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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는 서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대구에 처음 방문하게 된 손님들은 서울과 동일한 시내 지명 때문에 혼란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종로’라는 명칭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혹자는 그 동일한 작명에 궁금증을 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서울의 지명은 보신각의 종이 있던 도로이기에 ‘종로’가 된 것인데 대구의 ‘종로’ 역시 엇비슷한 기원을 갖기 때문이다. 얼핏 기이하게 보이는 이런 동명의 지명은 실은 조선시대 이후 전근대 시절로선 보기 드문 중앙집권 행정을 이룩한 한국사의 흔적이다. 행정중심지의 성곽 사대문 안 지명 표기를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이러한 착시가 발생한 셈이다.
명칭의 유래와 기원이 동일하기 때문인지 같은 이름 가진 서울과 종로의 과거 위상과 현재적 위치도 비슷하게 흘러가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공통으로 그 기원이 되었던 원도심 지역은 쇠락하고 신도시가 ‘핫’하게 떠오른다. 지자체마다 도심 공동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역시 동일하게 진행된다. 대도시 행정당국은 열이면 열 동일하게 해당지역 재개발을 통한 지역 부흥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잡음과 이산은 필연적이라 어쩔 수 없는 논란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동네 발전을 위해 개발구역에 편입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이들 한쪽 구석에선 아직 발전의 수혜에서 제외된 한산한 변두리가 남아 있다. 개발에 편입되고자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에겐 얼른 갈아엎어야 할 대상에 불과하지만 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이런 공간은 누군가에겐 보존의 가치로 다가간다.
대구광역시 원도심 일대에는 그런 구석 자투리들이 여전히 곳곳에 흩어진 상태로 존재한다. 동성로-반월당 축선이 인접구역으로 점점 가랑비에 옷 젖듯이 확장되어가지만 확연히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듯 느껴지는 동네가 북성로-향촌동 일대 축선이다. 개중 향촌동에는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수제화 골목이 아주 조그맣게 잔존해 있다. <라 샹스>는 지역 방송국이나 보도매체에서 종종 소재로 다루는 이 골목에 주목한 또 하나의 작업이다.
향촌동이라는 공간은 지역 내 방송과 영화 제작을 고민하는 이들에겐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원천이다. 하지만 정작 향촌동에 관한 ‘레퍼런스’라 할 콘텐츠를 들자면 뾰족하게 떠오르는 게 잘 없기도 하다. 이것저것 나온 건 제법 있는데 뚜렷하게 족적을 각인시킨 한방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 이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해보려는 일관된 노력이나 향토 근현대사 정리를 위한 입장과 관점의 미흡함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늘 아쉬운 대목이다.
◆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범적인 기록 작업
<라 샹스>는 그런 불편함 가운데 간만에 작은 빛을 안겨주는 선물과도 같은 작업이다. 영화는 향촌동 수제화 골목의 터줏대감 중 하나인 ‘라 샹스’ 이교학 장인의 흥망성쇠 일대기를 충실히 기록해나간다. 물론 지속적인 다큐멘터리 기록 작업을 해오지 않았던 개인이 북 치고 장구 치듯 홀로 작업해 완성한 30분짜리 단편영상이 이 동네의 장구한 흥망성쇠를 온전히 다 압축하기를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욕심일 테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대상을 온전히 이해해가며 정리하려 치열하게 노력한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더해 도시재생이라는 논쟁적 활동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참여해온 감독의 이력이 ‘영화적’ 연출과는 다른 척도로 작품의 ‘효용’을 살려낸다. 즉 해당 소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객관적으로 유용하게 활용 가능하도록 딱 맞춤형으로 적정한 수준의 편집과 기획이 이뤄진 작업이다.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싶다.
