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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민>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일 국제노동기구(ILO)에게 받은 서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부분 공개 처분을 내린 것을 취소하라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1월 화물연대 파업 도중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그러자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자영노동자들의 결사자유를 보장하는 ILO 협약을 위반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화물연대와 국제운수노련(ITF)은 그해 11월 28일 ILO에 개입을 요청했다. ILO는 12월 2일 한국 정부에 ‘Intervention(개입)’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개입’ 문서 두고 ‘단순 의견조회’라고 주장해놓고 전문은 비공개
화물연대와 국제운수노련은 이를‘개입 절차 착수’라고 해석한 반면, 11월 29일과 12월 8일에 걸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윤석열 정부는 ‘단순 의견조회(전달)’라고 주장했다. <뉴스민>이 고용노동부에 서한과 부속 서류 전문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노동부는 대외비 문서라고 규정하며 비공개했다. 대신 ‘부분 공개’ 차원에서 이 서한의 주요내용이라며 반 쪽 분량의 요약본을 전달해왔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의 근거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2호의 내용을 제시했다. ILO 서한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훈령인 ‘고용노동부 정보공개에 관한 규정’도 작용한 보인다. 이 규정에 명시된 ‘비공개 대상정보세부기준’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 국제노동기구 등 국제기구와 관련된 자료로서 공개될 경우 외교관계 및 국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이 비공개 대상정보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일체의 사항이나 국제기구와 관련된 일체의 자료가 비공개 대상 정보는 아니다. ‘공개될 경우 국가의 이익과 외교관계를 중대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어야 해당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 ILO 서한은 협상이나 교섭에 관한 정보가 아니다. 이미 체결된 협약에 대한 ILO의 입장을 알아볼 수 있는 서류일 뿐이다. 국제기구나 그 가입국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시민 기본권에 관한 서류가 비공개된다면 국제기구의 존재 의의는?
이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향후 밟을 수 있는 ILO 절차에서 더 불리해지는 것도 아니다. 사법 분쟁이 있을 경우는 상대가 미리 한국 정부의 논리나 법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비공개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ILO 서한은 한국 정부의 입장이나 한국 정부가 향후 절차에서 이행할 내용을 담은 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서한을 공개하는 것이 국민적 토론에 도움이 되고 향후 있을 수 있는 ILO 조치에 대응하기에 더 유리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상대로 ‘보조금과 무관한 조합 운영 회계 내역까지 제출하라’고 억지를 쓰는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자신이 국제기구에게 받은 서한은 비공개하고 있는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뉴스민>은 지난 2월 23일 행정심판 청구서에서 ILO 서한을 두고 “국가의 기밀이나 기업 경영상의 비밀과는 무관하며 전적으로 세계시민의 기본권에 관련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기본권에 관한 국제기구의 문서가 단지 ‘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비공개된다면, 국제기구의 존재 의의와 효력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