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소 힘겨루기’로 이름 바꾼다고 ‘소싸움’이 아닌가요?”

'동물학대' 비판 의식한 대회장
'무형문화재 기원' 깃발 나부끼고, 
부군수는 개회사 통해 "민족 기상 대변"
녹색당 대구시당, "전통 아닌 동물학대" 피켓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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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목재 팬스로 막은 모래판 위에 누렇고 큰 소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댔다. ‘광해’와 ‘일구’라고 불리는 두 소는 모래판 한편에서 밀고, 밀리는 힘 싸움을 벌였다.  두 소가 뒷다리에 힘을 주고 상대를 밀어붙이려 할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해설자는 “광해는 ‘뿔 끌기’, ‘목감기’, ‘되치기’가 주특기랍니다. 일구가 근접전을 해야 할 겁니다”라고 훈수를 뒀고, 두 소의 코치는 연신 큰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흙먼지 사이로 기합과 박수 소리가 교차하던 찰나, 광해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수 분 만에 일구의 승리가 결정됐다.

지난 1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위천리에서 ‘제21회 달성 전국 민속 소 힘겨루기 대회’ 개회식과 16강전이 열렸다. 지난달 30일부터 달성군이 주최하고 달성소힘겨루기협회가 주관한 대회는 3일까지 닷새 동안 예정되어 있다. 2019년까지 ‘소싸움’으로 치러지던 대회는 변화된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름을 바꿔 ‘소 힘겨루기’로 했지만, ‘동물학대를 하는 소싸움’이란 지적은 여전하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맞은 나들이객이 대회장을 물 밀듯 찾아들었다. 그 사이로 녹색 옷을 입을 녹색당 대구시당 관계자 몇이 대회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었다. 느슨한 긴장감 속에 주최 측은 ‘동물학대가 아니라 전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관람객들은 변화된 시대의 잣대를 두고 뚜렷한 답을 찾진 않았다.

▲ 1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위천리에서 ‘제21회 달성 전국민속 소 힘겨루기대회’가 열렸다. 달성군 주최하고, 달성소힘겨루기협회 주관으로 지난 30일부터 오는 3일까지 5일간 열린다. 이날은 16강전과 함께 개회식이 진행됐다. 싸움소 ‘광해’와 ‘일구’ 경기에서 광해가 물러나고 있다.

간간히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관람객도 보였지만, 대회장 관람객의 많은 비중을 60대 이상 노년층이 채웠다. 경기장으로 향하던 노부부는 “아직 소싸움 경기가 남았나? 오늘 끝 인줄 알았다”, “아직 이틀 더 남았다고 한다. 오늘이 제일 재밌다”고 말을 주고받았다. 주말인 만큼 대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원형 모래판을 세 방면에서 각각 450석 규모 간이의자가 마련됐는데, 곳곳에 빈곳을 감안해도 대회 관람객은 1,000명 안팎으로 추정됐다.

변화 요구 받는 소싸움 대회
달성군, 작년부터 ‘힘겨루기’로 이름 바꿔
‘동물학대’ 비판 의식한 대회장
‘무형문화재 기원’ 깃발 나부끼고, 
부군수는 개회사 통해 “민족 기상 대변”

대회장 곳곳에선 ‘동물학대’ 비판을 의식한 장면이 목격됐다. 소싸움을 옹호하는 측이 우리 민족의 유서 깊은 전통이라고 강조하듯, 경기장 한켠에는 ‘무형문화재 기원’이라 쓴 푸른 깃발이 나부꼈다. 광해와 일구의 ‘힘겨루기’를 해설하던 해설자는 “전통 민속 ‘소 힘겨루기’ 대회는 동물보호법 8조에 동물학대가 아니라는 단서조항이 붙어있다”며 “민속경기이자 무형문화재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 동물학대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개회사에 나선 김창엽 달성군 부군수도 “농경 생활을 기반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은 소와 관련해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고, 대표적인 것이 소 힘겨루기”라며 “평소엔 순박하지만 모래판 위에선 물러설 줄 모르는 강인함과 우직함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관람객은 ‘동물학대’ 지적을 두고 뚜렷한 답을 내리진 않았다. 옥포읍에 사는 60대 부부 정갑영, 김미례 씨는 주말 나들이 삼아 대회장을 찾았다. 대회장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사는 이들 부부는 “산책 겸 나왔다”며 “경기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정 씨는 “(동물학대 논란으로) 대회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 전통문화기도 하고, 돈을 걸고 개싸움을 거는 것보다는 강제성이 덜한 것 같아서 나쁘게만 보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5, 6살 두 아이를 데리고 대회장으로 들어선 김수경(41, 옥포읍) 씨는 “아이들이 곳곳에 걸린 현수막을 보곤 가자고 해서 오게 됐다. 평소에 소를 가까이서 볼 일도 없지 않나”라면서도 “소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소가 아프겠다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학대 논란은 들었다. 예전엔 전통이라고 하니까 미처 동물학대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시대에 따라 인식이 달라서)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고 덧붙였다.

▲ 1일 오후 ‘제21회 달성 전국민속 소 힘겨루기대회’에서 소싸움 경기가 열리는 모습. 코치들은 싸움소들에게 큰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녹색당 대구시당, “전통 아닌 동물학대” 피켓팅

개회식이 진행되던 시각, 대회장 입구에서 녹색당 대구시당 관계자들은 피켓팅을 진행했다. 종이박스 뒷면을 재활용한 피켓에는 ‘소싸움, 전통이 아니라 동물학대’, ‘초식동물 식고문 그만’이라고 적었다.

장정희 녹색당 대구시당 사무처장은 “오랫동안 해왔다고 괜찮은 게 아니다. 대회의 문제 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며 “싸움소를 육성하는 과정에서 초식동물에게 부적합한 음식을 먹이고, 공격성 훈련을 한다. 싸움을 말려도 모자랄 판에 싸움을 조장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하게 하는 건 분명한 학대 행위”라고 설명했다.

박소영 동물권위원장도 “대회 이름을 작년부터 ‘소 힘겨루기’라고 바꿨는데, 그러면 싸움이 아닌 것이 되냐”면서 “사람들이 여길 찾는 이유도 건강한 축제 문화가 부족해서다. 지자체에서 세금을 가지고 이런 대회가 아니라 교육적이고 공적 의미가 있는 축제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날 개막식 시간에 맞춰 녹색당 대구시당 관계자들은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피켓팅을 진행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