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법원, 난민 첫 인정···’아랍의 봄’ 참가자 난민불인정 취소 판결

이집트서 무슬림형제단 활동했던 반 군부정권 인사, 난민으로 인정
"한국에 감사드려···군부정권이 아내와 자녀 여전히 위협"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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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난민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승소한 난민은 2013년 이집트 ‘아랍의 봄’ 시위에 참여하고 시민들을 치료했던 A(39) 등 2명이다. A 씨는 아랍의 봄 이후 본인이 참석하지 않은 ‘궐석재판’에서 사실 무근의 죄목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사실을 알고 위협을 느껴 2018년 한국에 와 난민 인정을 신청했지만 법무부로부터 불인정 처분을 받고 법정 투쟁에 나섰다.

▲2011년 1월 아랍국가에서 벌어진 시위. [사진=flcikr.com @Ibrahim Arab]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대구지방법원 행정1단독(재판장 허이훈)은 A 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사건에서 A 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이 확정되면 법무부는 A 씨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A 씨는 고등학생이던 1999년부터 무슬림형제단에서 활동했고, 2013년 6월경부터 라바 아다위야 광장 시위에 참여했다. 2013년 7월 이집트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쿠데타에 반발하며 같은 해 8월 람세스 시위에 참여해 다친 시민을 간호했다. 람세스 시위란 당시 이집트 카이로 람세스 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시위로, 시위 과정에서 시민 다수가 사망했다.

시민 반발에도 군사 정권은 쿠데타로 집권을 굳혔다. 2014년 A 씨는 영장 없이 경찰에 체포돼 4개월 넘게 구속 수감생활을 했다. 석방 이후에도 정부 측 인사가 A 씨 주거지를 찾아와 가구를 파손하는 등 위협을 가하자 A 씨는 주거지를 옮겨 다니며 도피 생활을 했다.

A 씨는 석방 이후, 2017년에 갑자기 군사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접했다. 한 번도 직접 재판 심리에 참석한 적 없이 형이 확정된 소위 ‘궐석재판’이다.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했고, 흉기 소지, 경찰을 살해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무슬림형제단 가입은 사실이지만, 다른 혐의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추후 파악하기로 군사 정권은 무슬림형제단 단원을 포함한 130여 명에게 똑같은 혐의를 일괄적으로 적용했다. 장기 투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A 씨는 인근 국가로 밀입국해 도피하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A 씨가 이집트 군사법원으로부터 받은 궐석재판 판결문 번역본. A 씨를 포함한 시민 130여 명이 같은 죄로 판결을 받았다.

2018년 7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A 씨는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인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법무부는 장기간 심사 끝에 2022년 1월 ‘난민 불인정’을 처분했다.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아 난민법상 난민 인정사유가 없다는 취지였다. 처분 당시 경북 김천에서 거주하던 A 씨는 대구지방법원에 난민불인정처분 취소를 청구했다.

재판부는 A 씨가 무슬림형제단에 소속돼 군부 정권에 대항했던 활동이 군부 정권으로부터 ‘박해 받기에 충분한 공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어 본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외국인 등이다. 이 때문에 난민 지위와 관련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난민 신청인이 인종, 종교 등으로 인한 박해 가능성과 그 증거를 주로 따진다.

재판부는 앰네스티 보고서, 유인인권이사회 보고서, 미국무부 보고서 등을 참조해 2013년 이집트 군부 쿠데타 이후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후 무슬림형제단이 군부 정권으로부터 테러조직으로 지정되면서 이들이 군부정권으로부터 광범위한 탄압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군부정권은 불공정한 재판을 진행해 수백 명의 사람에게 사형이나 징역형을 선고했고,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정부 비평가 등 수 만명의 시민을 체포해 장기 구금한 사실도 인정했다.

법무부는 A 씨가 제출한 궐석재판 판결문 등 근거가 이집트 정부가 발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증거 능력을 인정(진정성립)했다. 재판부는 “이집트 내에서 박해 경험 등에 관한 원고의 진술이 전체적으로 합리적이고 수긍할 수 있다”며 “원고는 2013년경 쿠데타 반대 시위에 여러 차례 참가해 정치적 견해를 표현했다. 이후 영장없이 체포돼 4개월 이상 구금되어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무슬림형제단 내에서 낮은 지위에 있어 군부의 주목 가능성이 낮다는 법무부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불법체포, 구금,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돼 이미 박해를 받았다. 또한 주목가능성이 낮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이집트 정부 탄압은 지금까지 계속돼, 이집트로 복귀할 경우 다시 체포, 구금될 우려도 있어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A 씨는 승소 소식에 “군인인 적이 없었는데 군사재판에서 장기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군사정부는 우리 가족을 위협하고 있고 지금도 가족이 본국에 남아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것은 정말로 기쁘다. 한국 사법부가 존경스럽다. 하지만 법무부에서 난민 심사를 할 때 한국말을 못해 정확히 인정되지 못했는데 제대로 심사됐다면 법원에 가지 않아도 난민이 인정됐을 것”이라며 아쉬움도 표했다.

A 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변호인 측은 환영을 표하면서도, 법무부와 사법부가 기본적으로 난민신청인을 체류 연장 목적으로 난민 신청을 남용하는 이들로 간주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참길)는 “A 씨 경우 다른 난민에 비해 신청 사유를 입증하기 수월한 사례라 원심 승소 결과로도 이어졌다”며 “하지만 난민 사건은 신청인 본인이 난민 신청 사유를 제대로 입증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고, 법원과 출입국에서도 기본적으로 난민 신청을 체류를 위한 남용적 신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무부가 일단 불인정하면 난민신청인이 법무부를 상대로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이 때문에 사실상 난민의 상태에서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강제출국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어, 앞으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과거 주이집트한국대사관이 법원 사실조회절차로 난민 소송 과정에서 근거 자료를 확인 해주는 사례가 있어 승소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자료 확인을 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어 어려움이 있다”며 “무슬림형제단 활동, 자유정의당 활동이 (군사정부의 박해가 명확하기에) 보강증거로 인정됐지만, 난민 사건 특성상 입증할 증거를 완벽하게 수집할 수 없는데도 난민으로 인정돼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난민인정률 1.58%
소송서 뒤집힌 사례 0.003%···대구는 0%

법무부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한 1994년 이래 2022년까지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관할 지역에서 제기된 난민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난민이 승소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피고로 참석한 난민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총 1,390건 중 출입국이 1,114건을 승소했고, 나머지는 원고 취하(185건), 또는 계류(91건) 중이다. 대구지방법원 확인 결과 최근 2년간 난민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대구출입국이 패소한 사례도 없다.

대구·경북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총 8만 4,922명이 난민을 신청했으며, 이중 법무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난민신청인은 1,338명(1.58%)이다. 법무부가 불인정하면 당사자는 법원에 난민불인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총 2만 26건의 소송이 제기됐으며, 이중 원고가 승소한 사례는 총 70건(0.003%)이다. 이번 대구지방법원 선고로 대구도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 인용 비율 ‘0’은 벗어나게 됐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