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8) 1년, ‘진짜’ 달구벌 이동노동자쉼터 되려면

이용자 꾸준히 늘었지만, 대리운전 기사가 80% 이상
설치 이후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 부족
제대로 활용하려면 작더라도 거점 늘어야
수도권은 위탁 형태… 중요한 건 ‘운영 주체’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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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봐요. 앱에 대리운전 기사들 위치가 다 떠요. 이 근방엔 40명 정도가 있다는 건데 막상 가보면 눈에 안 보여. 건물 벽 사이에 있거나 열려 있는 건물 계단, 편의점 구석 같은 데 있는 거지. 여름은 그나마 좀 나아, 겨울엔 그냥 떨면서 길가에 서 있는 거예요.”

대리운전 기사 장인철(남, 59세) 씨는 23일 오후 8시경 달구벌이동노동자쉼터 수성쉼터에 도착해 율무차를 탄 종이컵부터 손에 들었다. 장 씨는 대리운전앱을 띄운 휴대폰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눈으론 월드컵 방송이 나오는 TV를 봤다.

10년 차 대리운전 기사인 장 씨는 매일 쉼터에서 일을 시작한다. 보통 8시에서 9시 사이 쉼터에 와서 대기하다가 일을 마칠 때쯤 다시 들러 안마의자에 앉는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회식 문화가 바뀌는 바람에 요즘은 12시를 넘어가면 콜이 많지 않다. 마치는 시간도 대중이 없다. 새벽 2시쯤 귀가할 때도, 해가 밝아올 때쯤 귀가할 때도 있다.

장 씨는 “쉼터가 생긴 초반부터 왔다. 마주 앉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핸드폰도 충전한다. 10월엔 쉼터에서 건강검진도 받았다. 쉼터가 만들어진 뒤 생긴 변화”라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쉼터는 오후 12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운영된다. 주말‧공휴일은 쉰다.

대구에는 2개의 ‘달구벌이동노동자쉼터’가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수성구 범어동의 수성쉼터와 달서구 장기동의 달서쉼터가 있다. 둘 다 정오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열려 있으며, 공간관리 노동자가 상주한다. 여성휴게실과 회의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으며 안마의자, 커피믹스, 정수기, 휴대폰 충전기, 복사기도 있다.

쉼터를 이용하는 이동노동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운영을 시작한 작년 11월 한 달 이용자는 185명이었다가 가장 최근 통계인 올해 9월엔 817명까지 늘었다. 이용자 대부분은 대리운전 노동자이지만, 퀵(배달) 노동자도 꾸준히 늘어 올해 7월에는 월 이용자가 100명을 넘었다.

이용자는 날씨와 소비경기도 반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난 2월, 쉼터 월간 이용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겨울이 가고 날이 따뜻해진 봄철엔 이용자 수가 줄었다가 여름철에 다시 늘었다.

최근 이용자가 줄어든 건 경기불황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 7월부터 수성쉼터에서 기간제로 일하는 박성욱 씨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사님 표정을 보면 요즘 시장이 어떤지 알 수 있다. 10월까지는 소위 에이스인 배달기사님은 500만 원에서 800만 원도 찍어갔다. 그런데 10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제곱근 모양으로 급격히 하강했다고 한다. 어려워진 경기가 바로 반영된 것”이라며 “요즘은 기사님들이 입구부터 표정이 안 좋다. 간혹 야간엔 욕을 하면서 들어오시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달구벌 이동노동자쉼터(수성, 달서) 이용 현황. 전반적인 이용자 수는 꾸준히 늘었으며, 계절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대구지역 이동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수는 약 1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구경북연구원이 2020년 7월 대구시에 제출한 보고서 ‘대구 이동노동자 실태 및 지원 방안’(김용현)에 따르면 대구지역에서 공식적으로 등록된 대리운전, 퀵서비스, 택배 종사자는 약 4,000명, 등록되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퀵, 택배 및 대리운전자까지 고려하면 이동노동자 수는 최대 1만 명까지 추산된다. 여기에는 코로나19 시기 급격하게 늘어난 배달라이더 등을 더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특정 거점 없이 일하는 이동노동자를 위해 지자체는 쉼터를 늘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약 30여 곳이 운영 중이며, 서울·경기에 대부분 집중돼 있다. 서울시는 현장 의견을 수용해 기존 건물을 임대하는 형식을 벗어나 컨테이너를 곳곳에 설치하는 간이쉼터 정책도 도입했다.

