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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평 남짓한 공간, 책과 서류로 가득한 공간에 한기가 감돈다. 경주역 근처 낡은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일요일이면 이주노동자로 붐빈다. 대부분 일하다 다치거나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거처는 제각각이다. 경주 감포읍에서 일을 시작한 이주노동자도 있고, 어업 이주노동자로 왔다가 울산, 여수 등 타 도시로 옮겨서 미등록 상태로 제조업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국적은 다양하다.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출신이 많다.
출신지도, 거주지도 다양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이곳 경주를 찾은 이유는 하나다. 오세용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여권 압수, 최저임금 미지급, 임금체불, 이중계약서, 욕설과 폭력에도 고용 상태에서 고용주나 한국인 선원에게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나고서도 제대로 문제제기하기 어렵다. 언어의 한계도 있는 데다가 노무사에게 노무 업무를 위임하려면 상당한 비용도 든다. 그래서 문턱이 높다. 이주노동자가 일반 노무법인을 찾아 계약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무료다. 게다가 오 소장은 못 받은 임금 받아내기로, 압수된 여권을 기어이 찾아주기로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 개소 후 10년, 센터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올해로 오 소장이 정년을 맞기 때문이다. 센터는 다른 이주노동자 단체와 다르게 민주노총 경주지부 부설 기관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민주노총 정년에 맞춰 오 소장은 올해 퇴직한다.
과중한 업무를 내려놓는다면 후련할 법도 하지만, 오 소장의 발걸음이 무겁다. 혼자 감당하던 센터 업무가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상담소의 회계, 운영은 기본이다. 뒤이어 할 소장의 구상과 철학에 맞춰 운영될 일이지만, 핵심적 업무인 이주노동자 권리 구제 업무 하나만 해도 제대로 해내기 어렵기에 걱정이 앞선다.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미지급 등의 사건 해결을 위해선 노무 업무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사건을 맡으면 단속에 대한 공포 때문에 구제기관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거의 전적으로 활동가 손에 달리게 된다. 선주, 사업주, 기관은 결코 협조적이지 않고 때로는 위협적인 상황도 벌어지기에 이들을 대면해야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 변호사법·노무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기 때문이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워낙 오 소장을 싫어하는 업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건을 처리하며 얼굴 붉혔던 선주들, 사업주들, 심지어 최근 마사지업체에서 일하는 태국 출신 이주 여성을 조직폭력배가 감금·폭행한 사건에서 엄벌 탄원을 냈던 일까지 머리를 스쳤다.
알고 보니 고발인은 한국공인노무사회 측이었다. 지난 7월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사건을 접수 받고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진정서를 접수하는 업무를 지원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오 소장이 공인노무사가 아닌데도 공인노무사 직무를, 변호사가 아닌데도 수사와 관련한 법률사무를 하고 이를 통해 수수료를 받았다는 혐의다.
공인노무사법은 공인노무사가 아닌 자가 공인노무사의 업무를 업으로 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 소장은 10년에 이르는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 동안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 다만 고발인 측에서는 오 소장이 이주노동자 지원 업무를 계속적, 반복적으로 한 것을 ‘업으로 행한다’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듯 했다. 상담 업무를 하지 말란 말인가. 15일 오 소장은 경주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오 소장은 노무사회가 특별한 근거도 없이 고발한 것으로 파악한다. 경찰 조사를 준비하며 확인한 결과, 실제 현직 노무사들만 가입하는 SNS 커뮤니티에는 특정 노무사가 “(오 소장이)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른다”면서도 “공무원이 적당한 조치를 해달라고 고발인(노무사회 측)에게 제보할 정도”라고 고발 취지를 적은 글도 올라왔다. 오 소장은 만약 공무원이 실제로 고발인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했다거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고발부터 한 것이라면 해당 공무원과 노무사회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무고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노무사회 고발 이후 전국 이주민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10월 공익인권법재단공감 등 전국 100여 개 이주민 관련 단체는 성명을 통해 “한국공인노무사회는 오 소장이 이주노동자를 대리해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사건을 노동청에 진정하고 이에 대해 수수료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어이없고 후안무치한 공격을 한다는 것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이주노동자를 무료로 상담해 대신하여 진정을 내는 활동을 해왔다. 이런 활동이 문제라면 공인노무사회는 전국의 모든 이주인권센터를 고발해야 할 것”이라며 “수수료를 받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악의적 뒤집어씌우기”라고 덧붙였다.
경주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직, 민주노조 운동 시작
정규직 운동 한계 느끼며 비정규직 운동 도모
어업, 제조업 종사 이주노동자 고루 있는 경주서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설립까지
서울 태생 오 소장의 경주와 인연은 90년대 초 시작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83년 군대에 끌려갔고, 제대 후 자퇴하고 노동운동에 나선다. 인천에서 위장 취업해 노조 운동을 시작했고, 전두환·노태우 정권에 이르는 시절 노동운동에 전념했다. 이후 89년 포항으로 온 오 소장은 취직을 위해 우선 용접 등 여러 자격증을 땄다.
