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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는 ‘영원한 테너’로 불린다. 그는 생전 당대 최고 성악가이자 모든 인류의 귀감이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고 무대 밖에서는 유엔 평화대사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1977년 한국을 방문해 독창회를 가졌고, 1993년, 2000년, 2001년에도 내한공연을 열었다.
<파바로티(Pavarotti)>는 역사상 최초 클래식으로 음악 차트 올킬 신화를 만든 슈퍼스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 영화다.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했다. 론 감독은 최근 <제이-지:메이드 인 아메리카>, <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 등 음악인 다큐 영화를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다.
영화는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삶을 안팎으로 조명한다. 마치 한편의 오페라를 보여주듯 파바로티의 삶을 차근차근 뒤따라간다. 파바로티의 비공개 영상과 사적인 인터뷰, 가족·친구들이 찍은 홈비디오, 공연 실황, 생전 방송 인터뷰를 통해 무대 뒤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파바로티의 무대 위 모습은 150㎏을 넘나드는 거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팔을 벌려 인사하는 슈퍼스타다. 1961년 아킬레 피레 콩쿠르 우승 이후 60개국 1,000만 관객 앞에서 공연하고, 전 세계 1억장 이상 음반을 판매했다. 또 13억 명이 시청한 ‘쓰리 테너’ 라이브 공연의 주역이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합창단에서 노래하다가 성악가로 발을 내딛는다.
1961년 이탈리아 레조넬에밀리아 시립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보엠>으로 데뷔한 그는 ‘하이 시(C)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유쾌한 성격으로 당대 최고 성악가가 된다. 특히 대기실을 찾아온 지인의 부모를 위해 즉석에서 아리아를 불러주고, 토크쇼에 나와 파스타를 만드는 등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항상 주변을 즐겁게 했다.
파바로티의 무대 뒤 모습은 다르다. 가족과 주변인들은 그가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무대 위 천진한 웃음 뒤에 음악적 고뇌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슈퍼스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으레 그러하듯 <파바로티>는 파바로티의 화려한 삶 이면에 자리한 고민을 언급한다. 두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애인이 얽힌 복잡한 연애사와 말년의 건강 악화를 다룬다.
1990년대 이후 오페라 무대를 멀리하며 록밴드 U2의 보노를 비롯한 대중음악가들과 무대를 가진 것은 오랜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비판을 들어온 것도 역시 빠지지 않는다. 말년에는 목소리를 제어하는 힘의 쇠퇴, 특히 호흡이 짧아져 반주자와 동료 성악가들이 템포를 맞춰줘야만 했던 이야기도 나온다. 풍부한 자료는 파바로티의 인생을 촘촘히 되살려낸다.
음악인을 다룬 다큐 영화답게 114분의 러닝타임 동안 오페라음악이 흘러넘친다. <파바로티>는 사운드트랙의 절반 이상이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들로 채워진다. 파바로티가 푸치니 오페라의 탁월한 해석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1990년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쓰리 테너’ 공연 실황에서 일류 테너들이 화려한 기교를 뽐내며 경쟁하면서도 화합하는 장면부터 파바로티가 1961년 이탈리아 레조넬에밀리아 시립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보엠>으로 데뷔할 때 생애 처음 녹음한 ‘그대의 찬 손’을 만나볼 수 있다.
<파바로티>를 보는 내내 ‘신이 내린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아직도 덥수룩한 수염에 초췌한 몰골의 파바로티를 찍은 캠코더 영상이 기억난다. “100년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췌장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파바로티가 대답한다. “오페라를 친근하게 해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그저 명성을 위해서만 새로운 오페라를 추구한 게 아니란 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어. 그리고 늘 비평의 대상이었으니 용감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네.” 캠코더를 든 이는 다시 묻는다. “한 인간으로서의 파바로티는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