기업은 이 거점을 기반으로 복지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7월 22일 안전보건공단과 ‘플랫폼노동자 건강보호 체계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전국 26개 이동노동자쉼터에서 건강진단 서비스를 시작했다. 11월까지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며, 대구 이동노동자쉼터 2곳에서도 신청자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동노동자쉼터 설치 과정 살펴보니
설치 이후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 부족

대구의 이동노동자쉼터 이용자 대부분이 대리운전 기사인 이유는 설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019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대구지부가 이동노동자쉼터 설치 요구에 앞장섰다. 여기에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이 결합해 ‘이동노동자 종합지원센터 설치를 위한 대구시민행동’을 결성했다. 이들은 지역 대리운전기사 102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해 휴게 공간의 필요성을 대구시에 전달했다.

대구시는 이를 받아 ‘이동노동자 실태 및 지원방안’을 정책연구과제로 채택해 대구경북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겼고, 2021년 4월 ’대구광역시 이동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지원 조례‘가 공포됐다. 2021년 11월 대구시는 직접 운영 방식으로, 수성구 범어동과 달서구 장기동 2곳에 쉼터를 열었다.

이처럼 지역 내 다양한 요구를 모아 설치했지만, 정작 운영이 시작된 이후엔 공간 활용을 위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준녕 당시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대구지부장은 “대리운전과 같은 이동노동자는 대구 전체를 일터로 각개전투하다 보니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나 복지 측면에서 소외되어 있으니, 공간을 거점으로 의견이 모이길 기대했었다. 실제 운영이 시작되고선 아쉬운 점이 많다”고 기억했다.

설치 당시 주체 중 하나였던 장태수 전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도 “당시 배달, 학습지 등 이동노동자 중 조직된 곳이 많지 않아서 대리운전 노조와 함께 필요성을 주장했다. 쉼터가 만들어진 것은 성과였지만, 그 이후 책임 있게 발전 방향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내년부터 주말까지 운영시간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거점 확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2021년 2억6,100만 원, 2022년 2억9,800만 원, 2023년 3억7,400만 원으로 매년 예산이 조금씩 늘었음에도 대부분 인건비와 임대료에 사용된다.

홍용규 대구시 일자리노동정책과 노사상생팀장은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진행한 만족도 조사 결과 응답자 207명 가운데 63.8%가 매우 만족, 35.3%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운영시간 확대에 대한 의견이 다수 있어서 내년부턴 주말에도 운영할 수 있도록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권기훈 대구시의원 “쉼터 이용률 높이려면 접근성이 중요”
제대로 활용하려면 작더라도 거점 늘어야

이동노동자쉼터의 필요성은 당사자와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대구시도 공감한다. 하지만 이동노동자의 근무 특성에 맞지 않는 운영 방식, 일부 직종 중심으로 이용되는 점 등은 꾸준히 문제로 지적된다.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주체도 보이지 않는다. 배달노동자는 쉼터가 고층에 있다는 점, 제대로 된 주차 공간이 없다는 점 때문에 공간을 쉽게 이용하지 못한다.

지난 11월 9일 대구시의회 경제환경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같은 내용이 지적됐다. 권기훈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동구3)은 “현재 쉼터는 거점이 2개뿐인데다,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배달라이더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쉼터 이용률을 높이려면 접근성이 중요하다”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비를 피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작더라도 많은 곳에 두는 것을 고려해달라”고 주문했다.

타지역에선 컨테이너 형태의 간이쉼터, 자영업자와 연계해 공간 일부를 임대한 쉼터 등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겨울이 시작된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 캠핑카를 개조한 ’찾아가는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차량 3대가 배달 수요가 많은 주요 장소별로 3~5일간 정차하며 휴게공간과 음료, 다과, 방한용품을 제공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대전과 광주에서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에 카페를 배달노동자 쉼터로 사용하는 실험을 한 적 있다.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자영업자와 배달노동자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 여름, 겨울에 특히 필요하기 때문에 유연하게 이용하면 좋다”며 “배달라이더를 위해선 안마의자 같은 시설보다도 거점이 많아야 한다. 너무 번듯하게 해놓으면 오히려 비를 맞았을 때 눈치가 보여서 못 들어간다”고 전했다.

