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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진천역 인근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허름한 집이 한 채 있다. 담벼락의 큰 금과 금방 쓰러질 듯 낡은 대문으로만 그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집이다. 집은 달서구 소유 토지에 무단으로 지어진 채 수십 년을 지났다. 그곳에는 치매를 앓는 A(84) 씨와 그 아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부 처분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복지시스템 변천도 그대로 되짚어진다.
2000년대 들어서 까지도 이들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무단 점유자’였다. 지난 2008년 달서구는 뒤늦게 무단점유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들 처지와 상관없이 무단점유에 따른 변상금을 청구했다. 올해까지 A 씨에게 청구된 누적 변상금은 3,600여만 원 정도다. 변변한 벌이가 없는 이들에게 3,600여만 원은 쉽게 변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A 씨 아들은 일용직을 나가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면서 그마저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들이 ‘무단 점유자’에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지원 대상자가 된 건 최근이다. 지난 2019년 무렵 달서구 토지관리과 직원들은 변상금액이 큰데다 A 씨가 치매를 앓고 아들마저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도울 방법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A 씨 모자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달서구 복지정책과와 진천동 행정복지센터에 상황이 공유됐다. A 씨 아들에게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권유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은 한사코 신청을 하지 않으려 했다. 어눌한 말투의 A 씨 아들 역시 도움을 주려는 이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담당자들은 여러번 이들을 찾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전했다.
박정호 달서구 토지정보과 지가관리팀장은 “안타까운 상황이어서 구에서도 다각도로 도울 방법을 찾았다. 할머니께서 병원도 다니면 돈이 많이 들텐데 의료급여 혜택도 받으려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해야 한다고 구 직원들이 여러 번 방문해 계속 설득했다”며 “임대주택도 알아봐 드렸지만 치매 증상 때문인지 살던 곳을 떠나기 무서워 했고, 임대주택 주거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달서구 복지 담당 직원들이 여러차례 방문해 설득한 끝에 2021년에야 A 씨 모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부양 가족에 해당하는 아들이 있지만 최근 대상자 기준이 완화된 덕에 ‘조건유예’로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A 씨가 받는 기초 노령연금까지 더하면 이들이 받는 지원금은 97만 원 정도다. 2022년 기준 2인 최저생계비는 195만 원이다.
2021년 4월부터 3개월 동안에는 통합 사례 관리 대상자로도 선정됐다. 통합 사례 관리 대상자로 선정되면 단발성이지만 맞춤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소정의 지원금이 나온다. 행정복지센터에서는 A 씨의 열악한 주거 상황을 고려해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기로 했다. 동시에 봉사자들과 함께 A 씨 집을 찾아가 대청소도 했다.
진천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통합 사례 관리 대상자로 사후 관리도 이뤄졌는데, 봉사자들이 정리한 집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행정복지센터에 후원 물품이 들어오면 종종 나눠드리러 가기도 한다”며 “본인이 원하면 ‘행복지킴이’ 제도를 통해 안부 확인이나 주기적인 방문 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데, 자녀분이 계시다 보니 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에도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통합 사례 관리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 조만간 A 씨에게 임대주택 신청 안내도 다시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복지 업무를 하다 보면 이분처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마을 상황을 잘 아는 통장님 등에게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홍보도 하고 있다. 가족이나 사회적 단절을 겪는 분들이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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