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명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 서 있습니다. 희망과 열정, 삶의 현장에서 쫓겨난 지도 10개월이 되었습니다. 작년 2015년 6월 말이었습니다. 출근하려던 우리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회사정문 출입이 막혔습니다. 정문 앞에는 아사히 총무과 직원들과 용역들이 함께 우리의 출근을 막았습니다.
뼈 빠지게 죽으라고 일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가 해고라니. 서러움에 울분을 토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넋이 빠진 모습으로 뒤돌아서니 자식들 모습과 마누라 얼굴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어떡하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갑자기 울컥거리는 나의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주변 동료의 모습에서도 지금의 내 모습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 다 고만고만한 나이에 자식과 마누라, 부모님, 가족의 행복을 찾아 정든 일터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가난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한 일에 모두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어색했던 구호와 노동가요를 한목소리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지금 현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고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했습니다. 일본 아사히 본사를 찾아가서 항의방문하고, 목이 터져라 ‘파업가’를 불렀습니다. 힘찬 구호와 손짓을 할 때 아사히 하청업체 GTS에서 1차 희망퇴직서를 받았습니다. 조합원 모두가 술렁거렸습니다. 어떤 결정을 할지 서로가 말을 아꼈습니다. 경제적 문제와 가정사 모든 것이 순전히 나의 몫으로 결정해야만 했던 1차 희망퇴직서였습니다.
투쟁으로 이어갈 것인가? 여기서 돌아서야 하는가? 많은 고민과 생각에 노조는 조합원의 뜻을 존중하면서 조합원의 선택에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많은 동지들을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저는 휴가 중입니다. 7월 1일부터 시작된 휴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아직 휴가 중입니다. 같이 휴가를 온 동지들이 지금은 많이 떠났지만 괜찮습니다. 아직도 휴가 중인 동지들이 남아있으니까요”
이렇게 1차 희망퇴직 사태를 정리하고 다시금 투쟁의 고삐를 당겼습니다. 구미시장과 관계자들, 구미시의원들, 구미노동지청장과 관계자들, 산업관리공단 기관장에게 아사히의 부당함과 부정을 알렸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외치고 따졌지만, 저들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문제도 아니고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억울합니다. 구미시가 외국자본을 유치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던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는 구미시로부터 50년간 토지 무상임대와 지방세 감면 등 온갖 특혜를 받으며 한국 땅에서 사업해왔습니다. 구미시에서 말입니다. 그런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는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구미시 모든 기관은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와 한통속으로 우리 문제를 외면하고 그냥 그렇게 빨리 끝나기만 바라고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2015년 여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맞은 봄이었습니다. 숙련된 구호와 몸짓으로 여느 때처럼 투쟁하고 있을 때, 비통함과 충격적인 2차 희망퇴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노조에 직책을 가진 자가 아사히글라스 총무팀장과 여러 번 술자리에서 만났고, 노조의 투쟁전술과 조합원 개인의 신상정보를 팔고, 조합원을 포섭하려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합원 간 갈등까지 조장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조합원 상당수가 저들의 음모에 휘말렸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열심히 단결하고 투쟁해서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자던 조합원들은 초심을 잃어버리고 동지의 등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떠나갔습니다. 2차 희망퇴직 마지막쯤에는 아사히글라스 노사협의회 쪽 사람이 다른 조합원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아사히 총무팀과 똑같은 방법으로 술을 먹고 조합의 이모저모를 묻고 유언비어로 갈등을 조장하고 회유협박하며 노조탈퇴를 종용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 노사협의회 대표와 만난 우리 조합원은 그들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숨소리 하나까지도 다 녹음해서 그들의 만행을 만천하에 폭로했습니다.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는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할까요?
“수많은 날을 우리는 외쳤습니다. 단결과 투쟁을 무수하게 외쳤는데 돌아오는 메아리는 아주 작게 속삭이네요. 좀 더 큰소리로 외치라고! 맞습니다. 내 소리가 작으면 돌아오는 소리가 작을 것이고, 내 소리가 크면 돌아오는 소리도 클 것입니다”
2016년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는 날에 떠나는 동지여 우리는 항상 그대들을 응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