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이태원 참사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경진 “압사라는 단어, 상황 모두 생경했다”
#학선 “서울에 대한 열등감이 이해 막아”
#명은 “참사 후 개인에게 생존 떠넘겨”
#영태 “피해받고 희생당한 사람들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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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2주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첫 모임을 하는 오늘은 1월 26일 목요일 저녁 7시입니다. 전 작년 3월부터 뉴스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기획하고 섭외했습니다. 다들 한 번에 오케이 해줘서 섭외가 어렵진 않았습니다. 목표는 이 모임이 뉴스민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보다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유경진: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복지 분야 전문성보단 30대 남성의 정체성, 인터넷과 서브컬쳐에 기반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기획에 대해 들었을 때 술자리에서 깊게 다루지 못한 이슈를 깊이 있게 나눌 자리가 될 것 같아 바로 오케이 했습니다.

조영태: 대구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가 연말이었는데, 마침 내년에는 뭘 해볼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성과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실력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학선: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고를 졸업한 뒤 바로 공장에 갔고, 특성화고 노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왔거든요. 보통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무 생각 없이 신서유기를 보는데,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서 좋아요.

이명은: 어쩌다 보니 활동가가 됐습니다. 무겁긴 한데 이젠 익숙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활동하고 있어요. 요즘엔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이 안 되더라고요. 연예인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친구들이 보기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나는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고민을 주변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씨부려대구 패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영태 이학선 김보현 유경진 이명은 참가자. 모임은 1월 26일 목요일 저녁 7시 진행됐고, 2주에 1회 열릴 예정이다

#경진 “압사라는 단어, 상황 모두 생경했다”

보현: 첫 모임 주제로 이태원 참사를 제시한 건 충분히 이 사건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어요. 당일 밤 영상을 봤을 때의 충격과 최근까지 이어진 특수본 수사, 유가족 기자회견 등을 따라온 마음을 어디 이야기할 데가 없더라고요. 제 주변은 대부분 힘드니까 피하거나, ‘이게 나라냐’ 정도로 뭉뚱그려서 비판하는 정도였어요.

경진: 압사라는 단어가 너무 생경했어요. 당일 밤에 본 영상에서 여자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도 현실감이 없었고요.

학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가 벌어진 것도 아니고 시내 한복판을 걷다가 죽는 게 말이 되냐는 내용의 댓글을 봤어요. 정말 ‘걷다가 죽었다’는 말이 맞더라고요. 정치적 장면들도 떠올라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니라고 했던 것,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조문을 하루 한 번씩 갔던 것,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고 했던 것도요. 안타깝고 슬퍼하라고 하면서 그게 곧 무기력함인 것처럼 이야기된 부분도 있었어요.

경진: 그날, 야심한 밤이었잖아요. PC게임을 하고 있었거든요. 핼러윈 이벤트 중이었는데 채팅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같은 내용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포털로 뉴스를 들여다봤는데 계속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거예요. 방구석에서 받은 그 느낌이 너무 이상했어요. 한편으론 별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뭐지, 사람들이 왜 저기 저렇게 몰려갔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경진, “압사라는 단어가 너무 생경했어요. 당일 밤에 본 영상에서 여자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도 현실감이 없었고요.”

학선: 처음엔 현실감이 없어서 그냥 무역수지 뉴스 보듯 별 생각이 안 들었어요. 대구에 사니까 이태원이라는 공간 자체도 잘 모르고.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 데미지가 쌓였더라고요. 얼마 뒤에 점심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딱 드는데, 밥이 안 넘어갔어요. 그때 ‘내가 충격을 받았구나’ 알게 됐어요.

영태: 저도 별로 감정적 동요가 없었어요. 정치권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점점 분노가 쌓였던 것 같아요. 보상 이야기가 나오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들을 보면서요. 댓글에서도 ‘서양 귀신 놀이하다가 사고가 났다’라거나 ‘야한 옷을 입고 가니 사고가 나지’ 하는 등의 내용이 초반엔 많이 올라왔거든요. 그걸 보면서 세월호 참사 때랑 비슷하다는 것도 느꼈고요.

보현: 참사 직후에 당일 현장에서 ‘밀어, 밀어’ 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누군지 색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기도 했죠. 사고의 원인이나 책임을 우리가 손쉽게 비난할 수 있는 특정인에게 돌리는 게 익숙한 패턴인데, 생각했어요.

