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피자와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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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1835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나서 『마차 여행』(1843)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이 책에서 나폴리 주민은 라차로니(lazzaroni)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누추한 몰골이 예수가 부활시켰다는 거지 라자루스(나사로)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뒤마는 라차로니가 두 가지 음식으로만 근근이 살아간다고 단언했다. 여름에는 수박, 겨울에는 피자. 『피노키오』를 쓴 카를로 콜로디가 “오물 덩어리”라고 묘사했듯이 부자와 미식가들은 손에 닿는 대로 재료를 이용하는 나폴리 빈민들의 이 음식을 오랫동안 먹지 않았다. 피자가 대중 음식이 된 것은 1889년,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와 그의 아내 마르게리타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피자 요리사가 여왕을 위해 만들어준 ‘마르게리타 피자’가 호평을 받으면서부터다.

나폴리 거리에서 초라하게 태어난 피자는 미국에서 제2의 고향을 찾았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만 먹는 민족 음식(ethnic food)이었으나 현재는 미국 전역에서 연간 10억 톤씩이나 팔려나간다. 캐럴 헬스토스키는 『피자의 지구사』(휴머니스트,2011)에서 피자를 미국에 널리 퍼트린 일등공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서 근무했던 미군을 꼽는다. 이들이 귀국해서 피자를 찾았던 것이다. 이후 1962년 처음 시판된 냉동 피자 개발과, 1965년부터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점포를 늘려간 도미노 피자의 배달 전략도 한 몫을 했다. 피자는 미국에서 배달로 고객을 찾아간 첫 번째 음식으로, 개인주의와 편리를 추구하는 미국인의 생활방식에 잘 맞았다.

피자가 이탈리아 밖으로 퍼져나간 가장 큰 요인은 따로 있다. 바로 변화무쌍과 현지 적응력. 미국인들은 나폴리 피자보다 두툼한 크러스트에 온갖 식재료를 토핑으로 올렸다. 이탈리아인들은 각종 조개에 감자ㆍ구운 오리ㆍ바비큐 치킨ㆍ파인애플까지 올리는 미국 피자에 기겁을 하지만, 이런 파괴와 변형은 피자가 대중화된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소시지를, 일본에서는 오징어 먹물을, 터키와 인도에서는 양고기를, 러시아에서는 연어와 정어리를 올린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탈리아인들은 피자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하지만, 이런 융통성이야말로 피자의 본 모습이 아니었던가. 진짜 엽기적이라면 빈민문화의 상징이었던 피자에 캐비아를 토핑으로 쓰는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에게 김치 200㎏이 지원되었다. 이 뉴스가 중국에 알려지자 ‘김치는 5000년 된 중국 고유 음식’이라고 와글거리는 중국 네티즌이 있다. 하지만 2001년 세계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세계 표준 규격으로 처음 등록된 고춧가루로 양념한 맵고 빨간 ‘김치’는 고작 17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배추김치를 담는 통배추가 나온지는 100년이 조금 넘을 뿐이다.

2010년, 한식 세계화 정책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아래에 세계김치연구소가 발족했다. 지난 11월 22일, 세 번째 맞은 ‘김치의 날’에 동 연구소는 김치의 놀라운 효능 22가지를 발표했다. 김치는 노화를 막고, 피부건강을 돕는 콜라젠 생성을 촉진하고, 당뇨병ㆍ심혈관 질환과 혈전을 예방하고, 위암ㆍ대장암ㆍ폐암ㆍ유방암ㆍ자궁경부암ㆍ간암ㆍ췌장암을 예방하거나 세포주를 억제한다. 또 혈액과 간의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고, 비만을 개선하고, 관절염 증상을 완화하고, 여드름균 성장도 억제해준다. 김치는 집안의 상비약도, 건강 보조식품도 아니다. 하물며 만능 통치약(예방약)일까.

김치의 세계화를 말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김치를 점점 먹지 않는다. 원래 김치는 쌀과 보리로 된 밥을 더 잘 먹기 위해서 필요했던 음식인데 한국인의 식성이 바뀌면서 김치 소비도 줄었다. 핵가족화와 아파트 주거는 세대에서 세대로 김치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김장 행사를 축소시켰다. 김치가 귀해지면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전(김치장떡), 양념을 씻어낸 김치로 만드는 김칫국은 물론 라면을 먹을 때에도 김치 한 조각 올리는 게 무서워진다. 이 공백을 김치의 산업화로 막아보자는 것이 연구소의 존재 이유인데, 이 일은 정부 예산으로 할 일도, 될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