공개된 독립단편영화 중 한손에 꼽힐만한 수작이자 감독의 현재까지 경력 면에서도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업이다.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 후 단편독립영화의 ‘레퍼런스’ 중 하나로 지금도 종종 언급되지만, 이 작품의 맛은 천천히 음미해볼수록 색달라진다.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형태를 취하는데, ‘블랙’+‘코미디’의 조합 중에서 후자, 즉 ‘코믹’이 과도하게 조명된 측면이 다시 보면 볼수록 한 층씩 두드러진다. 이후 장병기 감독이 후속으로 선보인 작업과 연결해본다면 작가로서 감독의 방점은 명백히 전자에 맞춰져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감독의 이후 작업들, <할머니의 외출>과 <미스터 장>들에서 코믹 요소가 완전히 소거되진 않았지만 점점 옅어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 덕분에 감독의 작품세계 진면목을 직시할 수 있었지만 주목도는 오히려 흐릿해진 감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맥북이면 다 되지요>가 거둔 성공 이후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존재감과는 별개로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블랙’에 초점을 둔다면 작품 완성도나 호응과 별개로 이만큼 초지일관한 입장과 시각을 고수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다. 그만큼 장병기 감독은 일관된 톤으로 인간이란 존재의 이기심과 욕망의 저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 심연을 파들어 간다. 그 길이 아무리 깊숙하게 내려가 봐도 무저갱일 것이라는 징후는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자기파멸적인 집요함으로 감독은 추락을 두려워않는다. 마치 19세기 후반 ‘벨 에포크’라 불리던 시절에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 사조가 보도블록을 들추면 목격하게 되는 부패한 흙과 기어다니는 다족류들을 묘사하던 것과 같은 풍경을 전하는데 그야말로 초지일관이다.

<맥북이면 다 되지요>는 그런 감독의 영화 속 소우주의 빅뱅 같은 작업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절묘했던 유머 코드 덕분에 의도치 않게 오독 당하곤 한다. 그래서 개그 포인트를 덜어내려는 의식적 노력과 함께 본 작품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작품 속 푹푹 찌는 한여름 배경을 차가운 냉기로 뒷골 당기게 만들어버리는지 재발견하게 될 테다.

◆ 우리가 어릴 적 봐왔거나 미필적 가해자였던 시공간의 재생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 스틸 사진

무능한 남편, 자기들만 아는 남매와 함께 사는 중년여성 효선은 병원에서 조기폐경 증상을 진단받는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폐경을 늦출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효선이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질문한다. 의사의 답은 삼백만 원이다. 팍팍한 집안 살림에 목돈 나올 곳이라곤 있을 리 없는 효선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생리대도 빨아 쓰며, 아끼고 집안일 하느라 번거롭던 참에 폐경이 온다고 나쁠 것 없다는 생각 vs 인간으로서 용도가 다 한 것 같다는 체념과 회한이 효선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친다.

5년 넘게 돌려쓴 낡은 선풍기는 작동시키면 유세하듯 털털,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라 한밤 무더위에 살짝 작동시킬라치면 새된 소리로 잠 깨운다는 가족의 성화가 몰아친다. 집안을 떠받치느라 일평생을 바쳤건만 속이 답답해도 고작 선풍기 한 대 마음대로 틀 수 없다. 폐경 조짐 때문에 온몸이 삐걱대지만, 가족 중 누구하나 효선에겐 관심이 없다. 전형적인 옛날 촌집인 효선의 집은 본채에 대청마루와 방 2개, 부엌이 있고 사랑방 별채가 있다. 딸과 부부가 본채 방 하나씩, 사랑방에 아들이 잔다.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 스틸 사진

