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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근 15년째 운영되어온 정책토론청구 제도를 유명무실화하는 개정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대구시가 개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련한 입법예고안을 보면 정책토론청구 제도가 ‘특정 집단의 주장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점을 개정 사유로 담았다. 정책토론제도는 홍준표 시장이 시정특별고문으로 위촉한 김범일 전 시장 시절 시민 정책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됐다.
20일 대구시는 ‘대구시 정책토론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대구시는 ▲정책토론 청구인 수 요건 전국 최저 수준 ▲군위군 편입 등을 개정 사유로 내세우면서 토론회 청구인 수를 기존 300명의 5배인 1,500명으로 늘렸다.
대구시는 토론회 청구인 수가 전국 최저 수준이라는 점을 개정의 사유로 삼았지만, 광역시·도 단위에서 대구시와 유사한 제도를 둔 9곳과 비교하면 대구시에 한정된 상황도 아니다. 광주와 충북은 시(도)민 참여 기본조례에서 정책토론청구 제도를 규율하고 있는데 두 곳 모두 300명 이상 연서로 청구가 가능하다.
대구시보다 인원이 많은 곳은 서울, 경기, 전북, 대전, 전남, 세종, 제주 등으로 확인된다. 대전과 전남, 세종, 제주(정책 청구)는 500명이고, 전북 1,000명, 서울, 경기는 5,000명이다. 대구시가 1,500명으로 정하면 전국 서울, 경기 다음으로 큰 기준을 담게 된다. 특히 대구시 주민의 감사 청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시민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시민 연서 기준도 300명으로, 감사 청구보다 토론 청구 기준이 더 빡빡해진다.
대구시와 다른 지자체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구시를 제외한 다른 시·도는 시(도)민 참여 기본조례에서 토론회 등을 청구할 수 있는 기준을 담고 있어서 별도로 청구 대상을 규율하곤 있지 않다. 하지만 대구시는 청구대상 제외 사례도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어, 청구 대상이 제한된다.
이번 조례 개정에선 제외 사유를 추가해서 토론회 청구의 허들도 높였다. 예고를 보면 기존에는 토론청구일 6개월 이내에 이 조례에 따라 토론을 개최한 적 있는 정책을 청구할 수 없었지만, 바뀌는 조례는 조례와 상관없이 과거 1년 이내에 토론회, 공청회, 설명회를 실시한 사항은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해당 사무처리가 2년 전에 종료된 정책도 제외한다는 조항은 없던 것이 더해졌다.
대구시가 이처럼 강화된 기준으로 정책토론회를 유명무실화 하려는 것은 홍준표 시장 취임 후 대구시정 내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각종 위원회를 폐지하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홍 시장은 ‘책임 행정’을 내세우며 각종 위원회를 폐지하고 시민 참여 경로를 위축시켰는데, <뉴스민> 취재에 따르면 대구시는 정책토론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개정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15일 대구시가 공보 게재 의뢰를 위해 마련한 입법예고안에는 개정 이유로 “특정집단의 주장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행정력이 낭비되고 시민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하지만 17일경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20일 입법예고까지 이어졌다.
김진혁 대구시 정책기획관은 “연서명 300명은 악용될 소지가 있다. (특정집단 주장이나 행정력 낭비)는 개정의 여러 논거 중 하나”라며 “전국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인구 대비 비율을 산정해서 연서명 인원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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