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유족과 나란히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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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은 취재 현장이 있다. 사건·사고 피해자 유족 취재는 몇 차례 경험이 쌓여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함께 손을 잡고 슬퍼하는 게 맞는지, 눈을 부릅뜨고 질문하는 게 맞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유족이 와서 이야기하길 기다려야 하는 게 맞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과 유가족 인터뷰를 보며 기자의 역할을 고민했다. 한 언론이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고, 대통령실은 유족들 면담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불참한 간담회에서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지나간 취재 경험을 떠올렸다. 이들의 슬픔 앞에서 언론과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 12월 1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국회에서 국정조사특별위원장 등과 면담을 진행했다. (사진=남소연 오마이뉴스 기자)

지난 8월, 2년 전 쿠팡에서 근무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 씨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공동 출간한 책을 여러 번 읽고 지난 기사도 꼼꼼하게 찾아봤다. 질문을 정리하고, 놓친 건 없는지 점검했는데도 일부러 정류장을 하나 지나쳐 내렸다. 돌아 걸어가는 동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우려와 달리 인터뷰는 매끄러웠다. 2년 전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은 정돈된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질문과 답이 흘러가는 것과 무관하게 계속 눈물이 고였다. 인터뷰하는 쪽, 당하는 쪽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인터뷰를 마쳤다. 다 식은 차를 마시면서야 서로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

11월에는 추락사한 건설노동자 장례식장에 취재를 갔다. 휴대폰을 손에 쥔 채 30분 넘도록 장례식장 근처를 배회했다. 5년 전 인턴기자 시절, 장례식장 취재 보조로 나간 동기가 사수의 말을 받아 적어 나눈 메모를 보며 계속 읊조렸다. ‘장례식, 사고 현장은 분위기가 무겁기 때문에 최대한 꼼꼼하게 스케치해야’, ‘장소의 대비성을 그리거나, 한 명만 집중적으로 보는 방법도 있음’, ‘워딩 말고도 표정, 손짓, 억양 읽어내기’ 따위를 읊조리며 뱅뱅 돌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쯤 입구에 늘어선 화환을 세며 들어갔다.

정작 취재에 들어가서 내가 한 건 그저 듣고,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바로 며칠 전 가족을 잃은 이들은 높은 사람을 알지 못해 억울해했고 망연자실한 표정 위로 마른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쏟아지는 말과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인사를 열댓 번 하며 뒤돌아 나오니, 하도 주먹을 꽉 쥐어서 손바닥이 하얬다. 다행히 핸드폰 녹음에 내용이 담겼지만, 기사에는 그 절반도 담지 못했다. 대신 사건을 계속 보도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나왔다.

언론과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유족의 시간을 따라가는 게 아닐까.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한 언론은 앞섰고, ‘참사가 아닌 사고’라고 명명한 정치권은 뒤처졌다.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구조적 문제를 밝히는 게 우선이지만, 그와 별개로 유족을 취재할 땐 그들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속도로 따라가야 한다. 정치적 이익도, 단독 보도도 유족의 슬픔보다 앞설 수 없다.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가 자칫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작업을 소극적으로 만들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다행히 유족들은 참사 한 달이 지나고 조금씩 언론을 통해 마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희생자 개인을 기억하고 참사 당일을 복기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언론이 그들과 나란히 걸을 때 우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