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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이 과로사 위험을 키운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와중 대구지역 쿠팡물류센터, 공무원, 화물 노동자가 과로노동을 증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현장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설명하며, 정부에 근로기준법 개정안 폐기를 주장했다.
12일 오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촉구 및 과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본부장은 “많은 노동자가 5인 미만‧최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며 투잡을 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통해 양극화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만 과로사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의 과로노동을 증언하기 위해 참석한 이창률 공공운수노조 쿠팡대구물류센터분회장은 “칠곡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서 출고공정 업무를 하고 있다. 쿠팡은 장시간 노동보다 집중적인 노동강도, 부족한 휴식시간으로 인한 과로노동이 문제”라며 “평균 3시간 이상의 작업 시간 동안 휴식시간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단순 반복 작업을 하면 근골격계와 심혈관계에 문제를 누적시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으로 노동시간이 집중적으로 늘어나면 더욱 위험한 노동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노동자의 과로사 사례도 소개됐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공무원 재해 현황 중 사망자는 341명이고, 이중 과로사로 인정받은 사람이 113명(33%)이다. 자살도 35명(10%)이나 된다.
박재현 전국공무원노조 대구지역본부 교육국장은 “공무원 과로사는 주로 재난 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비상상황으로 주말에도 출근하며 격무에 시달린 공무원이 과로사한 사례가 많다. 이 외에도 동물 전염병 업무를 하던 방역 공무원, 선거 사무를 하던 노동자, 소방공무원, 우체국 공무원 등이 과로사했다”며 “긴급상황 동원을 가능케 하는 ‘복무규정’과 헌신·봉사 등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장시간 비상근무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육국장은 “공무원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예외가 되어 노동시간 상한인 주 최대 52시간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추진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과로사와 과로로 인한 자살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실태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손영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대구경북본부 서부지부장은 “화물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안전문제를 야기하고 사고 시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더욱 문제다. 실태조사 결과 위험물을 싣는 화물노동자의 일 운행시간은 평균 14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손 지부장은 “실제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고용노동부의 ‘2021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중 전체 근로자 평균 노동조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특수고용형태노동자로 노동법상 보호를 받지 못해 최저시급도 적용받지 못하는 품목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증언대회에는 전문가들도 참석해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우려를 전했다. 김세종 노무사(노무법인 함께)는 “현행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주 52시간 초과 노동 사례에 대한 처벌 사례가 없다. 노동부가 적발을 하더라도 시정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시하며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고 한다. 몰아서 병원에 가고,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전했다.
탁기홍 질병판정위원회 위원(직업환경의)은 정부안대로 노동 시간이 늘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사례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로로 인한 질환과 사망 대부분은 심근경색, 뇌출혈 등 뇌심혈관 질환으로 현재 뇌실혈관 질환의 업무상 질병 판정 기준은 발병 전 12시간 동안 업무 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 초과 혹은 1주 평균 52시간 초과하고 업무 부담 가중 요인이 있는 경우다.
탁 위원은 “정부가 발표한 1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 개편안이 통과된다면 현재 인정 기준에서 과로 조건에 놓여 질 노동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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