경주의 자동차 부품업체에 취직했고 노동자들을 규합해 노동운동에 나섰다. 민주노총 출범 전,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고자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덜컥 당선됐다. 노조위원장 활동 도중 해고됐고, 그 후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민주노총 경주지부 설립과 그 이후 활동에도 매진한다. 오 소장은 만도기계 정리해고 반대 투쟁(1998년), 이명박과 관련된 다스 하청업체 세광공업 투쟁(2001년), 경주재활용선별장 민간위탁 저지투쟁(2010년)에서 3차례 구속돼 투옥했다.
오 소장은 감옥에서 90년대에 전념한 노조 운동이 ‘정규직 중심 운동’이었다고 반성하게 됐다. 출소 후 2002년, 비정규직 운동을 결심하고 민주노총 경북본부 경주지부에서 비정규직 사업 담당을 맡는다. 경주 지역 제조업 불법파견 문제에 관여할 때, 소극적인 정규직 노조의 모습을 보며 노조 활동에 회의도 느꼈다. 그즈음 오 소장은 정규직 노조로부터 “현장 상황을 모르는 원칙주의자”라는 평을 들었다.
오 소장은 개의치 않고 비정규직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2005년 지역일반노조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역일반노조는 특정 업체 하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조가 아니라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직종, 여러 사업장의 비정규직을 규합해 활동하려는 노조였다.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 지역의 노동, 환경, 정치, 행정 문제까지 모든 것에 개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조를 꿈꿨다. 특히, 기존 노조에서 관심 없는 이주노동자 인권, 장애 이슈까지도 포괄하려 했다.
지역일반노조 활동 중 이주노동자와도 자주 만나게 됐다. 이주노동자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보려니, 주변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몇몇 뜻있는 사람이 있었고 이들과 함께 이주노동자 노동 운동도 시작한다. 한국은 적극적인 이주민 송입국으로 바뀌고 있던 시점이며,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이주노동자 10명이 숨지고 17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도 일어났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에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상담을 맡게 되는 일도 빈번해지던 시점, 이주노동자가 주체가 된 이주노동자 운동을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펼치자는 고민을 키웠다. 그렇게 2011년 7월, 경주이주노동자센터가 출범했다.
의도친 않았으나 경주 지역은 제조업 업체에서 노동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 선주로부터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가 고르게 분포하는 지역이었다. 경주시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경주시 등록 외국인은 9,604명이다. 국적별로는 베트남(2,933명), 우즈베키스탄(1,082명), 카자흐스탄(964명), 한국계 중국인(618명), 중국(550명), 인도네시아(430명) 등 순이며, 거주지역 별로는 성건동(2,969명), 외동읍(2,590명), 동천동(834명), 감포읍(510명) 등 순으로 확인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건동은 이주노동자 주 거주지이며, 외동읍에는 제조업 업체가 많다. 바닷가인 감포읍에는 어업이 활성화돼 있다. 인근 포항처럼 큰 공장이 아닌 대기업의 2~4차 밴드까지 영세한 업장이 분포해 이주노동자 취직 비율이 높았다. 이들 업체에는 용역업체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불법파견 형태도 다수 확인됐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설립 후 1달 뒤 특히 어업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소문이 너르게 퍼졌다. 최근 기준 한 달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만 40건 내외로, 오 소장은 가능한 역량을 전부 투여해 사건마다 제대로 처리하려 했다.
어업 이주노동자 사건 해결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칙적으로 선주의 착취가 분명한 일인데도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이라 신분상 불안정하다거나,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입국할 때 송출 업체에 송출 수수료로 출신국의 집문서를 맡기는 등 약점을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억울한 일에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없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한국에서의 노동을 통해 출신국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상황에서 체불임금을 받기 위한 노동청 조사도 시간 내기가 어려운 경우가 생겼다. 어업 이주노동자의 경우 한 번 승선하면 임의로 하선하기 어려웠고, 기상 등의 사정으로 조업 일정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겼다.
오 소장은 사건 조사 시 그러한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고 고용노동지청이든, 해양수산청(선원 근로감독에 관하여는 노동청이 아닌 수산청이 근로감독 업무를 관할한다)에 호소했다. 때로는 사정이 참작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담당자의 의사에 따라 뒤바뀌는 경향이 있었다.
근로감독 업무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현장 경험이 없거나 사정을 모르는 담당자가 맡게 되는 경우도 어려운 점이었다. 무조건적으로 당사자 출석과 진술을 요구하는 경우 어떤 이주노동자는 체불임금 진정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고, 때로는 취직한 곳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출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민원 부서라 기피하는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오 소장은 이주노동자의 편에서 개선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퇴직하는 해에도 몰려드는 상담 처리에 바쁜 오 소장은, 이번 사건이 단지 경주이주노동자센터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십여 년 활동을 마무리하는 오 소장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업으로 여긴다.
“이 문제는 전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돕는 여러 단체와 연관된 문제입니다. 노무사들의 이익만을 위해 제기된 문제인데, 그보다 왜 이주노동자가 노무사를 찾지 못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제대로 해결해 선례를 남길 겁니다. 이제 퇴직하자니 후회되는 일이 많습니다. 더 잘했어야 하는데, 더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입니다. 다음에 활동할 사람이 더 발전적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를 바꾸는 데 작은 힘이 되길 바랍니다.”(오세용 소장)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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