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학교급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건강 문제도 조금씩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초기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당장 급한 부상이 문제시됐지만, 2018년 한 급식노동자의 죽음 이후 관심은 몸 안으로도 향했다. 급식실에서 10여 년 근무한 후 폐암으로 숨진 그 노동자는 2021년 폐암 발병이 급식실 노동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는 공식 인정을 받았다. 급식노동자의 건강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걸까. <뉴스민>은 연속 기획으로 위험한 급식실의 민낯을 살펴본다.
[급식실의 민낯] ① 근골격계 질환부터 폐암까지, 위험한 급식실
학교급식 조리실에는 대부분 중장년 여성이 일한다. 2021년 4월 기준 전국 초·중·고 및 특수학교 1만 1,903개가 급식을 실시하고 있고, 급식 학생수는 약 530만 명이다. 영양사와 조리사, 조리실무사가 함께 일하는데, 조리실무사는 조리사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시간 내에 음식을 조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까지 한다. 무기계약직인 조리실무사는 전국에 약 4만 9,000여 명 있다.
이들은 무시로 넘어지거나, 베이고, 데는 부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손목 보호대는 필수품이고, 방학마다 정형외과에 가는 것도 필수다. 의사들도 몸 상태를 보면 으레 ‘급식실에서 일하느냐’고 묻는다. 이들의 노동환경과 건강권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그 무렵 학교급식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처음 이들의 건강이 주목받을 땐 근골격계 질환이 우선됐다. 2004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초등학교 급식 조리노동자의 근골격계증상 위험요인에 대한 다수준분석 연구’를 통해 노동자 1인당 급식인원수가 근골격계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후에도 급식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주로 여기에 집중되어 왔다. 2012년 노동환경연구소 연구에선 조사 인원 601명 중 576명(95.8%)이 근골격계 증상호소자로 확인됐고, 통증에 대한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도 60%에 달하는 걸로 확인됐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졌고,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예외 대상이던 급식실은 2017년부터 법 적용 대상이 됐다.
그 무렵 급식실에선 또 다른 위험 요소가 확인됐다. 급식실에서 오래 일하던 이들 중 폐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하나, 둘 확인되기 시작한 거다. 2018년엔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약 10년 일하던 노동자가 폐암으로 숨졌다. 숨진 노동자 유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2021년 2월 산업재해가 인정되면서 급식노동자의 폐암 문제 공론화에 탄력이 붙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국의 학교 급식노동자를 대상으로 폐CT 검진을 실시했고, 국회에선 토론회도 열렸다. 지난 14일 서울·경기·충북교육청을 제외한 14개 시·도교육청 급식노동자 2만 4,065명 검진 중간결과에 따르면 폐암 확진자는 31명이고, 이들을 포함한 의심자는 139명(0.6%)이다. 양성결절·경계성결정 등 이상 소견을 보인 노동자도 6,773명(28.2%)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학교 급식종사자 산업재해 대책 토론회’에서 조리실무사인 고지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노동안전위원장은 “입사 당시 근골격계 질환만 조심하면 건강하게 급식실에서 근무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폐암도 산업 재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급식실의 근무 환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그 환경에 길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소독이나 청소를 위해 독한 약품을 쓰면 반복적인 작업은 덜 할 수 있어서 근골질환 예방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며 “학교급식실 적정인원 충원 없이는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예방은 불가능하다. 폐암 예방은 물론이고 안전한 급식도 담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이번 폐CT 전수조사 결과를 두고, 폐암 확진자 및 경계선결절 등 추적·추가 검사가 필요한 종사자에 대해 후속 조치를 지원하고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등 조리환경 개선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환기설비 개선은 근본적인 해법이지만, 다년간 적지 않은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므로 중단기 대책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미경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수석부본부장도 “식단 개선이나 오븐 등의 확충은 현장에 실제 적용하기 위한 구체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김 부본부장은 “교육부가 올해 3개년 계획을 수립한 점은 진전이 보이는 대목이지만 교육청의 환기설비 개선 예산 중 상당수는 조리시설 전반을 교체하는 급식실 현대화사업 등 기존 사업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채 편성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1인당 식수 인원 개선 대책 수립 ▲안정적인 예산확보 ▲지하·반지하에 위치한 급식실 즉각 조치 ▲후드 풍속 기준과 식단 기준의 학교급식 기본방향 명시 및 정기점검 의무화 ▲조리흄 노출 작업의 1인당 최대 작업시간 기준 명시 및 폐 CT 전수검사 정례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상 특수건강진단대상 유해인자에 조리흄 포함 등을 요구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