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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이런 걸 도대체 왜 쓰는지 모르겠어.”, “이건 문학이 아니야.” 아니 에르노가 1991년 내놓은 『단순한 열정』(도서출판 산호,1993)에 대한 파리잔느의 혹평이다. 이런 혹평은 주로 고학력인 이십대 남성들로부터 나왔는데, 여기에는 섹스(‘열정’)를 목적으로 15년 연하의 유부남과 사귀었던 작가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개입되어 있다. 아니 에르노의 혐의는 두 가지다. 첫째, 저 관계는 어머니와의 연애 가능성을 암시하거나 그것과 동일시됨으로써 오이디푸스적 금기를 범했다. 둘째, 연상의 남자와 연하의 여자가 아닌,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로 맺어진 조합은 사회가 공들여 보호하려는 재생산에 대한 노력을 무시하거나 파괴한다. 이런 혐의를 반박하거나 해소하는 것은 이 칼럼의 목표가 아니다.
『단순한 열정』같은 글쓰기를 자서전(autobiography)과 소설(fiction)을 합쳤다는 뜻에서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고 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로 헨리 밀러가 있고, 호환 가능한 장르인 일본의 사소설이 이미 있어 왔으니 아니 에르노를 오토픽션의 발명자라고 할 수는 없다(더욱이 작가 자신이 ‘사적 소설’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현대문학 교수 자격증을 취득했을 정도로 문학에 정통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떼어 파는 자서전적 작가’가 되기를 방법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작가로서의 천분이 없는 사람들, 하고픈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나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데, 그녀도 그런 경우일까.
아니 에르노의 작품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작품은 1984년 르노도상 수상작인 『아버지의 자리』(책세상, 1988)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과 짝을 이루는 「어떤 여인」도 합본되어 있다. 작가는 1974년에 발표한 첫 작품 『빈 옷장』(1984Books, 2020)에서부터 줄기차게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 두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원점, 모든 작가가 자신을 대면해야 했던 ‘진정한 장소’이다.
작가의 부모는 시골 농군의 자식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열두 살 때 학업을 중단한 반문맹자였다. 학업을 중단한 두 사람은 부농의 농장에서 품을 팔다가 밧줄 제조소에 취직하거나(아버지), 마가린 공장에 취직했다(어머니). 두 사람은 1928년에 결혼을 하고 노르망디의 소도시에 카페 겸 식품점을 개업했다. 그들은 농부→공원→자영업자로 신분 상승을 꾀한 것이다. 아버지는 “노동자보다는 상인으로 더 보이고 싶어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보잘 것 없는 구멍가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이 현재의 “장소에 걸맞지 않을까봐” 늘 조바심했다. 그런 부모는 자신들이 도중에 멈춰버린 신분 상승을 딸이 대신해서 계속해 나가길 기원했다. 그 결과 교육을 받은 딸의 자리와 부모의 자리는 영영 어긋나게 된다. 아니 에르노는 부모가 부끄러웠다.
흔히 문화에는 계급·세대·성별 등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해지지만, 아니 에르노와 부모의 자리를 자른 절취선이 문화였다. 문화는 통합하는 매개라기보다는 분리하는 데 더 능한 칼이다. 그 가운데서도 음악은 계급·세대·성별에 특히 날카로운 칼인데, 음악은 날카로운만큼 융통성도 크다. 계급도 남녀노소도 일거에 무너뜨리는 음악은 많다. 조용필 혹은 베토벤 혹은···. 반면 문학은 그렇지 않다. 문자 문화는 남녀노소의 차이보다 문해(literacy) 교육 유무가 더 결정적이고, 『빈 옷장』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그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것은 계급이다.
문학이 대학 입시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문학은 취향이나 향유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처럼 문학에 좀 더 근접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이 있는 나라에서 문학은 그 자체로 엄연한 장벽이다. 아니 에르노는 바로 이런 이유로 전래의 소설 문학을 부정하기로 했다. 그녀가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문학동네, 2005)에서 글쓰기를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누는 일 자체를 “일종의 권력 행사”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반문학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글쓰기가 와해시키고자 하는 것은, ‘문학’이라는 절대화된 정의이며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