식구가 하나 더 있긴 하다. 14살 먹어서 이제 새끼도 낳지 못하는 암소 한 마리. 이름도 따로 없다. 아들은 방에 틀어박혀 밤새 뭘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아들이 어쩐 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맥북’이란 걸 사 달라 조른다. 물어보니 컴퓨터란다. 지금도 컴퓨터를 갖고 있지 않느냐며 미루지만, 자꾸 아들은 다른 컴퓨터랑 다르다며 이것만 사주면 다른 건 채근하지 않겠다며 매달리기 시작한다. 남자 기 세워줘야지 하는 표정으로 남편이 아들 역성을 들자 일단 가격이나 얼만지 묻자 생글거리며 아들은 삼백이라 한다. 가족들 사이에 고요가 깃든다.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 스틸 사진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에 수확 철이 아니면 이 가족에게 삼백이란 목돈이 나올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 살림살이에도 남편을 포함한 다른 식구 누구도 걱정은커녕 자기 욕심 채우기 바쁘다. 근심하던 효선의 시선에 문득 축사가 들어온다. 남편에게 소값을 묻자 대충 들은 답은 효선의 머릿속에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소시장 중개인을 찾아 값을 묻지만, 남편에게 들은 것보다 훨씬 형편없이 낮은 가격이다. 효선은 애꿎은 중개인에게 분통을 터뜨리지만 현실적으로 목돈 만들 방도는 달리 없다. 며칠 후 효선은 축사 앞에서 고사까지 지내며 이름도 없이 이 집에 봉사한 암소에게 이름을 붙여준 뒤 떠나보낸다. 그리고 읍내로 향한다. 효선은 삼백으로 어떤 지불을 치렀을까.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 스틸 사진

◆ 목가적 시골의 추억을 산산조각 내는 차가운 현미경 같은 시야

영화는 지독한 냉소를 취한다. 주인공 효선의 가족은 사회가 흔히 이상화시키는 ‘정상가족’의 전형 구성이다. 듬직한 남편과 충실한 아내, 아들과 딸로 구성된 4인 가정은 교과서는 물론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아이콘의 형상과도 같다. 하지만 그 속내는 구리다. 후각적 형용사 그 자체다. 도시인들이 시골길에 접어들면 확 와 닿는 쇠똥 냄새의 기억처럼 말이다. 가난하지만 화목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점잖은 소리를 원천봉쇄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충만한 영화다. 가족 중 다른 성원들은 아내이자 엄마로서 효선의 헌신을 전혀 고마워하지 않고 그저 착취할 뿐이다. 남편이 유들유들하게 아내를 대하긴 하지만 자신의 일을 떠넘기기 위함이 앞서 보인다. 아들과 딸은 어릴 적 속담처럼 할미새를 쪼아 먹는 새끼들의 현신처럼 묘사될 지경이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효선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자기처럼 단물 다 빨린 채 새끼를 낳는 효용마저 사라져 애물단지 신세가 된 암소뿐이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가련한 암소에게 고마움과 죄책감을 갖는 존재는 오직 효선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암소를 이용(착취)해야만 한다. 평생 새끼를 낳고 빼앗겨가며 이 가족의 온갖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돈 나올 일 다 책임진 암소는 이 집을 떠나는 (그리고 다른 효용이 없기에 곧 도축장으로 끌려갈 게 빤한) 순간이 되어서야 효선에 의해 이름을 얻는다. 소에게 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느냐만 말이다. 그 작명법에 관객은 일차로 박장대소하거나 쓴웃음을 짓거나 하겠지만 본 작품의 영문제목을 되새김질해 본다면 상념에 잠기지 않고는 못 배길 터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은 ‘MacBook’일 거라 누구도 의심치 않았을 테다. 하지만 정작 다시 확인해 보니 ‘Mac-boogie’이다. 무슨 차이일까? 대개 아들의 말 그대로 욕망의 대상인 맥북 컴퓨터를 사내라는 성화가 중심이 된 스토리로 본 작품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감독조차 어쩔 도리가 없는 이 작품의 운명이지만 적어도 감독은 14년 우생 내내 씨받이 신세로 이 가족에게 수탈당하면서도 이름조차 얻지 못했던 늙은 암소가 최후에 받은 이름을 중심에 놓았다. 그런 작지만 의미를 곱씹어보면 실로 전복적 인장을 새겨 넣은 덕분에 ‘우골탑’의 현재적 재해석이자 사회의 뒤안길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가는 중장년 여성들의 진혼곡으로 <맥북이면 다 되지요>가 완성될 수 있었다. 영문 제목의 작명센스는 감독이 감춰둔 해석의 비수 그 자체다.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 스틸 사진

