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흐르자 드러난 모래톱, 그 위를 걸으며 기도하는 사람들

낙동강네트워크 주최, '낙동강 모래톱 걷기 및 모래 모시기'
겨울 철새 독수리를 위한 식당도 매주 열려

15:50
Voiced by Amazon Polly

“낙동강은 흘러야 한다” 한자씩 크게 적힌 현수막을 바닥을 펼치고,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래톱 위에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

생명의 강 낙동강이 온전히 흐르기를 희망하며 1배.
낙동강 뭇 생명들의 평화를 희망하며 1배
낙동강에 되돌아온 모래톱이 영원하길 희망하며 1배
낙동강에 돌아온 귀한 새 황새와 호사비오리를 생각하며 1배
낙동강 모든 보와 수문이 활짝 열리기를 희망하며 1배
낙동강 주변 농민들이 물 걱정 없이 농사짓기를 희망하며 1배
영주댐이 철거되며 낙동강으로 맑은 물과 모래가 흘러들기를 염원하며 1배
낙동강 최상류 오염덩이 공장 ‘영풍 석포제련소’가 낙동강에서 사라지기를 희망하며 1배
낙동강이 고향인 물고기 흰수마자가 낙동강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1배
낙동강 700리 물길이 한 물길로 이어지게 낙동강의 모든 보들이 사라지기를 열망하며 1배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낙동강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10가지 기도를 읽어내려 가면, 사람들은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절을 올렸다. 모래톱 위에서 이들은 생태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 ‘낙동강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10가지 기도’에 따라 사람들은 둘러서서 절을 했다.

14일, 오전 대구 달성군 현풍휴게소 인근 박석진교에 사람들이 모였다. 행정구역상으론 경북 고령군 개진면 부리, 이들은 다리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서서히 드러나는 모래톱으로 다가갔다. 아침 일찍부터 내린 비로 강 위로 자욱하게 핀 물안개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낙동강네트워크가 주최한 ‘2023년 낙동강 모래톱 걷기 및 모래 모시기’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 사라질지 모를 모래톱 걷기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12월부터 일시적으로 합천창녕보 수문을 개방했지만, 이달 17일 다시 닫을 계획이다. 수문이 닫히면 모래톱은 다시 강물 아래로 사라진다. 환경단체는 모래톱의 생태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4대강 사업이 없애버린 모래톱을 되찾는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정수근 국장은 “모래톱은 야생동물 서식지로 환경 변화에 따라 생존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영향을 받는다”며 “비가 와서 오늘 모래톱 둘러보는 건 불편하지만, 수문 닫는 건 더 미뤄질 수도 있어서 결과적으론 생태계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모래톱에서 발견하는 야생동물의 발자국
자라와 민물조개는 왜 죽었을까

▲ 14일 낙동강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2023년 낙동강 모래톱 걷기 및 모래 모시기’ 행사 가운데 박석진교에 아래 쪽으로 펼쳐진 모래톱을 걷고 있는 사람들 모습. 물안개로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작게 물가를 향해 난 발자국이 야생 동물 발자국이다.

몇몇 준비성 좋은 참가자들은 우비를 챙겨입기도 했지만, 대부분 우산을 받쳐들고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하진 않았다. 때때로 빗물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운동화 아래로 느껴지는 모래 감촉은 부드럽고 푹신했다. 일부는 모래톱 감촉을 직접 느끼려 신발도 벗어들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온 오미란(50) 씨는 우비를 입고, 신발을 손에 든 채 모래톱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오 씨는 “겨울이라 조금 차갑지만 이 때가 아니면 또 못 걷지 않냐. 걷는 걸 좋아해서 이런 저런 길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자주 걷는데, 이 보드라운 모래 감촉이 너무 좋다”며 미소 지었다.

오연주(28) 씨는 대구 북구에 있는 ‘팔거천 지킴이’ 활동 단톡방에서 모래톱 걷기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자친구인 박수봉(32) 씨와 함께 의미 있는 데이트를 즐기러 왔다. 두 사람은 “바닷가 모래사장 같다”며 “직접 모래를 밟으면서 동물 발자국이나 생태 환경에 관해 설명해 주는 걸 들으니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물가를 향해 난 야생동물 발자국도 곳곳에서 보였다. “길쭉한 하트 모양 발자국은 고라니, 고양이 발자국처럼 보이지만 발바닥이 더 좁은 건 삵이구요. 수달은 삵 발자국과 비교해서 발바닥이 좀 더 길어요.” 일행 중 야생동물 생태를 잘 아는 누군가가 설명했다.

