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건강권’ 법에도 명시되지만, “자기들 문제”라는 홍준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하면서, '건강권' 명시
법률상 이해당사자 간 협의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산업부, "마트노동자, 이해당사자로 삼는 건 지자체 운영에 달려"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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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노동자의 건강권과 유통산업 상생을 위한 필요 때문에 도입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전환을 추진하면서 제도의 한쪽 축인 노동자를 대화 상대에서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다. 이해당사자 간 논의를 통해 휴업일 변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트노동자를 포함해 논의할 수도 있지만, 홍준표 시장을 필두로 전환을 추진한 대구시는 논의 테이블 마련은 구·군으로 미루고 있다.

▲19일 오후 열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전환 추진 협약식’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직접 참석해 추진 의지를 밝혔다. (사진=대구시)

지난 19일 대구시가 8개 구·군 및 상인연합회, 수퍼마켓협동조합 등과 맺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전환 추진 협약서’에는 노동자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홍준표 시장은 이날 협약의 한 주체로 협약서에 서명하면서, 시 차원의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구시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에 따른 협조’ 문건에 따르면 대구시는 12월 중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의견 청취 등 구·군별 행정철차를 이행하고 내년 1월 이후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할 예정이다.

홍 시장은 협약식에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하는 만큼 전환 과정에서 혹시라도 피해 보는 분들이 없는지도 살펴보겠다”고 했지만, ‘피해 보는 분’에는 마트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협약 당일 홍 시장은 협약식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 노동자를 지칭해 “자기들 문제”라고 했고, 20일에는 이들의 엄벌을 주문하는 고발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홍 시장과 대구시의 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향후 각 구·군 차원에서 이어질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사이에 둔 갈등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노동계의 강한 반발은 법 취지에 근거한다. 2012년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을 위해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면서 추가된 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제12조의2(대규모점포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 등)

“시장·군수·구청장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대규모점포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규모점포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과 준대규모점포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여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을 마련하면서 제도의 필요성으로 노동자의 건강권과 유통질서, 유통산업 상생발전이 함께 담긴 거다. 법 취지와 법률상 이해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자 대표를 논의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대구시는 그 책임은 구·군으로 미루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대구시는 의무휴업일 전환을 위해 구·군 담당부서 의견 청취, 시장상인회, 소상공인단체, 중소유통업체, 대형유통업체들과 간담회를 이어왔지만, 노동자들과 공식적인 간담회 등의 시간은 갖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난 19일 벌어진 노조의 시위였다.

법률이 이해당사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지 않아서 노동계 대표를 논의 대상으로 삼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지자체의 판단에 달려 있다. 통상적으로 관련 논의를 하는 기구가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고, 법 시행규칙 역시 협의회 일원에 ‘이해관계자’를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 관계자는 “법이 명시적으로 마트 근로자가 안 된다고 막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논의를 이끌어온 대구시 민생경제과 관계자는 “협약식 이후에는 구·군에서 협의 후 진행해야 하는 내용이 남았다. 이해관계자가 법에 명시가 안 돼 있기 때문에 구·군에서 협의를 정해 하기 나름”이라고 구·군으로 논의 책임을 넘겼다.

노동자와 논의 없이 추진되는 대구시의 의무휴업일 전환은 각계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대구시당은 20일 논평을 통해 “대구 중소상인들과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삶을 짓밟는‘청와대발 청부입법’”(더불어민주당), “‘상생’은 재벌유통사들의 민원을 해결할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니”(정의당)라고 비판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비판 기자회견을 예고하고 있다.

▲19일 열린 협약식은 마트노조의 반대 시위로 인해 행사 직전 장소가 강당에서 회의실로 바뀌었다.

한편 대구시 내 의무휴업 대상 점포는 대규모점포 17개, 준대규모점포 43개로 총 60개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대·중소 유통업계는 지역 유통업 발전을 위해 상호 간 우호증진을 위한 상생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기초자치단체에 공통으로 제시한 상생방안으로는 대형마트 매장 내 중소유통 등의 판매코너 운영, 전단광고에 중소유통 홍보, 소상공인 교육 등이 있다.

이상원,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