#학선 “서울에 대한 열등감이 이해 막아”

경진: 솔직히 저는 이태원이라고 해서 ‘물 좋은 클럽’에 가서 노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라는 이미지가 한 겹 있었어요. 우리가, 특히 지방에 있으면서 이태원에 갖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고 직후 그런 이미지에 투영해서 생각을 했다가 점점 정보가 들어오면서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알게 됐죠. 아마 저처럼 생각을 시작했다가 흐름을 바꾸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거예요. 계속 얘기하지 않으면 무관심한 폭력이 나갈 수 있다고 봐요. 세월호 참사 때에도 마찬가지고. 관심사 혹은 더 나아가서 환경의 탓도 있겠죠.

학선: 저는 서울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어요. 핼러윈 때마다 ‘팔자 좋네’라고 생각했죠. 그런 정서가 나이 드신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부모 잘 만나서 서울로 대학 가고, 놀 때도 돈을 펑펑 쓰겠네’ 생각했죠. 나중에 보니까 금속노조 조합원이 희생자 중에 있다는 거예요. 그때야 ‘아, 내 생각과 경험이 짧았을 뿐이지, 저기가 일상의 공간이구나’라는 걸 몸으로 느꼈어요. ‘저 사람들이 놀고 나서 다음 날 집에 돌아가야 되는데 돌아가지 못했구나. 내가 줄곧 고민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구나’ 생각했어요. 그 이해를 가로막는 게 열등감이었던 것 같아요.

학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이즈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정치적 의도가 있죠”

영태: 인싸, 아싸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댓글에도 ‘인싸들이 죽었다’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딱 그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나랑은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 깊숙한 곳에 학선님이 얘기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명은: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의 문제일까요? 열등감과 패배감이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생각보다 되게 뉴스를 안 보거든요. 그 친구들은 열등감의 필터링 속에서 아주 제한된 정보만을 듣는데, 그럼 ‘그 친구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아닌 거죠. 우리 안의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어서, 주제를 다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웃음)

보현: 10대 생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보고도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경진: 큰 문제인 데 비해 기사화 혹은 이슈가 많이 안 된 것 같아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정보라서 그럴까요. 정부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진행했다고만 말했으면 모르겠는데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이니까 너무 화가 났어요.

명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한 개인이 아니잖아요. 개인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맡은 이상 본인의 책임에 대해 인식을 해야 하는데, 그러고 있는지 의심이 들어요. 계속 회피하고 해명하는 식이 반복된달까.

경진: 사과는 유튜버들이 더 잘하죠. ‘사과의 공식’이 온라인에 도는데 그것도 (정치인들은) 참고를 안 하는 것 같아요.

영태: 한편으론 우리 안에 이성적 판단을 유지하려는 내면의 힘이 약해져 있다고 봐요. 세월호 참사도 감성적 영역으로 치부하고 ‘더 이야기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고요. 이태원 참사도 벌써 ‘너무 힘드니까 외면하겠어’ 혹은 ‘슬픈 건 알지만 그래서 정치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지 않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그 이성적 판단을 유지하는 힘이 약해서가 아닐까요.

#명은 “참사 후 개인에게 생존 떠넘겨”

보현: 세월호 참사로 우리가 이미 겪었잖아요. 책임자 처벌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고, ‘제대로 됐나’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물론 입증할 순 없겠지만 ‘그 과정과 이번 이태원 참사가 정말 별개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가 몇 번의 참사를 겪으며 방지책을 만들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서 트라우마 치료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10대 생존자가 그런 결정을 했을까, 사고 이후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댓글과 유튜브가 날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라도 더 적극적으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는 거죠.

학선: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에 이번 이태원 참사까지 돌이켜보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이즈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도 말하죠. 당연히 정치적 의도가 있죠. 저는 그 원인이 양당제에 있다고 봐요. 이태원 참사만 봐도 유가족이 의도와 무관하게 국민의힘을 공격하는 모양이 됐죠. 국회에선 조사기구 설치를 협상 카드로 쓰잖아요.

명은 “어쩌다 보니 활동가가 됐습니다. 무겁긴 한데 이젠 익숙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명은: 학선님이 말한 여러 참사 이후 우리가 사회를 돌아보고 개선하고 신뢰하게 됐는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아요. 이번에도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심폐소생술 수업을 들으러 갔잖아요. 세월호 참사 때도 생존수영 수업을 만든다거나. 이게 결국 내가 개인으로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찾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속상하죠.

