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메르스 이후 경기도와 코로나 이후 대구, ‘재난으로부터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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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초동 대응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향후 어떠한 종류의 전염병이 발병하더라도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능숙하게 초기 진압을 해야 합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홍역을 치른 경기도가 마련한 백서의 한 단락이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는 ‘미래 위기의 지침서 됐으면’이란 백서 머리글을 통해 메르스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행정당국의 미흡한 초기 대응을 꼽았고, 컨트롤타워 부재를 그 원인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축적된 경험’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메르스의 교훈을 지침서 삼아 경기도는 보건복지국 아래 있던 보건의료 부서를 독립시켰다. 보건정책과, 건강증진과, 식품안전과 등 3과 13팀 56명(2016년 2월 기준)에 그쳤던 보건의료 부서는 감염병관리과, 정신건강과를 더해 보건건강국으로 재탄생했다. 5과 22팀 103명(2020년 6월 기준)으로 인원만 83% 더 늘었다. 물론 인원만 느는데 그치지 않았다. 3과 1,915억 원 수준이던 예산도 5,042억 원으로 163% 더 늘었다.

경기도가 이처럼 부서와 인력을 늘린 이유는 백서에도 잘 드러난다. 만성질환자, 노령인구가 늘고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다약제 내성균 증가 등으로 병원 의료 감염 발생도 급증했다. 그런데 감염을 관리할 인력은 부족하고 실제적인 업무도 미흡한 실정이고, 세계보건기구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정의하기까지 했다는 게 그 이유다. 지자체 감염병 대응 조직 강화가 필수적이고 그 첫 번째가 감염병 전담부서를 만든 것으로 귀결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경기도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전까지 외부 기관에 위탁 운영했던 감염병관리지원단을 보건건강국 아래로 흡수한 것이다. 2020년 10월 경기도는 조례를 개정해 지원단 흡수를 확정했고, 내친김에 공공의료과도 신설했다. 보건건강국은 공공의료과와 지원단을 포함해 6과 1단 27팀으로 확대 됐고 인원도 126명(2023년 2월 기준)으로 늘었다.

조직과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 감염병 대응을 완전히 해낼 순 없지만, 조직과 인력 없이는 감염병 대응을 완전히 해낼 수 없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일상회복이 되었다는 미명아래 감염병관리과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보건의료체계를 정상화’한다고 설명했다. 탄핵된 대통령이 자주 구사하던 ‘비정상의 정상화’를 떠올리게 하는 레토릭은 ‘살려야 한다’는 표어 아래 진지했던 그 대통령의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살려야 한다’던 ‘짤’은 정부의 메르스 대응 실패의 대표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메르스 때 청와대에서 메르스 총괄을 했고, 행안부로 내려와 코로나를 총괄했다. 메르스, 코로나 다 온몸으로 경험했던 사람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재난은 재난으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다” 대구시의 감염병관리과 폐지 조직 개편을 설명하던 황순조 기획조정실장이 감염병관리과 페지에 대한 우려를 두고 한 답이다. 궁금하다. 재난으로부터 배운 것이 이것인지.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