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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제작한 영화 중 가장 낯설다. 마블 세계관 속 지구가 배경이고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는 것은 같지만, 우주 신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생소하다. 배우들이 다양한 인종‧국적‧성별‧세대로 구성되고, 화려한 액션과 서사, 속도감과 위트로 무장한 <어벤져스 시리즈>와 다르게 심오한 철학을 다룬 것도 큰 차이가 난다.
우주의 초월적 존재 셀레스트리얼은 지구에서 인류를 도륙하는 괴물 데비언츠에 맞서기 위해 기원전 5,000년경에 이터널스 10명을 지구에 파견한다. 이들은 데비언츠를 섬멸하며 7,000년을 살아간다. 인간과 어울려 살면서 기술을 전수해주거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섞여 살던 이터널스는 고향 행성 올림피아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모두 물리친 것으로 생각한 데비언츠는 다시 나타나 인류가 아닌 이터널스를 위협한다.
영화 속 이터널스는 마치 복제인간 또는 인조인간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올림피아 행성을 고향으로 알지만 사실은 셀레스트리얼이 목적을 위해 만든 존재다. 셀레스트리얼은 한 행성을 먹어치우며 탄생한다. 셀레스트리얼의 탄생을 돕기 위해 만든 데비언츠가 진화를 겪으며 통제를 벗어나자, 데비언츠와 다르게 진화를 겪지 않는 이터널스를 만들어 데비언츠에 맞서게 한 것이다. 셀레스트리얼이 탄생하면 그 행성이 파괴되며, 이터널스도 제거된다. 소임을 다한 이터널스는 기억이 삭제된 채 다시 태어나 다른 행성에 파견된다.
이터널스는 우주의 창조주 아리솀의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7,000년 동안 지구인과 살아오면서 심정의 변화를 겪고 갈등한다. 내분하는 이유는 철학적이다. 산 것은 죽고 죽은 것은 사는 만물의 순환원리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셀레스트리얼의 탄생으로 멸망할 인류를 연민해 아리솀에 대적할 것인가. 이성의 원칙과 감정의 흐름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불멸의 삶을 받아들일 것인가, 필멸의 삶을 살 것인가.
이터널스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고뇌한다. 정해놓은 답을 따르는 존재도 아니다. 누군가는 조직의 명을 따르고 다른 누군가는 명을 어긴다. 인간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환멸하기도 한다. 인종과 성 정체성도 조율되어 있다.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동성 연인과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운다. 킨고(쿠마일 난지아니)는 인간들과 어울려 오랫동안 영화배우의 삶을 살아간다. 마카리(로런 리들로프)는 수화를 하고, 테나(안젤리나 졸리)는 과거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 치매와 유사한 정신질환을 앓는다. 길가메시(마동석)는 테나 옆을 지킨다.
리더 에이잭(셀마 헤이엑)은 아리솀의 명령에 의문을 품는다. 이터널스 중 가장 강한 존재인 이카리스(리차드 매든)는 아리솀에 충성한다. 물질을 변환시키는 능력을 가진 세르시(젬마 찬)는 에이잭의 뒤를 이어 이터널스의 리더가 된다. 이터널스 가운데 가장 강한 전사가 아닌 세르시가 리더가 된 이유는 인간을 연민해서다.
7,000년을 넘게 살아온 이터널스는 고뇌하고 반목한다. 불멸에 가깝게 살아오며 반복된 전쟁과 살육을 목격해온 존재의 심리적 갈등과 존재론적 고민에 비중을 뒀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보다 묵직한 철학을 논하고 서정적 고찰을 키운다. 이 때문에 마블 특유의 위트와 유머도 적은 편이다. 진중한 철학이 담긴데다 무거운 분위기를 띤다.
평단과 관객의 평이 엇갈리는데, 혹평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시사 매거진 <아틀란틱>은 “수천 년에 걸쳐 지구의 삶을 경험한 강력한 역사의 관찰자가 나누는 경외심과 절망을 추적한다”고 호평했지만, 영국의 영화 잡지 <엠파이어 매거진>은 “슈퍼히어로 스토리텔링의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미국 영화리뷰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58%로 마블 역대 최저의 신선도 지수를 기록했다.
<이터널스>는 마블 특유의 재미를 주지 못한 게 단점이다. 마블이 인기를 누리는 가장 큰 요인은 ‘오락성’이다. 천재공학자가 첨단 강화 슈트를 입거나 고대 신화 속 신이 망치를 휘두르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모습은 눈이 즐겁다. 매번 발전된 슈트가 조립되고 망치의 신이 천둥의 신으로 각성해 번개를 쏟아붓는 장면은 쾌감을 선사한다. 만화 속 영웅들은 당장 눈앞에 나타날 정도로 친근하면서도 영웅들의 멋진 모습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터널스>는 전혀 다르다. 7,000년간 인류와 함께 지냈지만 낯설고 이질적이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서가 아니다. 영화 속 인간의 문명이나 인류사의 크나큰 사건을 단편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7,000년의 기억을 가진 우주적 존재라면 좀 더 고차원적인 고뇌를 품어야 한다. 애정과 후회, 슬픔, 죄책감, 환멸 등의 만감이 교차하는 갈등이 셀레스티얼에 맞선 인류애로 종결된다. 이터널스가 상위 존재와 맞서는 명분이 인류애라면 이터널스가 지구를 지킬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성소수자와 장애인을 이터널스로 만드는 손쉬운 선택에 그친다. 혹자는 사회적 약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둘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블 슈퍼히어로의 면면을 살펴보면 획기적이지는 않다. 영웅들 대부분이 결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결함을 가진 슈퍼히어로들 사이에서 신체의 장애나 퀴어는 특별한 서사를 갖지 못한다.
기대했던 <앤트맨과 와스프:퀀텀 매니아>마저 로튼토마토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고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어벤져스:엔드게임> 이후 침몰하는 MCU는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