자라나 민물조개 사체도 곳곳서 발견됐다. 죽은 자라를 두곤 ‘죽은 거다’, ‘살아있다’며 의견도 분분하게 일었다. “등껍질이 말라 있으면 죽은 게 맞아요.” 박다현 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나서 자라의 생사를 정리했다. 박 대표는 “민물거북이 중 자라와 남생이 말고는 외국에서 들어온 생태교란종인데, 애완거북이를 집에서 키우다 그냥 강에 풀어버려서 거북이의 생태교란 문제가 심각하다. 금빛을 잃어버린 이곳 모래톱처럼 야생동식물에게도 변환 환경이 녹록치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 2023년 낙동강 모래톱 걷기 및 모래 모시기 행사에 참가한 오미란 씨가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모래톱의 촉감을 느끼고 있다.

매주 화,토 열리는 ‘독수리식당’
비 때문에 비행 어려운 독수리 대신 찾아온 건

모래톱을 돌아 나와 고령군 우곡면으로 향하면 이 시기에만 문을 여는 ‘독수리 식당’도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은 몇 해 전부터 보가 개방되는 12월 말부터 2~3개월 동안 이곳을 찾는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매주 화, 토. 두 차례 소 부산물이며, 돼지고기 따위를 60~80kg씩 챙겨 와 독수리에게 챙겨준다.

우곡면 포2리 이장이자,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곽상수 씨는 “이 근처에 사는 독수리가 80마리 정도다. 보통 11시쯤 밥을 주면 두어 시간 후에 독수리떼가 모래톱 위에 차려진 먹이를 먹으러 내려오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경북 영천 한 식육식당에서 소고기를 독수리 먹이로 보내왔지만, 비 때문에 ‘장관’은 볼 수 없었다. 대신 물을 좋아하는 민물 가마우지 새, 까치, 까마귀가 독수리 식당을 차지했다.

“한두 마리씩 하늘 위로 날면서 다른 독수리들이 다 오길 기다렸다가, ‘대장’ 독수리가 먼저 내려온다. 대장 독수리가 ‘괜찮다, 먹어도 된다, 안전한다’고 신호를 주면 다른 독수리도 내려와서 먹이를 먹는다”는 곽 씨의 설명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고향을 떠나 경북 구미에 사는 김근열(63) 씨는 고향 땅에서 독수리 식당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행사에 참여했다. 김 씨는 “오늘 성당 사람들과 함께 왔는데, 독수리 밥상 마련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 밥값도 모아왔다”며 “우리나 죽은 민물조개도 신이 만든 피조물인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후배 세대에게 엉망진창이 된 생태를 물려주는 상황이 기성세대로 부끄럽다”고 전했다.

▲ 12월부터 약 3개월 간 열리는 ‘독수리식당’ 모습. 이날은 비가 와 직접 독수리를 볼 수는 없었지만 민물 가마우지나 텃새들이 독수리에 앞서 먹이를 물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독수리 식당이 열리는 둔치에는 정부가 마련한 ‘흰수마자 복원지’ 안내판이 있다. 흰수마자는 잉어과에 속하는 우리 고유종으로 1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환경단체 활동가는 이곳 독수리 식당 주 손님인 독수리를 비롯해 법정보호종과 천연기념물 조류들로 원앙, 호사비오리, 큰고니, 흰목물떼새, 흰꼬리수리, 참수리, 새호리기, 잿빛개구리매, 항조롱이 10여 종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 장홍석(40대) 씨는 “철새 탐조를 가끔 했는데, 모래톱 걷기는 처음이다. 낙동강을 걸으면서 생태를 살리자고 하는 그 말들이 더 와닿는다”고 했고, 경남 밀양에서 온 현금인(60대) 씨도 “모래톱을 걸으며 굉장히 감동적이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크다. 이곳들이 잘 지켜졌으면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 합천창녕보를 뒤로 하고 모래톱 걷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