소에게만 유일하게 유대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어깨에 강제로 씌워진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를 배신해야 하는 효선의 기구한 결단,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금전으로 주인공이 지불한 게 과연 무엇인지 유심히 들여다보자. 소심한 듯 효선이 (이 영화 속은 물론 아마 평생 그렇게 살아왔을 게 분명한 인생 통틀어) 자신을 위해 비로소 대가를 치른 작은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테다. 이를 통해 효선이란 캐릭터는 그저 바보처럼 평생 이용만 당하다 자신이 팔아치운 암소처럼 종말로 향해갈 수동적 존재를 뛰어넘는 복합적인 존재감을 살짝 드러낸다. 물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이 상상하는) 주인공의 삶은 겉보기엔 이전과 하나 다를 바 없이 답답하고 전망도 없을 테다. 그렇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효선의 잠든 표정을 주목한다면 그저 영화 속 그의 삶이 다람쥐 쳇바퀴라고만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 스틸 사진

◆ 감독의 진면목을 각인시킬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며

영화에는 감독의 자전적 기억이 일정부분 반영되어 있다. 맥북을 사달라며 떼를 쓰던 속 시커먼 아들 ‘진수’는 본인의 청소년 시절을 투영한 것이다. 아마 감독은 끝내 맥북을 손에 넣지 못한 것 같지만, 청소년이 맥북(혹은 그에 준하는) 같은 고가의 물건, 또래 사이에서 정작 얼마나 자신이 잘 쓸지는 몰라도 안 갖고 있으면 분해 견딜 수 없던 추억 속 명품은 차고 넘치게 마련이다. 그저 그런 욕망의 대상들을 ‘물신숭배’ 하듯 추억했다면 <맥북이면 다 되지요>는 지금과 같은 평판과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위치했을 테다.

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추억을 그저 낭만적으로, 그리고 박탈감으로 포장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전진한다. 자신이 맥북을 손에 쥐었건 갖지 못했건 그 부담과 수고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남들 다 갖는 아이템을 장만해 주지 못하는 부모세대의 무능력, 또는 세포분열을 잘못한 자신의 원형질에 책임을 묻겠지만 말이다. 감독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 혹은 실패하고 말았던 주체에 대해 질문한다. 부모다.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존재를 떠올리고 살을 붙여본다. 그렇게 이 영화의 줄거리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 주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는 질문은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난 뒤에야 뒤늦게 깨닫고 마는 성질의 통찰이다.

효선 역을 맡은 김금순 배우는 한국독립영화계에서 한손 꼽히는 중장년 여성 연기자의 표상과도 같은 얼굴이다. 그가 풀어내는 캐릭터는 그저 기능화를 넘어 한국사회가 무관심하게 획일화해버리는 어떤 세대의 감춰진 실체를 형상화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이 영화의 재미를 책임지는 동시에 오독에도 억울하게 끌려오는 남편 역 김준배 배우와 중개인 역 임호준 배우의 열연이 빛을 발한다. 물론 비극의 또 다른 주인공 암소 ‘맥북이’ 역시 그 순박한 눈으로 함께 어우러진다.

이제는 더 늙고 병들었을 지금의 효선들과 이미 세상에 없을 맥북이를 기억하라는 준엄한 경고와 함께 흔한 단편영화의 수명을 초월해 <맥북이면 다 되지요>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포착해 재현해낸 기록으로 여전히 유용한 텍스트로 남아 있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과 일제강점기 시절 ‘표본실의 청개구리’ 같은 손가락 베일 듯 예리하게 날 선 한국적 변용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장병기 감독의 다가올 신작이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작품정보>

맥북이면 다 되지요 Mac-boogie
2017|한국|드라마|22분
감독/각본/편집 장병기
출연 김금순(효선 역), 김준배(정만 역), 방은정(진숙 역), 표진기(진수 역),
임호준(소 업자 역), 차승호(의사 역), 강유경(젊은 여자 역), 맥북(소)
촬영/조명 최창환
조감독 감정원
스크립터 권진애
콘티 김은영
기획 이승우
프로듀서 이다운
미술 박철형
사운드 조유정문

2017 1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
2017 11회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기술상(최창환)
2017 19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2017 8회 부산평화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
2017 17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청장년부 동상

2017 10회 진주같은영화제 지역섹션-단편
2017 19회 대전독립영화제 연대와 유대의 초대
2017 19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경쟁19+
2017 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2017 43회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단편
2018 16회 피렌체 한국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