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인가 피스보트(Peace Boat)를 타고 베트남에 갔었어요. 발목만 남아있는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리를 보고 굉장히 화를 내더라고.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금방 친해졌어요. 나도 피해자잖아요. 피해자로서 그분들을 볼 때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사과도 하고 배상도 하고 해야지.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사과도 하고, 일본도 우리한테 사과해야 합니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 이름이 없는 아기를 안은 어머니 조각상이 나란히 섰다. 베트남 전쟁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아기와 어머니의 넋을 기리는 ‘베트남 피에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9) 할머니는 소녀상과 피에타상을 번갈아 어루만지며,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27일 오후 2시, 한베평화재단건립추진위원회는 서울시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한베평화재단을 출범하고 피에타상을 최초 공개했다.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슬픔을 뜻한다. 피에타상은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와 김운성 작가가 제작 중이며, 제주도와 베트남 빈호아에 각각 세울 예정이다.
김서경 작가는 “신화 속에서 여신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결국 희생하고 소멸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여인 역시 그렇다”며 “한국과 베트남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베트남 피에타’가 제 목소리 한번 뱉어내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존재들을 다시 호명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베평화재단 출범식에 함께 한 이용수 할머니는 “나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일본도 한국도 피해자가 이렇게 있는데 왜 들으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화욱 추진위원장은 “어머니는 아기에게 마지막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다. 이 조각상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희생된 수많은 어머니와 무명 아기”라며 “베트남 피에타를 ‘위안부’ 소녀상과 나란히 세웠다. 20세기 전쟁 속에 일어난 수많은 희생을 우리는 반성하고 성찰하지 못했다. 이는 곧 우리가 평화에 다다르지 못한 까닭”이라고 말했다.
추진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양국 간 교류는 봇물 터지듯 늘어가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거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며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은 미국 양심세력을 잉태하고 세계적인 반전시위의 계기가 되었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이 전쟁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성찰도, 반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느 민족이든 역사적 과오를 범할 수 있지만 그를 부인하는 것은 미래에도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베트남전 종전 41주년(4월 30일)을 맞아 한베평화재단의 시작을 알리며 한국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베트남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 한국과 베트남이 겪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와 상생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평화운동 확산을 위한 캠페인 ▲올바른 역사관을 통한 미래세대 평화교육 ▲베트남 전쟁 연구, 출판, 아카이브 활동 ▲한국-베트남 문화예술 교류를 통한 평화·화해·협력의 증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실규명 및 피해자 지원 ▲참전군인을 아우르는 고통의 연대 ▲동아시아 평화와 상생을 위한 아시아 시민연대 활동 등을 할 예정이다.
이날 한베평화재단 출범식에는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명진 스님과 정지영 감독,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송필경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대표 등?100여 명이?참석했다.?한베평화재단건설추진위원회는 지난해 9월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