이성종 서울이동노동자쉼터 운영위원장도 거점이 되는 쉼터 사이사이 간이 쉼터를 두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상담이나 교육이 가능한 거점 쉼터도 필요하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나랑 가까운 쉼터‘이다. 거점 쉼터 사이사이 휴게공간의 역할을 하는 간이쉼터를 두면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년차 대리운전 기사 하찬인 씨는 “취식이 불가하고 주말엔 문을 닫는 등 우리가 일하는 내용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구에서도 거점‧운영시간 확대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나온다. 24일 오후 7시경 수성쉼터에서 만난 8년차 대리운전 기사 하찬인(남, 65세) 씨는 “수성, 달서 쉼터를 번갈아 이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쉼터가 정말 필요한 곳은 칠곡이나 시지같은 외곽이다. 콜이 들어와서 나가면 길에서 한 두 시간, 때론 그 이상 대기할 때가 많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간이형태로 설치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며 “지금은 취식이 불가하고 주말엔 문을 닫는다. 편의점도 많아야 하루 한 번 가지, 다 돈 아니냐. 밤에 일하다 보면 뭘 먹어야 하는데, 쉼터에서 음식을 못 먹게 하는 건 우리 일하는 걸 잘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하 씨는 “너무 깨끗하고 번듯해서 오기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를 맞았거나 자신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와서 불편할 바엔 밖에 있는거지”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배민라이더’라고 적힌 민트색 조끼를 입은 배달라이더가 급히 화장실에 들어갔다. 볼일을 마친 라이더는 다시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삐 내려갔다.

단순 쉼터 넘어 확장하려면, 중요한 건 ‘운영 주체’
“대구시 노동정책 각자 따로 놀면서 확장성 부족”

이동노동자쉼터 운영 실태를 두고 “대구시가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얕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 당사자 조직 또는 당사자 의견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단체가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면 유연하고 기민하게 현장과 소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법률상담이나 건강검진, 교육 등 프로그램 운영과 홍보에 있어서도 더 적극적일 수 있다.

이정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사무처장은 “논의 당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위탁서를 제출했는데, 대구시가 직영으로 하겠다고 결정했다. 위탁으로 운영하면 현장을 잘 알고 있으니 쉼터 역할에서 확장해 여러 부대행사를 할 수 있다”며 “직영으로 운영하더라도, 당사자를 운영 주체로 둘 수 있지 않나. 위원회를 꾸려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데, 그냥 설치해 운영만 하고 있다. 시가 사업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처장은 “이런 작고 큰 성과들이 모여야 하는데, 전반적인 대구의 노동 사업들이 각자 따로 놀며 확장성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수성쉼터 한 켠에 꼽혀 있는 노동상담 매뉴얼 책자. 쉼터를 기반으로 법률상담, 금융상담, 건강상담을 비롯해 주거복지상담, 직무역량교육 등이 운영될 수 있다.

실제 전국의 여러 이동노동자쉼터는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쉼터를 맡겼다. 이성종 서울이동노동자쉼터 운영위원장은 “핵심은 운영주체다. 직영은 한계가 있다”며 “민간으로 위탁해서 운영하다보니 수탁기관들이 공간을 활성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이동노동자 단체를 만나서 홍보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구시는 각 쉼터마다 주‧야 1주일 순환근무 형태로 기간제 근로자를 2명씩 뒀다. 이들은 9개월 계약직이며 출입자 확인 및 이용 안내, 물품 및 시설물 유지, 쉼터 내부 청소, 쉼터 데이터 관리 등을 맡는다.

올해 7월부터 수성쉼터에서 일하는 박성욱 씨는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젠 자주 오는 분들과 연락처를 교환할 정도로 친해졌다. 배달 오류난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밤에는 기분이 안 좋거나 예민한 분들도 일부 오신다. 그럴 땐 잠깐 피해 있는 정도의 요령도 생겼다”고 말했다.

박 씨는 주·야 순환근무에 적응한 이야기부터 직종별 업계 생태계까지 공간을 관리하며 겪은 여러 이야기를 한참 동안 풀어놓았다. “이제 좀 적응했다”고 말한 박 씨의 계약만료일은 내년 3월 31일이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