영화의 구성은 투박하거나 단조롭게 보일 정도로 인터뷰 중심 기록영상의 기본적인 형태를 취한다. 라 샹스를 꾸려가는 이교학 장인의 작업장 풍경이 배경으로 깔린 가운데 장인의 구술로 본인의 일생과 수제화 산업의 흥망성쇠가 풀어져 나온다. 그게 사실상 이 영화의 전부다. (다른 편집 버전에는 2-3분 정도 동료 수제화 기술자들과 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 실려 있기는 하다) 일단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제법 흥미로운 편이기에 인물 중심 다큐멘터리의 맨 첫 관문이라 할 매력적인 주인공의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장인의 개인사를 줄줄이 시간순으로 설명하는 방식이지만 주인공이 자신이 겪은 시대 구분이나 구체적인 당시 물가를 연동해가며 해설해주는 행운 덕분에 관객이 화면에 집중하기만 하면 주인공의 ‘썰’을 이해하는데엔 별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무엇보다 구술 기록 작업에서 늘 수반되는 애로가 별로 없다. 소외되어온 개인의 인생사를 풀다 보니 적지 않게 회고적 향수와, 막연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게 마련인 구술사 작업자에겐 이런 복이 없다. 그 덕분에 <라 샹스>는 특정 분야 장인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을 뛰어넘어 기존에 등장했던 지역 내 동종 소재 작업들과는 차별화된 결실을 선보인다.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종종 접할 수 있는 일본이나 서양의 장인들에 대한 영상물에서 우리가 느끼는 경외감과 함께 이들이 사라져가는 세태를 지역적으로 풀어내는 허들을 통과한 셈이다.
감독이 해당 소재를 다루기로 결정한 후 고르고 골라 주제 전달을 위한 최적화된 인터뷰 대상으로 섭외했을 이교학 장인이 들려주는 수제화의 전성기와 쇠미해진 현실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수제화 골목의 자그마한 흥망성쇠를 통해 ‘압축근대’를 겪은 한국 사회 급속한 변화상의 특정 단면을 구현하는데 은근슬쩍 도달한다. 그가 60년대에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생계를 위해 당시 각광을 받던 전문직 기술자의 길에 접어든 출발 회고는 어려웠던 시절의 부모세대 삶에 닿는다. 장인이 되어 일찍 맞이한 전성기와 이를 실감나게 해주는 (당대엔 파격적이던) 고용조건 및 수제화의 주 사용처까지 생생히 해설된다. 기성세대의 ‘벨 에포크’의 추억담 전형에 가깝다. 하지만 대개 이런 인터뷰 상대들이 화려했던 과거에 푹 잠겨 과장된 허풍이나 자기연민이 과잉으로 치닫기 십상인데 장인은 절제된 톤으로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기록자에겐 정말 선물 같은 인터뷰 상대다.
◆ 수제화 전성시대와 몰락에 관한 증언
아직 수출주도 산업화가 온전하게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풍요로운 수혜를 베풀기 전, 장인의 수작업에 의존하던 구두 제작과 판매는 세계사 시간에 배운 중세의 장인 길드 형태와 닮은꼴이었다. 그렇게 지역에서 소규모 산업이 전수 및 유지되던 흔적을 풀어내는 주인공의 인터뷰는 생소한 형태의 근현대사 보조교재처럼 다가온다. 인터뷰 증언 와중에 마치 그린스크린으로 배경이 입혀진 것처럼 50년 전이나 현재나 시간의 변화를 초월한 것 같은 수제화 제작과정이 펼쳐진다. 대공장 생산라인의 기성품 대량생산이 아니라 마치 무협지의 무공 전수 과정 같은 느낌이다. 서양식 구두가 최초로 이 땅에 도입된 구한말부터 계승되어온 장인정신 충만한 단일 라인 공정이 A부터 Z까지 전 과정 몽땅 고스란히 재현된다. 신발 한 켤레가 단지 가격이 얼마짜리고 누가 신더라! 하는 식상함에 그치지 않고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 관객은 전 과정을 온전히 목격할 수 있다.
