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운영 평리별관 무료급식소 올해까지만···대구시, 민간위탁 종료 결정

1993년부터 운영된 물리치료실,
1994년부터 운영된 무료급식소,
모두 올해 대구시 위탁 종료 결정
노인들, "여기 없어지면 어디가나···"
대구시, "인근 급식소 4곳 분산 가능"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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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11시,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지하 1층 복도, 50여 명의 노인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제일 앞에 선 이는 오전 9시도 전에 도착해 ‘좋은 자리’를 맡았다. 그들 앞문 위로 ‘무료급식소’라 적힌 팻말이 보였다. 사회복지법인 보림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는 1994년부터 벌써 29년 동안 운영됐지만, 30년을 채우지 못하고 올해 운영 종료될 전망이다. 대구시 민간위탁 사무로 운영되어 왔지만, 대구시가 올해를 끝으로 위탁을 종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 15일 오전 11시 무렵 찾은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복도 앞을 가득 메운 어르신들.

종합복지회관은 1992년 준공됐다. 지하 1층엔 무료급식소가 있고, 지상 1층엔 무료 물리치료실도 있다. 2층엔 경로당도 있어서 근방 노인들의 사랑방 같은 곳으로 자리 잡았다. 찾는 이들은 대부분 하루 한 끼 챙겨 먹기 쉽지 않은 취약계층 노인들이다. 무료급식소는 사회복지법인 보림이 대구시로부터 7,000만 원을 받아 위탁하는 일이다. 보림의 자부담과 후원금 등이 보태져 연간 1억 2,800만 원(2023년)이 운영비로 쓰인다.

넉넉하지 않은 재정 탓에 운영진은 최소한으로 한다. 박상길 무료급식소장과 조리사 1명을 제외하면 자원봉사들이 음식 조리, 배식, 청소까지 도맡는다. 이 지역 기초의원 등 정치권 관계자들도 봉사자로 참여한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주 5일 운영하면서 하루 약 300명 가까운 노인들이 찾았다. 코로나19 확산 후 주 2회(화·목) 운영으로 변경됐지만 여전히 많은 150명 넘는 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박상길 소장은 “주로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고, 재개발로 이사를 많이 가셔도 인근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다”며 “오랫동안 운영해 온 급식소가 문을 닫게 되면 어르신들이 아무래도 놀라고 당황스러워하실 것 같다. 움직일 여력이 되는 분들은 멀리까지 가겠지만 그러기 힘든 분들은 다른 곳을 이용하기가 어렵지 않겠냐”고 우려를 전했다. 그는 배식 시간에 맞춰 급식소 문을 열고, 줄을 선 노인들을 차례로 안으로 안내했다.

남성호(81, 중리동) 씨는 배식이 없는 날은 보통 집에서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남 씨는 “여기 바로 길 건너 광명아파트에 살다가 재건축한다고 해서 이사를 갔는데, 35분 걸려 여기에 밥을 먹으러 온다”며 “3월까지는 고등학교에서 ‘배움지킴이’로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3시간에 1만 3,000원을 받았다. 밥을 먹으러 오면서 파지도 찾는데 쉽지 않다. 요즘 파지값도 많이 떨어져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권순자(72, 평리3동) 씨는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발걸음을 어렵게 움직였다. 권 씨는 뇌졸중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가 퇴원해 아직 거동이 불편해 전동차를 타고 이곳 급식소를 찾는다고 했다. 권 씨는 “여기 급식소를 이용한 지 오래됐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이용을 못했고, 퇴원해서 다시 잘 이용하고 있다”며 “소장님도 그렇고, 봉사자들도 그렇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없는 지 물어보면서 잘 챙겨줘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평리3동으로 이사 온 지 12년째 되는 홍영숙(82) 씨는 주5일 하던 급식소가 코로나로 배식일이 줄고, 빵과 우유로 대체급식을 해 아쉬웠다면서 다시 따뜻한 급식을 하게 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홍 씨는 “여기가 얼마나 좋다고. 없어지지 않고 계속 운영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지하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대구시 예산 삭감에 따라 올해까지만 무료급식소가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1층 무료 물리치료실도 무료급식소와 같은 처지다. 물리치료실은 무료급식소보다 1년 앞선 1993년부터 민간위탁사업으로 운영돼 왔다. 올해 기준 대구시가 이 사업에 지원하는 예산은 7,600만 원이다. 위탁해 온 사회복지법인 마음이아름대운재단 측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최한주 사무국장은 “이용하시는 분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이고, 취약 계층을 위한 사업인데 갑자기 없어지게 되면 걱정이 앞선다”며 “1년에 1억도 채 되지 않은 예산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남순(88, 평리6동) 씨와 김경숙(73, 비산7동) 씨는 무료급식소에서 일찌감치 밥을 먹고 물리치료실 대기실에서 점심시간 이후 재개되는 물리치료를 기다렸다. 강 씨는 “안 아픈데가 없지만 다리랑 어깨 쪽에 물리치료를 자주 받는다. 거의 매일 온다”며 “노인들이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지 않냐. 어딜 가겠냐. 여기가 없어지면 노인들이 갈 데가 없다”고 했다.

뒤에 앉아있던 김 씨도 맞장구치면서 “무료니까 이용하는 노인들이 많다. 오전에 노인일자리나 복지관 갔다가 일찍 와서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이렇게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날 10시 30분부터 무료급식소에 왔다.

이곳을 이용한 지 10년쯤 됐다는 이선이(75, 평리1동) 씨도 “절대 없어지면 안 된다. 이 동네 살다가 달서구로 이사 간 사람도 무료급식소 이용해도 되냐고 묻더라. 물리치료실도 그렇고 여기를 잘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면서 “설마 없어지겠나”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씨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이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 지난 1992년 준공된 대구 서구 평리동 소재 종합복지회관 평리별관.

‘설마 없어지겠나’라고 하지만, 대구시는 현재로선 종료 입장이 확고하다. 지난 6월 5일 대구시는 ‘평리별관 무료급식소·물리치료실 사무 종료 계획’을 세웠고, 홍준표 시장이 직접 결재도 마쳤다. 대구시는 인근에도 유사 시설이 있는 만큼 이용자들이 분산돼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경 2km 안에 무료급식소는 4곳 있고, 무료는 아니지만 노인복지관과 보건소에서 식사나 물리치료도 대체가능할 거라는 거다.

홍윤미 종합복지회관 관리사무소장은 “민간위탁 사무 일제 정비를 통해서 폐지 사무로 지정이 됐다. 평리 재개발 촉진지구가 재개발을 추진 중이라 이용자들도 줄어들고 있고, 인근에 급식소나 복지회관이 있어서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