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 뭐고, 시비 걸러 왔나”
“아니, 행님, 말이 안 맞잖아”
“안 맞긴 뭐가 안 맞아, 인제 와서 설명회 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잖아”
홍준표 대구시장 결정으로 추진되는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갈등이 주민설명회를 기점으로 표출됐다. 평소 형님-동생으로 지내던 이중희(우록리, 65) 씨와 임병훈(삼산리, 59) 씨는 가창면 편입 문제를 두고 반대와 찬성으로 마주 보고 섰다.
30일 오후 2시부터 가창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릴 주민설명회를 앞두고 센터를 찾은 두 사람은 설명회 개최 여부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두 사람 외에도 현장 곳곳에서 주민들이 나뉘어 찬반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 ‘행님, 이러지 마이소’, ‘니가 이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 씨는 편입을 기정사실화한 듯 하는 대구시의 추진 과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고, 임 씨는 반대 측 주민이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며 비판했다. 이 씨는 “주민 의향 확인도 없이 시장이 농담 비슷하게 발표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고, 임 씨는 “앉아서 이야길 좀 나눠 보려고 하는데 저 사람들(반대 측 주민)은 애초부터 싸움하려고, 화부터 낸다”고 말했다.
이 씨 말처럼 대구시는 지난 3월 9일 홍 시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언급하면서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을 공식화했다. 공식화 후 약 3개월 동안 별다른 주민 의견 수렴 절차는 없었다. 언론사와 달성군, 수성구가 개별적으로 여론조사만 진행했다. 대구시는 설명회 이후 6월 예정된 대구시의회 정례회에 ‘경계변경 조정 신청 동의안’을 제출해 의회 동의를 받은 후 절차를 밟아 간다는 입장이다.
대구시는 이날 설명회에서 가창면 편입 추진 배경과 향후 추진 절차 등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한 시간 동안 반대 주민들의 항의가 이뤄지면서 파행했다. 행정복지센터 3층 회의실에는 간이 의자 약 200석이 마련됐고, 대부분 찬성 주민으로 채워졌다. 반대 주민들은 착석을 거부하고 단상 앞에 서서 설명회를 진행하려는 대구시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오후 3시께 설명회 무산을 공언한 이재홍 대구시 행정국장은 추후 절차에 대한 물음에 “설명회가 법적으로 정한 절차는 아니어서 추가 개최 여부는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며 “찬성, 반대 주민을 나눠 진행할 지, 찬성 주민들만이라도 만날지도 추후 검토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회는 무산됐지만 대구시는 3페이지로 준비한 자료를 참석 주민들에게 배부했다. 자료에는 편입 추진 절차가 간단하게 설명됐다. 특히 의회가 ‘경계변경 동의안’을 처리하면 행정안전부에 경계변경 조정신청을 한 후 구성하는 ‘경계변경자율협의체’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대구시에 따르면 협의체는 시와 구·군 관계 공무원, 지방의원, 전문가, 주민 등으로 구성하고, 120일 동안(추가 30일 연장 가능) 경계 변경 여부 등을 두고 논의해 편입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대구시는 11월까지 이 과정도 마무리해서 12월에는 편입 입법도 마무리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홍준표의 결정 후 일사천리 진행
‘경계변경 동의안’ 처리 앞둔 의회는 난색
하지만 설명회가 파행한 것처럼 주민 의견이 맞서면서 당장 ‘경계변경 동의안’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대구시의회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가창면 편입에 대한 주민 의견은 언론과 지자체가 진행한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것이 현재까진 전부다.
매일신문은 지난 3월 24일부터 26일 사이 한길러스치에 의뢰해 가창면 거주 만 16세 이상 4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홍 시장이 편입 의사를 밝힌 후 처음 이뤄진 여론조사로 65.3%가 찬성한다는 답을 했다. 반대는 22.3%, 잘모름 또는 무응답은 12.3%다.
편입의 직접 당사자인 달성군과 수성구도 여론조사를 진행했지만 그 결과는 비공개다. 달성군의 결과는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가창면민은 약 64%가 찬성했지만, 가창을 제외한 달성군 주민들은 87% 가량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성군수와 달성군의회 뿐 아니라 달성군에 지역구를 둔 시의원도 반대 의견은 명확하다. 최재훈 군수는 지난 3월 김대권 수성구청장에게 편입을 주제로 끝장 토론을 제안했고, 군의회는 지난달 7일 군의원 12명 전원 명의로 편입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군의회는 같은달 대구시가 진행한 의견 조회에도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달성군에 지역구를 둔 A 시의원은 “달성군 전체를 보고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달성군의 ¼에 해당하는 면적을 내어주는데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런 절차 없이 시장의 말 한마디로 추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A 의원은 “잘 지내던 사람들끼리도 가창면 편입 논란으로 원수처럼 벌어졌다”며 “편입을 고민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충분히 거쳐서 갈등을 푸는 절차가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같은 의견은 설명회가 있던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이중희 씨는 “인구 7,500명도 안 되는 면에서 그동안 조용히 형님, 동생하며 잘 지내던 사람이 다 갈려 있다”며 “꼴 좋다고 한다. 인구 몇 안 되는 주민들끼리도 갈라놓고, 이건 되돌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제출하는 ‘경계변경 동의안’의 첫 관문인 기획행정위원회 B 의원도 “위원회 차원에서 전문가, 주민, 의원들 의견을 듣고 결정하려고 한다”면서도 “중요한 문제를 두고 의견 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의회가 결정하라고 떠넘기는 방식은 우려스럽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한편 홍 시장은 같은 시각 대구시 출입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창면 편입 의지를 다시 밝혔다. 홍 시장은 “연말이 되면 모양이 나올 거다. 대구시의 행정편의 문제다. 비슬산 넘어서 달성군으로 가느냐 가까운 수성구로 오느냐 그 문제에 불과한데, 기자들이 왜 관심 갖는지, 관심 안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