대기업의 공산품에 익숙해진 현재의 관객에게는 이 간단한 묘사조차 무척 생소한 체험일 테다. 이 너무나 상식적인 풍경조차 어느덧 우리에겐 보기 드물 만큼 특별해졌음을 깨닫는 통찰은 씁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렇게 1970년대 들어 약간의 경제적 삶의 조건이 향상되면서 수제화 수요는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 시절엔 장인이 1년 일하면 집 1채 장만 어렵지 않을 만큼 거뜬히 벌 수 있었다는 증언과 함께 수제화 기술자의 전성시대는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관객은 각자의 체험을 통해 곧 수제화 전성시대의 몰락이 다가올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이제 내수시장에 눈을 돌릴 자본 축적과 여유가 생긴 대기업은 금강제화나 엘칸토 같은 귀에 익숙한 브랜드가 등장해 표준화된 대량생산에 나선다. 압도적인 물량과 저렴할 수밖에 없는 가격대 책정에 장인의 시대는 종막을 고한다. 그리고 지난한 생존투쟁의 시간이 도래한다. 장인은 서울로 진출해 대기업과 협력을 모색하거나 좀 더 규모의 경제를 갖추려 공장을 운영해보기도 한다.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재기를 모색하던 중 중국시장 진출에 도전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전성기가 지난 상황에서 1990년대와 21세기를 그는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헤쳐 나간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그가 10대 시절 기술을 배우던 ‘고향’으로 귀환한다. 그렇게 다시 정착한 향촌동의 시간도 어느새 이십 년 가까워졌다. 동네 할아버지의 추억담 같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 대구라는 도시의 확장과 변천, 제조업의 흥망사로 변환되어 귓가에 박힌다. 분야는 달라도 비슷한 일화는 점점이 흩어져 있을 테다.
◆ 장인에 대한 경탄을 넘어 어떤 ‘동시성’에 다가서는 순간
그 장대한 이야기 와중에 손을 놀리지 않던 장인은 근사한 구두 한 벌을 완성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무리 작업들이 남아 있다. 공정을 끝내기 위해 장인은 뒤처리에 특화된 수제화 골목 내 전문 업체들을 순회한다. 역시 특정 공정에서 수십 년 훌쩍 넘는 경력의 전문가들일 게 분명하다. 슬슬 걸어서 왕래할 수 있는, 바로 이웃에 존재하는 기술협력 기반과 물리적 생산 공간의 집중은 온라인 주문 배송 시대에 희미해져가는 풍경이다.
이 순간을 목격하게 되면 탱크나 비행기도 해당구역 안에서 완성 가능하다는 서울 을지로 청계천 공구골목이 떠오를 이들도 나올 테다. 대구 향촌동 수제화골목은 규모나 분야는 다르지만 재개발 관련 논쟁이 치열한 수도권의 공간들과 아주 유사한 형태와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대기업과 OEM 방식, 온라인 생산 및 유통이 온전히 대체하기 힘든 영역을 확인하는 찰나는 누군가에겐 작은 경이로 다가올 테다. 그리고 오랜 세월 축적된 공간의 파급력이 주상복합 건설로 사라지고 나면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상실감 또한 공유될 것이다.
그런 감정을 꽉꽉 눌러 담은 로컬 기록 다큐멘터리의 가치와 의의에 <라 샹스>는 모범적인 롤 모델이 되어주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작업이 보다 더 체계적인 기획과 꾸준한 기록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본 작업은 지역 미디어센터에서 유일하게 매년 이뤄지는 다큐멘터리 워크숍 수료 작업인데 교육주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성작품 숫자나 이후 지속적으로 다큐멘터리 기록자가 확대되지 못하는 중이다. 개별 단위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영상문화에 친숙한 청년세대가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터전으로 지역을 사고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나은 조건을 발견하면 떠날 것을 전제한 동네에서 거주하는 시민은 굳이 서로 협력하거나 기록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울한 그림자는 (저출산 문제와 동일하게) 주체의 게으름을 탓해선 해결될 수 없다. 한국사회가 갈수록 수도권에만 모든 자원이 과밀 집중되고, 청년세대가 미래에 희망과 비전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지역분권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 이전에 지역사회에 시민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구경북이 과연 상상되는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안정된 삶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전제되어야 도시 공동체도, 집단지성에 기반을 둔 시민의 상호협력도 가능해질 것이다.
<작품정보>
라샹스 La Chance
2021|한국|다큐멘터리|31분
감독/촬영/편집 정용훈
출연 이교학(라샹스 수제화)
2022 오오극장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