학선: 저는 공정에 집착하는 사람이거든요. 책임져 주는 사람은 없고, 어차피 각자도생인데 네가 열심히 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가 강해질 거고, 특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 또래인 20대 초반 친구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또래가 많이 죽었잖아요. 자기 세대의 공통 경험으로서 그들에겐 더 악과 깡만 남겠죠.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 비단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뿐 아니라 삶에서도 나타날 거예요.

#영태 “피해받고 희생당한 사람들은 뒷전”

보현: 제가 이제 나이를 좀 먹어서, 핼러윈이 요즘 10대, 20대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여기 해당되는 연령대가 학선님 밖에 없나요?

경진: 저도 잘은 모르지만 요즘 크리스마스를 가족, 연인과 보낸다면 핼러윈은 친구들과 꾸미고 나가서 어울리는, 그런 날로 인식되더라고요. 핼러윈을 꼭 챙겨야 되는 날이라 생각하던데.

학선: 자라면서의 문화 차이인 것 같아요. 학원이나 또래 속에서 핼러윈은 꼭 챙겨야 하는 문화였기 때문에 당연히 핼러윈은 옷을 예쁘게, 혹은 웃기게 입고 나가서 뽐내는 자리인 거죠. 놀이도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생각하는 분위기 같기도 해요. 한편으론 이태원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도 그들이 상실한 공동체를 이 공간에서 공통의 경험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별로 놀 시간도 공간도 없고, 문화도 없고, 바짝 놀아야 하는데 코로나19가 조금 지나간 뒤이기도 하니 좋은 기회였던 거죠.

보현: 이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해 볼까요? 서울 한 소방서 소방관으로 있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변한 건 ‘윗사람들의 호들갑’이고, 변하지 않은 건 ‘이행할 조직과 인력’이라 하더라고요. ‘현장에선 그런 고민을 하는구나’ 같이 생각이 많아졌죠.

경진: 절망스럽지만 아무것도 안 변한 것 같아요. 대구에 있는 나, 여기 있는 우리, 주변의 삶 모두요. 정권이 리스크 관리를 잘한 거라고 말하면 좀 슬프긴 한데. 가끔 뉴스에서 속 뒤집어지는 내용이 나오면 잠깐 뚜껑이 열리긴 해도 지나가는 거죠. 세월호 참사 때는 정치 지형이 분명 변화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리스크를 넘어서서 리스크를 리스크로 덮는 모양새랄까.

명은: 어쨌든 사건 전과 후의 세계는 다르죠. 다만 ‘어떻게 슬픔을 나눠야 할까’란 생각을 해요. 이번에 정부가 신속하게 애도기간을 선포했잖아요. 전 그걸 보고 애도가 필요한 건 맞는데 그렇게 선포해버리니 ‘그럼 이 기간이 지나면 애도가 끝나고 그 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불편한 마음부터 들더라고요.

▲영태 “처음엔 나랑은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 학선님 얘기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태: 피해받고 희생당한 사람들은 뒷전이라는 것은 여전해요. 2차 가해도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참사 이후에 공연이나 행사가 다 셧다운됐잖아요. 그들에겐 그게 생계인데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어요. 그게 변하지 않은 점인 것 같아요.

학선: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대처가 능숙해진 것 같아요.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우리 정권의 리스크로 가져가지 않으려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달까.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 시민, 사회단체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해야 사회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요령이 생긴 것 같아요. 늘 싸울 준비가 있어야 하는 건 맞죠. 하지만 ‘관성화 되는 게 사회 전체의 이득으로 이어지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실체적 진실이나 개개인의 삶을 돌보기는 오히려 어렵죠. 한편으론 늘 그래왔나 싶기도 해요. 그냥 ‘저’ 개인의 고민인 거죠. 아직 막내 활동가이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먼저 그려져요. 이게 나한테 좋은 일인가, 사안을 보는 눈이나 충분히 감정적으로 소화할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보현: 학선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경계에 대해 고민하면서 일터에 나갈 것 같아요. 저는 장면으로 떠올렸는데요. 세월호 참사 때 실시간으로 배가 기울고 있는 걸 지켜봤잖아요. 이태원 참사는 뉴스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 가게 주인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조 활동을 했던 장면이 있었어요. 제가 한 건 아님에도 조금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실제 많은 사람을 구하기도 했고요. 또 하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해 목소리를 낸 모습이 떠올라요. 서로 돕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변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봐요.

정리=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