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현성 씨(가명, 28) 자취방에는 컵라면이 박스채 쌓여 있다. 이 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근처 부모님 댁에 가는 것 말고는 외출하지 않는다”며 “주로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고, 잠을 잔다. 끼니는 라면이나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2년여 전부터 무기력증에 빠져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당장은 그다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친구랑 한 번씩 봤는데 자연스럽게 끊겼어요. 형이 공무원 학원에 가라고 돈을 줬는데, (나가는 게) 무서워서 안 갔어요”
대구, 지난해 조례 제정됐지만 예산 배정은 아직
정부 조사 기준 은둔형 청년 1만여 명 추정
이 씨와 같은 경우를 정부는 ‘은둔형 청년’으로 정의한다. 국무조정실이 지난달 6일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둔형 청년(임신‧출산‧장애를 제외)의 비중은 2.4%다. 이 통계는 만 19~34세 청년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국가 승인 조사로, ‘보통은 집에 있다’고 답한 경우를 편의상 ‘은둔형 청년’으로 분류했다. 은둔 이유 ‘취업 어려움’ 35%, ‘대인관계 어려움’ 10%, ‘학업 중단’ 7.9% 순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은둔형 청년’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정신병리적‧심리적 문제로 진단하고 개인적 문제로만 접근해오다가, 최근에서야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발표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4월 중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종합지원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서울시는 서울 거주 만 19~39세 청년 중 약 4.5%가 고립 은둔 상태라고 파악했다. 정부가 파악한 2.4%보다 높은 비율이다.
서울시는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청년 중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유지된 경우를 ‘고립청년’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한 지 최소 6개월이 된 경우는 ‘은둔청년’으로 간주했다.
반면 대구시는 사실상 은둔형 청년 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 실태조사 결과에 기반해 추정하면 대구의 은둔형 청년은 만 19~34세 청년 43만 1,938명(2023년 3월)의 2.4%인 1만 366명이다.
지난해 10월 ‘대구광역시 사회적 고립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지만, 아직 실태조사 계획조차 없다. 조례에 따르면 대구시는 사회적 고립청년 지원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조례를 발의한 김태우 대구시의원(국민의힘, 수성구5)은 “이제 막 조례가 만들어진 단계로, 추경에서 관련 예산이 배정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관 “기존 서비스에서 다루긴 쉽지 않은 문제”
은둔형 청년이 사회문제라는 건 일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느끼고 있다. 복지관, 청년센터, 의회 등 관련 기관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정확한 타겟팅을 통한 지원 정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 남구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복지관은 주로 중장년층 이상을, 가족센터는 다문화가정이나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니, 청년층까지 손길이 닿긴 어렵다. 간혹 찾아오거나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이 있지만 복지관에서 은둔형 청년을 찾아 나서진 않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청년 중 혼자 살거나, 바깥 생활을 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는 게 느껴져서 기존 사업 대상 연령층을 낮춰 이들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해 운영되는 대구시 청년센터에도 ‘은둔형 외톨이’만을 위한 사업은 없다. 청년의 사회 진입을 돕는 프로그램, 사회진입활동 지원금 3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 등이 있지만, 대부분 직접 센터로 찾아와 신청해야 해서 은둔형 청년에게는 문턱이 높다.
노동욱 대구청년센터 활동지원팀장은 “타 지자체 상황을 살피면서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청년센터에서 은둔 청년 문제까지 들여다보기엔 여력이 안 된다. 무엇보다 은둔형 청년의 경우 센터로 직접 찾아오기가 쉽지 않으니, 직접 발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들만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닌 경우라면 만남부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취업과 관계에 공백이 생긴 청년이 늘어났지만, 기존 사업으론 고립의 강도가 높은 청년까지 포함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손혜진 대구청년센터 상담사는 “취업이 어려워 집에만 있는 청년들이 코로나19를 거치며 늘어난 게 느껴진다”며 “청년수당을 받으려면 우선 센터에 나와서 상담을 받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니, 유인이 된다. 하지만 그다음이 어려운 청년들이 있다. 무력감이 깔려 있는 게 느껴지는 상담 사례가 많다. 이들을 위해 별도로 긴 호흡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 해결 위해선 ‘지속적인 사례 관리 필수’
지자체에 관련 문제를 전담하는 기관, 정확한 타겟팅을 통해 지원하는 정책이 없다 보니 은둔형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족, 이웃 등 주변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김현지(가명, 24)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성주의 세무사무소에 취업했다가 그만두고서부터 집에서 생활했다. 비만 문제가 심각한 데다, 지난해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
김 씨를 도운 건 마을 통장이다. 김 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마트를 운영하기도 하는 통장은 현지 씨 할머니 건강이 악화된 걸 알고 동행정복지센터와 연결했고, 대구시 복지 프로그램과 연계가 이뤄졌다. 현지 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의료원에서 비만 치료를 받았다.
현지 씨는 “대구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운동을 다니고 식단 조절을 하면서 살을 빼고 있다. 낮에는 세무회계 자격증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관 직원이 가끔 방문해 현지 씨의 상태를 살피지만, 여전히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운동 외의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일과를 꾸리고 있어, 다시 은둔의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은둔형 청년 개개인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꾸준한 사례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은둔형 청년’ 문제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 온 광주는 2019년 조례 제정, 2020년 실태조사 시작, 2021년 기본계획 수립 후 지난해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를 개소했다.
백희정 광주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우리가 그동안 만난 청년은 은둔‧고립 상태라기보단 니트 상태(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가 없는 상태)에 가깝다. 그보다 은둔의 강도가 높은 청년은 집에서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니트 상태인 이들은 기관에서 취업, 진로 탐색에 대한 사업을 제공하면 되지만, 은둔형 청년은 장기간 사례 관리가 필수”라고 말했다.
백 사무국장은 “광주는 올해 2차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은 광주 상황에 맞춰서 아파트 고지서를 이용하는 등 1차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진행 중”이라며 “지자체마다 정의와 실태조사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는 넓어지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